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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울싸람 Sep 13. 2021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며 야광별을 바라봤을까

그런 날이 있다. 재수 없는 일들이 쌓이다 꾹꾹 눌러 담았던 설움이 폭발하는.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월요일을 깨우는 알람은 언제나 끔찍하다. 일요일 아침에 잠을 몰아 자곤 꼭두새벽까지 잠을 못 이뤄 눈은 천근만근이다.


'커피 한잔만 마시면 소원이 없겠다. 이 물이 커피였으면..' 따위의 공상과 함께 순식간에 샤워를 끝내고 후다닥 집을 나섰다.


'망할 코로나, 마스크만 아니었어도 아아를 들이키며 걸어갈 텐데.’와 같은 커피에 대한 집착을 멈추지 않고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지갑은 챙겼나 뒷주머니에 손을 대보고, 사원증은 무사히 있는지 가방도 열어보고, 오전에 잊은 미팅은 없는지 캘린더도 체크하고, 그렇게 역까지 10분여를 지나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며 1차 미션 성공! 열차 운영 스크린엔 늘 타던 시간의 지하철이 출발하는 게 보였지만 이 정도면 딱 맞게 도착하겠다는 안심을 하던 순간, 마스크 속으로 나지막이 육두문자를 뱉었다.


"아 xx.. 랩탑.."


보통 주말에는 일에서 벗어나려고 회사에 랩탑을 두는데, 이번 주는 마감을 앞둔 서류 때문에 가져왔던 걸 습관적으로 잊은 것이다.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미팅은 10시부터라 큰 사태는 면한다는 희망을 품고 빠른 걸음으로 4분을 세이브했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땐 온몸에 땀이 범벅이었고, 랩탑을 챙겨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홧김에 택시를 불렀다. 그땐 당장에 짜증과 화를 식혀야 했다.


재빨리 택시에 탑승했으나, 네비느님은 갑자기 영동대교가 아닌 청담대교로 인도하시고.. 서울 아침 그곳의 교통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다리를 건너는 직전까지 차는 움직일 기미도 보이지 않고, 도착시간이 1분이라도 줄어들진 않을까 지도를 연신 새로고침 하다 나중엔 그마저도 포기했다. 본인 선정 [택시 탔을 때 후회하는 순간 Top 3]인 ‘늦을 대로 늦고 택시비는 돈대로 깨지고'의 표본으로 출근길을 마무리했다.


'미팅에선 정신을 바짝 차리자.'라 굳게 다짐했건만, 우리 팀장님은 독심술을 할 줄 아셨던 걸까? 바짝 차린 정신을 깨버리려 작정한 마냥 하나하나 꼬투리를 잡기 시작했다.


'지 실수를 엄한 데 화풀이하고 하고 난리야. 어쩌겠어, 대놓고 깨주겠다는데 깨져드려야지.' 대범한 척 의지를 굳혔지만, 이와는 다르게 자존심에는 스크래치요 마음에 상처는 가득이요. 팀원들의 안쓰러운 눈빛은 고마웠지만 그냥 날 내버려 두는 게 돕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허벅지를 꼬집으며 오전을 버텼다. 점심시간만은 홀로 얼큰한 짬뽕을 들이키리라. 단 하나의 일념으로 오전을 버텼는데, 자비로우신 팀장님은 또 날 놓아주지 않으시네.


"미팅에서 제가 한 소리한 것도 걸리고, 식사 같이 하면서 얘기 좀 할까요. xxx 브런치 거기 제가 쏠게요."


"넵! 좋습니다!"


가시방석에 앉아 니글니글한 고급 브런치를 깨작거리며 '그래, 오전은 이미 망했어. 오후만이 살길이다.'와 같은 꿈은, 갑질 고객 전화가 울리며 와장창 깨졌다. 1시간을 시달린 후 편의점에 가서 구론산 한병 따다닥 까고 원샷. '안팎에서 깨댔으니 이젠 정말 끝이겠지'라는 희망을 또 품고 자리로 돌아갔더니, 인상을 쓰고 기다리고 있는 옆팀 팀장. '하긴 안팎이 깼으면 옆집도 한 건 해야지.' 우리의 갑질 고객은 옆집에도 전화하실 만큼 성실하셨던 것이다.


결국은 안, 밖, 옆 골고루 치이다 업무를 못해서 잔업 및 야근을 했다. 일을 끝내고 나온 밤 10시 강남엔 월요일을 술로 시작한 직장인들이 득실득실했고 택시는 하늘에 별 따기였다. 결국 만신창이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탔다. 꼬질꼬질 야근러들과 알코올 향이 풍기는 취객 틈 사이에 껴서 흐르듯이 몸을 맡겼다.


'됐다. 이대로 조금만 참으면 오늘은 끝이다.'


역에 내려 걸어오는 길에 누런 기름에 튀긴 7900원짜리 치킨이 맛있어 보여서 냉큼 샀다. 맥주 4캔까지 사서 집에 도착했을 때의 안도감이란. 그리고 인기척 하나 없는 집, 그곳에서 나는 냉장고 도는 소리가 주는 적막함이란.


'빨리 티브이를 켜서 아무 소리나 틀어야 하는데 하는데.' 지저분한 집을 들춰대도 보이지 않는 리모컨 때문에 답답하고 속이 뒤집히길 수어분. 귀찮아서 내버려 뒀던 형광등이 점점 심하게 껌뻑였고, 짜증에 못 이겨 스위치를 껐다. 감싸는 까만 소음에 숨이 막혀 방바닥에 누웠다. 그리곤 까만 천장에 멍을 때렸다.


어릴 때 아빠가 방 천장에 야광별을 붙여줬었는데. 머리가 좀 크곤 유치하다며 기를 쓰고 떼 버렸지. 이렇게 누워있으니 그 별이 너무 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아빠가 싼 통닭을 자주 먹었지. 혼술 안주로 딱이라고 말이야. 아저씨들이나 하는 짓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이러고 있다니. 아- 얼른 따뜻할 때 먹어야 하는데 몸이 안 움직인다. 아빠가 통닭을 사 왔을 때도 이렇게 피곤했을까. 옆에서 보채지 말고 포장이라도 뜯어줄 걸 그랬다.  


오늘 같은 날 고향에 있었다면 데리러 올 사람 한 명쯤은 있었을까.
집 근처에서 동네 친구 불러다 팀장을 안주 삼아 맥주 한잔 했을텐데.
왜 굳이 서울에 와선 사서 고생일까 - 치열하고, 외롭고, 삭막하기만 한데.


어릴 적 아빠가 천장에 붙여준 야광별은 날 위한 게 아니라 당신을 위한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녹초가 된 몸으로 어린 자식을 재우며 아빠는 잠시나마 천장을 경치삼아 별멍을 때렸던 걸까.   


당신에게 힘을 줬던 건, 천장에 야광별이었는지 품에 안은 어린 나였는지.


아빠에게서 풍겼던 술냄새가 서글퍼지는 나이가 됐나보다.



오늘따라 야광별이 수놓은 내방이 미친 듯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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