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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우 Dec 31. 2024

당신의 계절은 어디인가요?

당신의 바람은 무엇인가요?

계획적이지 못한 성격 탓인지, 무던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이라 그런지 소원이라고 할만한 것이 딱히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누가 버킷리스트를 물어보면 꼭 이야기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오로라다. 살면서 한 번은 내 눈으로 오로라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어떤 열열한 바람이나 간절함이 있는 소망은 아니다. 그냥.. 여기서는 볼 수 없는 어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일상에서는 절대 마주칠 수 없는 일이라 버킷리스트라는 이름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오로라는 극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데 캐나다나 아이슬란드와 같이 하얀 눈으로 뒤덮인 북쪽 나라들에서 관찰된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나라의 하늘 위에서 펼쳐지는 장관. 아주 가끔 나는 하늘 위에서 펼쳐지는 장관을 상상한다.

나는 어린 시절 계절이 네 개라고 배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일 년을 3개월씩 나누면 네 개의 계절이 된다. 하지만 어쩐지 3개월은 봄은 조금씩 더 춥고 금방 또 더워지기 일쑤다. 3개월의 가을도 반팔을 입고 시작했다 어느새 코트를 꺼내 입게 된다. 마냥 공평하게 3개월을 나눠갖지 못한 계절이 못내 불편했지만 어린 시절 품었던 그 생각의 이유는 지금 잘 기억나는지 않는다. 응원하던 야구 구단이 8년에 한 번씩 우승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만큼 불편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나는 내 나이만큼의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지났다. 얼음이 얼고 눈이 내리고 그러다 꽃이 피고 이내 쨍쨍 내리쬐는 햇볕을 견디다 보면 금방 선선한 바람에 낙엽이 떨어지는 일들이 몇 번이고 지나갔다. 내가 당연하게 지내온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은 그 당연함을 벗어나는 순간이다. 병치레를 했던 20대 어느 날들엔 몸에서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상태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었다. 일상의 틀이 뒤 바뀐 순간 나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무탈한 순간들을 상상하며 하루를 시작했었다.


우기. 자카르타는 비가 오는 계절이 한창이다. 이국의 계절이라 이리 성의 없는 이름을 붙인 걸까? 비가 많이 오는 계절이라니.. 우기와 건기 비가 많이 오는 계절과 비가 적게 오는 계절. 공평하게 6개월씩 심심한 계절이 있다. 이름만 들으면 우리나라의 장마처럼 퍼붓는 비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쏟아질 것 같지만 이름만큼 무시무시한 비가 내리진 않는다. 한바탕 비가 내리다가도 또 이내 잦아들기도 하고 맑은 날 같다가도 금방 또 비가 찾아오기도 하지만 비 때문에 생활이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조금 선선해진 날씨에 낮에도 이곳저곳 편하게 다닐 수 있어 좋기도 하다. 그것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어 바뀐 계절에 옷을 장만해야 한다거나 생활패턴을 바꿔야 한다거나 하는 번거로운 일은 그다지 없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비를 만나면 곤혹스러울 때도 있지만 잠깐 쉬어가거나 차를 타면 그만이다. 하지만 12월의 한가운데에 더위와 비 그리고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오간다는 사실에서 오는 묘한 이물감은 어쩔 수 없다. 

재미있는 점은 대다수의 국민들이 무슬림인 곳이지만 이곳에도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다. 커다란 몰이나 5성급 호텔 앞에는 어김없이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며 놓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웃고 있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벼운 옷차림의 사람들인 것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와 별다를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크리스마스에는 종교와 지역을 뛰어넘을 수 있는 무엇이 있어서일까?? 아이들을 위해 선물을 나누어주는 산타 할아버지 덕분일까? 아니면 그냥 반짝반짝 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 건드리는 상업적 결과물의 단면일 뿐일까?(나중에 알고 보니 인도네시아의 크리스마스는 25, 26 이틀의 공휴일을 가지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확실한 건 크리스마스에는 우리의 마음을 엮는 공통의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자신의 소원은 눈을 보는 것이라고 했다. 인도네시아 밖으로 한 번도 나가 본 적이 없다는 친구가 스마트폰으로 한국에 가득 내린 눈 사진을 보여주며 내게 말했다. 그가 보여준 사진 안에는 사람들이 밝게 웃으며 눈을 던지고 눈 오리를 만들고 또 어떤 이들은 춤을 추며 영상을 찍고 있었다. 나는 멀리 고국에 있는 그의 소원을 생각하다 문뜩 눈 내리는 오로라 밑 사람들의 소원이 궁금해졌다. 겨우 7시간을 날아왔을 뿐인데 누군가에게 당연한 배경, 그렇지 못한 소원들. 캐나다와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무엇이 보고 싶을까?? 캐나다에서 생활하고 있는 지인과 영상으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9시가 넘어가는 시간임에도 태양은 아직 반구 허리춤에 걸려 있었는데 우리나라로 따지면 5시 정도처럼 보이는 하늘이었다. 아마 그곳의 계절은 비가 아니라 낮과 밤으로 나누지 않을까? 우리의 바람은 왜 늘 저 멀리 있을까?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과 손에 닿지 않는 것의 간절함.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고 물어본다면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물어보는 것만큼 어리석은 질문일까. 이루지 못한 소망이 한둘쯤 있어야 우리가 더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라면 저 멀리 우리의 바람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캐나다에 있는 지인과 다시 통화하게 된다면 한번 물어볼 생각이다. 

"그곳 사람들의 바람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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