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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이 Feb 24. 2022

한겨울에 야외결혼식 해봤니?

스웨덴 결혼일기(4)

드디어 대망의 결혼식.

영하 16도를 맴돌던 날씨는 영상 1도까지 올랐고, 쏟아지던 눈은 그쳤다.

바닥에 쌓인 눈이야 어쩔 도리가 없었지만 10초만 서 있어도 뼛속까지 덜덜 떨리던 추위와 휘몰아치던 눈발에 비하면 그 정도는 참을만했다.



우리가 야외 결혼식을 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실내에서 결혼식 진행이 가능한 곳을 찾지 못했고, 12월의 스웨덴은 그다지 춥지 않을 예정이라고 남편이 끊임없이 날 꼬드겼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이걸 믿은 내가 멍청하다. 북유럽이고 겨울인데 드레스 입고 서 있기에 안 추운 날씨가 있나?)




결혼식을 위해 준비한 부분은

1. 장소(메일로 예약, 당일 꾸미는 건 시부모님과 시누들이 도와주심.)

2. 음식(메일로 예약, 당일 픽업은 시아버님이 도와주심. 셋팅은 시어머니와 시누들이 도와주심.)

3. 케이크(전날 남편이 예약, 당일 픽업은 시아버님이 도와주심. 셋팅은 시어머니와 시누들이 도와주심.)

4. 식순(한국에서 목사님이 스웨덴까지 와 영어로 진행해주셨음. 남편에게 받은 스웨덴 식 웨딩 식순에 목사님과의 의논을 거쳐 조금 수정된 우리만의 식순이 완성되었음.)

5. 웨딩 순서지(내가 직접 디자인, 결혼식 당일 남편이 프린트해주었음.)

6. 청첩장(내가 직접 디자인, 한국 쪽에서는 따로 출력하지 않고 파일로 지인들에게 전달해 결혼식을 알렸음. 참석할 수 있는 한국 지인이 없었으므로.... 스웨덴 쪽 친척들에게는 남편이 전달.)

7. 음향(남편이 큰 앰프를 빌렸고 식 전날 마이크는 새로 하나 샀는데 이 이야기는 아래에서 조금 더 하겠음.)

8. 반지(한국에서 사서 스웨덴으로 가져갔음.)

9. 웨딩사진(시누가 결혼 선물로 찍어줬음.)

10. 의상(셀프웨딩용 드레스를 구입해 가지고 갔음. 남편은 아일랜드에서 양복을 맞췄고 혹시나 추울까봐 결혼식 전날 H&M에서 골덴 셔츠를 구입했음.)


인데 전부 셀프로, 그것도 해외에서 준비하려니 머리가 터졌다.

시댁에서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스웨덴의 결혼식은 하객이 제법 조촐하다.

양가 친척, 그리고 아주 친한 친구 몇몇. 그마저도 한국의 친척들은 참석할 수 없었기에 남편 쪽 친척들과 친한 지인 3~4명이 전부였다. 총 25명 내외였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는 남편 집 근처의 작은 장소를 빌렸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우리가 직접 셋팅해야 했다. 패기가 넘쳤던 새파란 바보들은 '까짓거 하면 되지!' 생각했는데 막상 결혼식 당일이 되니 무지하게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스웨덴에서 살지 않았던 터라 미리 준비할 수도 없었다. 시댁의 도움이 없었다면 제대로 준비할 수 없었을 것 같다.



당일 세팅되었던 식사 장소. 식탁보, 집기류, 꽃, 바닥에 깔린 카펫까지 시댁 식구들이 다 준비해주셨다. 앞쪽에 셋팅된 자리가 신랑, 신부, 주례, 양가 부모님의 자리이다.




시누는 우리의 웨딩사진에 정말 많은 정성을 들여주었다. 전날 몇 시까지 와서 촬영을 해야 하는지 스케쥴을 맞췄는데.... 정말 미안하게도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우선 남편은 식순 안내지를 미리 출력해두고 자라는 내 말을 듣지 않아 당일 아침에 모두 출력해야 했고(여기서 한번 삐그덕), 마음이 급한 나는 웨딩 반지를 숙소에 두고 나오는 짓을 저질렀다.

이에 결혼식 장소로 향하다가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시누는 프로답게 약 한 시간 가량의 짧은 시간 내에 근처를 돌며 최상의 사진을 뽑아내주었다. 문제가 있다면 하이힐 안으로 눈이 미친듯이 들어와 맨발이 아주아주아주아주 시렸다는 것....

웨딩드레스 위에 케이프를 둘렀기에 날씨가 미친듯이 춥지는 않았다.




딱 봐도 사방 천지 눈.... 전날 밤까지 쏟아졌던 눈은 다행히 당일에는 그쳤고, 결혼식을 본 모든 사람들은 저 눈 덕분에 우리 결혼식이 더 영화같았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모든걸 스스로 준비한 결혼식이 완벽할 리는 없었다.

우리 결혼식에 들어간 찬양은 총 3곡.

그런데 당일이 되어 갑자기 앰프가 나오지 않았다.

어디에 어떤 문제가 생긴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앰프를 빌릴 때 주인이 확인을 하고 보냈다고 했으므로 기기 자체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웨딩 입장도, 찬양도 모두 배경음악 없이 진행했다. 굉장히 뻘쭘하고, 휑했다.

(그래도 즐겨주신 하객 분들께 감사할 뿐...)


새로 산 마이크는 써 보지도 못하고 쳐박혔다. 비싼 걸 샀는데... 속이 좀 쓰렸지만 다음에 쓸 기회가 있겠지 하며 마음을 달랬다.




또 하나의 변수.

웨딩 순서지를 출력해 편히 가져가실 수 있도록 출입구 쪽 테이블에 비치해두고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하객분들 아무도 챙기지 않으셨다.



이렇게 성경 구절과 찬양 가사를 다 넣었는데 아무도 가져가지 않으셔서 나와 남편, 친정 엄마와 목사님 네 명이 반주도 없이 찬양을 불렀다ㅋㅋㅋㅋ물론 엉망이었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우리가 민망했을 뿐...




결혼식 직전 목사님의 도움으로 ZOOM을 연결했다. 그 덕분에 한국에 있던 친정 아빠와 지인들도 영상으로 결혼식을 볼 수 있었다.

식은 짧게 30분정도 진행되었는데 끝날 무렵이 되자 코와 손이 굉장히 시렸다. 그 덕분에 식이 종료된 후 뽀뽀(?)는 못하고 실내로 이동해 식사를 했다.

결혼식의 꽃은 마무리 뽀뽀라고 생각하던 남편이라 좀 아쉬워 보이기도 했으나 미안하게도 나는 그런 것 따질 정신이 없었다. 굉장히 추웠으므로.




모두가 영화같았다고 해 준 결혼식의 한 장면. 바닥에 얇게 쌓인 눈과 스웨덴 특유의 포근한 조명이 정말 잘 어우러졌던 결혼식. 이 장면은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아. 참고로 웨딩촬영 후 하이힐 내부가 다 젖어버려서 정작 식은 흰 운동화를 신고 진행했다.

다행히 내 다리가 짧아 치마가 길게 내려오는 바람에 보이지 않았다...ㅎㅎㅎㅎ





스웨덴의 결혼식은 거의 7-8시간동안 진행된다. 그 중 식은 약 30분-1시간 정도, 나머지는 모여서 음식을 먹고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고 가벼운 술을 곁들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우리는 술을 따로 놓지는 않았다. 대신 음료를 다양하게 사 구비해 두었다. 물론 이 음료의 셋팅은 시댁에서 도와주셨다.




식사는 고기류와 해산물류를 적절히 섞어서 준비했는데 스웨덴 음식들은 대부분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서 조리한다. 그 말인 즉, 해산물류의 경우 비린내가 좀 난다는 것... 하지만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다행히 비린내가 심하지 않았고 천천히 아주 잘 먹고 즐겼다. 물론 엄마는 갈비탕이 먹고 싶다고 했다.



고기나 햄류, 해산물류를 섞어 준비한 뷔페




식사 도중 시아버지가 하객들에게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며 아들을 결혼시킨 소감에 대해 이야기하셨는데 굉장히 길게 준비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으나 우시는 바람에 1분만에 끝이 났다.

예상치 못한 시아버지의 눈물에 나와 엄마는 조금 당황했다.


나중에 남편에게 들으니 한국과 반대로 스웨덴은 아들을 장가보낸다는 느낌이 강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사위가 처가와 친밀하게 지내며 자주 들러서 음식도 함께 해먹는 등 시간을 보내는 반면 며느리는 시가와 그저 데면데면한 느낌.

처음으로 알게 된 문화차이였다. 아, 그래서 시아버지가 눈물을 보이셨구나 하고 이해가 갔던 부분.

그치만 사실 우리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시가도, 처가도 멀리 있으니.



식사가 어느 정도 종료되면 케이크를 셋팅해 스웨덴 식 Fika(피카)를 진행한다. 스웨덴의 커피타임이라고 보면 되는데 스웨덴 사람들은 Fika가 일상생활의 일부분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다루도록 하겠다.

결혼식 Fika로는 프린세스케익을 준비하는게 일반적이다. 크림과 딸기잼을 바른 동그랗고 부드러운 빵을 마지팬(설탕을 녹여 만든 반죽)이 감싸고 있는 프린세스 케익은 웨딩이나 생일과 정말 잘 어울린다.

우리는 스웨덴 전통 프린세스케익과 블루베리가 들어간 프린세스케익을 준비했는데 케익 컷팅은 신랑신부가 함께 한다.



초록색이 전통 프린세스케익, 푸른색이 블루베리 프린세스케익인데 내가 블루베리맛을 먹고싶다고 해 푸른 케익을 먼저 컷팅했다.




커피와 함께 케익을 어느 정도 즐기고 나면 대망의 웨딩 선물 오픈 시간이 돌아온다.

아, 참고로 웨딩 선물은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 하객들이 신랑신부 식사석 근처에 가져다 놓는다.

카드를 순서대로 오픈하고, 누가 준 선물인지 알리며 감사인사를 전하는데 우리가 선물 오픈하는 걸 모두가 보고 있어서 좀 민망하다.




결혼식이 끝나는 과정도 굉장히 자연스러웠는데, 한 두 팀씩 "이제는 가봐야겠다" 고 일어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식사가 종료되는 것이다. 사용했던 식기류, 조리도구 등은 모두 설거지를 해야 했는데 이 부분도 시댁에서 해주셨다. 나중에 시누들이 결혼할 때 물심양면으로 돕겠다고 마음먹게 된 부분이다.


오후 2시 30분에 시작된 결혼식은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집에 돌아오니 완전 녹초가 되어 있었다. 오랜 시간 앉아 스웨덴어를 듣고, 먹고, 마시는 절차가 극 내향형인 내게는 매우 피곤했다...ㅋㅋㅋㅋ

하지만 소수의 하객들과 함께 근황 이야기를 나누고 진심으로 축하받은 모든 과정이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었다. 시끌벅적한 한국의 결혼식과는 또 다른 느낌이라 새로웠다.



결혼식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게 끝난 건 아니다. 다음날은 목사님을 공항에 모셔다 드리며 앰프를 반납했고 그 다음날은 우리의 출국이었기에 짐을 정리하고 숙소를 청소하며 바빴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아주 많은 서류 작업이 남아있다....국제결혼의 길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날의 기억은 아주 오래 남지 않을까.

우당탕탕, 완벽하지 않아 여기저기 삐걱댔던 결혼식이지만 생각하면 웃음지을 수 있는 그런 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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