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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울싸람 Jan 13. 2022

다르다와 틀리다는 다르다

필자는 듣도보도 못한 신세대 언어에 낄낄대고, 브런치의 맞춤법 검사에 셀 수없이 검열당하는 맞춤법 파괴자에 가깝다. 하지만 일상에서 단 하나 싫어하는 맞춤법 오류가 있다. 그건 바로 '틀리다'와 '다르다"이다. 대화 중에 무례를 범하기 싫어 못 들은 체 있긴 하나, 내심 '다르다'와 '틀리다'를 잘못쓰는 사람은 어딘가 꽉 막혔을 것이란 엄청난 비약을 한다.


이는 UCC라는 용어가 유행하던 시절 우연히 봤던 "[지식채널e UCC 다큐] 다르다와 틀리다는 다르지 (2011, 초록머리마녀들 제작)"의 영향이다. 10년이 지났음에도 내용이 여전히 각인되어 있었으나 단 한 번도 보진 않았다가, 뭔진 몰라도 자꾸 틀렸다는 부장님의 말씀에 최근 다시 영상을 찾아봤다. (UCC 시절의 위상에 걸맞게 5분 남짓한 영상이니 잠시 시간을 내시는 것도 추천한다.)


영상은 아래와 같은 텍스트로 시작한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아는 사람은 뻔히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까맣게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틀린그림찾기'라는 말에 귀가 전혀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말 한 마디가 가져올 수 있는 끔찍한 힘을 아직도 두려워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 대한 마지막 충고입니다.
 당신의 편했던 귀가 불편해지기를 바랍니다.



이후 화면이 바뀌고 동일한 질문에 한국인과 외국인의 답변을 비교한 인터뷰가 나온다.

두 그림에서 서로 다른 부분을 찾는 게임을 뭐라고 하죠?

한국사람들의 답변은 모두 '틀린그림찾기'. 그리고 인터뷰어의 영어로 표현해볼 수 있겠냐는 질문엔 "Wrong.."으로 시작하여 picture, seek, 그리고 find 등의 단어가 언급된다.


그렇다면 외국사람들의 답변은 어떨까? 'Spot the Difference' 혹은 'Pick the Difference'등이다.


인터뷰에서 주목할 점은 Wrong이 아닌 Difference가 나온다는 것. 그런 다음 한국 사전에만 있는 '틀리다'의 흥미로운 정의로 "형용사: '다르다'의 잘못"을 집어낸다. (2022년 1월 기준 네이버에서 '틀리다'를 검색하면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라 "형용사: '다르다'의 비표준어"로 나오며, 사전에 등장한다는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이 사용되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다음 장면에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진행한다. 맞춤법 오류를 고치라는 문제를 주고, 그중에는 "뭐 사람마다 생각이 틀릴 수 있지"라는 문장이 포함되어있다. 해당 부분을 찾아내고 틀린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한 친구는 30명 남짓 중 단 1명밖에 없었다.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유는 다음 사회평론가의 인터뷰를 통해 나타난다. 영상 내 사회평론가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다르다'와 '틀리다'의 혼동은, 한국의 주입식 교육이 자기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 나아가 흑백논리 경향을 강하게 내면화할 위험성이 존재하며, 이는 존중해야 하는 다름이 아니라 극복하지 못하는 틀림으로 이어짐을 지적한다.


이후는 다시 외국인들의 인터뷰로 마무리된다.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은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 키가 크고 작은 것의, 피부색은 '다르다'는 당연함을 친절히 설명해준다.

스크린숏 출처: [지식채널e UCC 다큐] 다르다와 틀리다는 다르지 (2011, 초록머리마녀들 제작) 중


10년이 지난 지금, 요즘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교육의 변화는 있었을지, 그 결과는 나타났을지. 어릴 적부터 외국에서 지낸 지인들 역시 두 표현을 혼동해서 쓰는 모습을 흔히 봤기에 아무래도 부모님의 영향이 없어지지 않을 때 까진 비슷할 것 같다는 추측은 해본다만..


필자는 살면서 아니라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말엔 No라고 말하는 성향에 가까웠다. 교복을 입고 앉아있던 시절엔 튀는 짓을 하지 말라는 잔소리도 종종 들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본인을 달갑지 않게 봤던 눈빛들을 생각하며 이 영상에 큰 공감을 보내지 않았나 싶다.


이 영상을 보고 난 이후부터인지, 원래가 주변에 엄격한 벽이 없는 성향이었던 탓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면에 뚜렷하고 선한 도덕 법칙을 갖되 (이는 매우 중요하다), 주변의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동시에 '틀렸다'를 말하기 전엔 혹시 틀리진 않았나 한번 더 곱씹어 보는 버릇이 생겼다.


별의별 사람에 섞여서 사는 세상에서, 틀린 사람을 집어내고 있기엔 인생이 너무 피곤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내일 점심시간에도, "그 집 순대국밥은 써울싸람씨가 먹은 거랑 전혀 틀리다니까!"라고 말하는 부장님의 말씀에도, 굳이 지적하지 않고 속으로만 넘어가야 할 테다. "네.. 암요.. 그 집 순대국밥은 다르겠죠.. 부장님 입맛이랑 제 입맛도 다르고요.. 달라요.. 다르다고요.."



*참고 자료 출처: [지식채널e UCC 다큐] 다르다와 틀리다는 다르지 (2011, 초록머리마녀들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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