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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이 Sep 19. 2021

이민 준비의 첫 걸음, 티켓팅

이민 준비의 과정을 꼽으라면 손가락, 발가락을 다 동원해도 셀 수 없는 과정들이 기다리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아, 정말 떠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첫 단추는 티켓팅이 아닐까.


나의 경우에는 해외에서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다보니 가족들과 함께 들어가는 티켓을 발권해야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각 국의 규제도 심해진 시국. 나 한 몸 떠나는 것이라면 좀 깐깐해도 되고 질문이 많아도 되지만 엄마와 이모네 가족들이 함께 가는 길이라 고심 끝에 환승절차가 그다지 까다롭지 않은 항공사를 골라 발권했다.


왕복 티켓 5장, 그리고 편도 티켓 1장.


편도 티켓이라니, 세상에.

언제나 가면 돌아올 곳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곳에 살게 되는거라니. 유럽이 내 집이라니. 이제는 어떤 일이 벌어지든 그 곳에서 살아내야 하는거라니.


눈을 뜨면 펼쳐질 유럽의 풍경들. 학생시절 막연히 꿈꿔본 삶이었다. 영국, 스페인, 프랑스 등 이름만 대면 아는 나라들의 다큐멘터리들을 보며 저런 나라에서 사는 삶은 어떨까 생각했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워킹홀리데이를 가 보겠다고도 다짐했었다. 어른의 나이에선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혔지만.

그런데 이제는 그게 내 삶이 된다니!


흥분도, 설렘도 가득 몰려왔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유럽생활이 걱정도 되지만 기대가 더 컸다. 비록 넓고 좋은 집에 살 수는 없겠지만 첫 술에 배부르랴. 그저 유럽의 공기 속에서 눈을 뜨게 될 거라는 사실이 신이 났다.


그렇게 설렘을 안고 티켓을 결제하고, 집에서 공항까지의 일정, 그 후 결혼식 전 가족들과 관광을 할 코스들을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남자친구와 나는 스카이프로 열심히 영상통화를 해대며 일정을 계획했다.


그렇게 계획이 차근차근 채워져 나가고, 마지막 날의 계획을 작성하는 순간. 머릿속의 내 걸음은 공항에 다다랐다. 그 곳에서 내 걸음은 손에 든 펜 마냥 오도카니 멈추어 섰다.


이별.

나와 남자친구는 아일랜드로, 가족들은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순간.

우리집은 인천공항과 가깝지도 않은데. 엄마는 혼자 먼 길을, 무거운 짐을 들고 꾸역꾸역 돌아가겠구나.

직항도 없는 비행편을, 낯선 언어로 경유하여 인천공항에 내려 지친 몸을 이끌고 홀로 버스를 타고, 기차를 갈아타고, 택시를 타 겨우 집에 돌아오겠구나.

돌아오면 나는 없을 그 길을.


마냥 들떴던 기분이 죄스러웠다.

그 길을 돌아올 엄마는 불이 꺼진 비행기 안에서, 덜컹대며 내달릴 버스 안에서, 엄마 하나쯤은 관심도 없을 기차 안에서, 그리고 택시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


그렇게 열심히, 모든걸 바쳐 키워낸 딸이 저 하나 살자고 떠난 그 길을 곱씹으며 대견하다가, 걱정스럽다가, 원망스럽다가, 또 하염없이 그리울까.


돌아오는 길은 없는 편도 티켓 한 장이 나를 구름 위로 붕 날렸다가 사정없이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래, 이제 가면 돌아오는 길은 없는 것이다.

엄마에게로 오는 길은 이제 '여행'이 되겠지. 돌아갈 곳은 따로 정해져 있는.


이별을 준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그 순간을 잘 준비할 수 있을까.


글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 엄마도 나도.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최선이려나.

비행기 티켓이 이렇 무거운 적이 있었던가. 티켓 한 장에 생각도 눈물도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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