스웨덴 결혼일기(3)
코로나 덕택인지 2번의 기내식 중 1번은 빵이 나왔다. 차가운 빵에 버터, 마요네즈 범벅의 코울슬로. 엄마의 입에는 당연히 맞지 않았고 엄마는 거의 먹지 못했다.
긴 비행을 거쳐 파리에서의 8시간 경유. 멀미약에 취한 엄마는 졸음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한국의 공항과는 달리 파리의 공항은 의자마자 모두 팔걸이가 부착되어 있는데다 올릴 수 없게 되어 있어 잠을 자기에 부적합했다. 온 공항을 헤맨 결과 긴 벤치를 발견했고 엄마는 거기에 누워 쉬었다.
다시 비행기를 타고 2시간 30분.
우리는 드디어 스웨덴에 도착했다.
엄마에게는 첫 해외였고, 나에게는 2년만의 스웨덴이었다.
그리고 나는 A와 2년만에 다시 만났다.
변한 것 하나 없이 멀리서 걸어오는 A가 눈물나게 반가웠다. 달려가 안겼을 법도 한데 엄마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괜히 별스럽지 않은 척했다. 그러나 온전히 숨길 수 없는 반가움이었다.
2년만에 다시 온 스웨덴은 여전히 추웠고, 새하얗게 눈부셨다. 아일랜드에 있을 동안 자기 차가 없어졌다는 A는 아버님의 차를 끌고 왔는데 낡은 차라서 털털대는 소리가 났다. 그것마저 웃겼다.
스톡홀름에서 머물 숙소는 제법 근사했다. 공간도 충분했고 욕실이 너무 멋졌다. 무엇보다 화장실, 욕실을 중요시 하는 나와 A, 엄마 모두의 만족도를 충족시킨 숙소였다.
스톡홀름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skatteverket에 들러 hindersprövning을 제출하는 것. 토요일에 도착한 우리는 숙소에서 일요일 하루 쉬고 월요일이 되어 길을 나섰다. 주차장소가 마땅찮은 스톡홀름은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할 경우 주차비가 어마어마하다. 주차비로만 10만원이 나가는 건 일도 아니다. 이에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환승해야 했다. 기껏 SL카드(스톡홀름에서 사용 가능한 교통카드)를 가져와놓고 숙소에 두고 오는 멍청한 짓을 벌인 나는 20크로나를 내고 카드를 새로 사야 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 skatteverket에서 연락을 받았다. 기간이 만료되어 hinderspröving 발급이 불가하다는 것. 분명 나는 12월에 스웨덴 방문 예정이라고 메일을 보냈었고 본인들은 상관없으니 서류를 먼저 보내라, 방문해서 여권을 보여주면 컨펌 후 발급해주겠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그런건 모르겠고 기간이 만료되었으니 여권을 들고 와도 소용이 없다, 와서 서류를 다시 제출해라 하는 건 무슨 논리?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지만 서류가 필요한 건 내 쪽이니 별 수 있나, 돈을 내고 영어 번역 및 공증을 다시 받았다. 그렇게 고이 챙겨온 서류를 들고 skatteverket에 방문했는데 이 곳은 한국의 관공서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한국 관공서는 담당 직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고 순서에 맞추어 고객들이 자리에 가 앉으면 담당 직원이 민원을 처리해주는 방식인데 여기는 직원들이 자유로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편의를 위한 의자조차 없고 스탠딩 테이블에 컴퓨터 몇 대가 설치된 게 전부. 스웨덴 사람이나 skatteverket에 와 보는 건 처음이라는 A와 함께 쭈뼛대고 있자니 직원 하나가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hinderspröving을 신청하러 왔다고 하니 비어있는 스탠딩 테이블로 안내해주었다. 뻘쭘하게 서 있으니 직원 하나가 다가왔다.
신청 절차는 간단했다. 서류를 모조리 건네주고 여권을 보여주니 직원이 모두 가져가 복사를 했다. 부족한 서류가 있는지 물으니 '없어보인다'고 했다. 없으면 없는거고 있으면 있는거지 '없어보인다' 는 애매한 대답은 뭐람.
짧은 절차가 끝나고 이왕 온 김에 순서대로 화장실이나 들르기로 했다. 참고로 스웨덴의 공공화장실은 대부분 유료이다. 우리는 동전이 없었다.
나와서 gamla stan으로 이동했다. 12월 초의 날씨 치고는 많이 추웠다. 눈도 많이 왔다. 한겨울이 아니라는 생각에 털부츠를 따로 챙기지 않았는데 발가락이 떨어질 것 같아 긴 관광은 무리였다. 특히나 스웨덴의 추위를 처음 접하는 엄마는 너무 추워했다. 더구나 겨울의 스웨덴은 3시 반이 되면 컴컴하다. 결국 우리의 관광은 어딘가로 들어가서-먹고-마시고-숙소에 돌아가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3박 4일의 스톡홀름 일정을 마무리하고 A의 도시인 Avesta로 향했다. Avesta는 스톡홀름보다 내륙이라 눈이 더 많이 온다. Avesta에 도착한 건 밤 늦은 시간. 숙소로 돌아가 곧바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슬그머니 뜬 햇살에 설원이 펼쳐졌고 엄마는 감탄했다. 물론 이 감탄은 숙소에서 나가자마자 휘몰아친 강추위에 쏙 들어갔다.
Avesta에 도착한 우리는 본격적으로 결혼식 준비에 들어갔다. 주례를 봐 주실 목사님이 한국에서 와 주셔서 공항으로 픽업을 가고, 음식을 정하고, 데코레이션을 생각하고... 시간이 많지 않은데 결정할 것은 많아서 우리는 그 며칠 사이에 작은 말다툼을 벌였다. 대부분 내 고집이 강했기 때문이고, 상당히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보고 있나 A?)
날씨는 다른 해에 비해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왔다. 우리가 도착한 내내 아베스타는 영하 12도~영하 16도의 날씨를 유지했다. 야외에서 결혼식을 해야 하는 우리는 어떤 옷을 어떻게 입어야 얼어죽지 않을지 고민했다. 특히 내 드레스가 문제였다. 어떻게 입어도 따뜻할 수는 없었다.
결국 치마 안에 털이 든 하얀 레깅스를 신고 위에 걸칠 케이프 아래로 핫팩 여러 장을 붙이기로 했다. A는 양복용 얇은 와이셔츠 대신 골덴 재질의 아이보리색 셔츠를 구매했다. 그리고 부디 눈이나 비가 쏟아지는 날씨만 아니기를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