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속의 검은 잎 - 기형도
고선경이라는 이름의 시인의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에는 기형도의 '빈집'을 인용한 시 한 편이 있다. 시는 화자가 해고된 중국집을 떠나는 상황으로 시작하는데 일자리를 잃고 떠나는 알바생의 태도를 재밌게 묘사한다. 절이 싫어 중이 떠나는듯한 화자의 태도는 피식하고 웃음을 새어 나오게 하는데, 시인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 아마 20대 어느 날 중국집 아르바이트에서 잘린 이야기를 글로 남기지 않았을까 하고 상황을 상상하게 된다. "가엾은 사장님 중국집에 갇혔네"라고 말하며 기어이 사장님을 동정하며 떠나는 모습은 얼마나 쿨한가만은 사실 이 시는 청춘의 서글픔이 느껴저 조금 헛헛하기도 하다.
#알프스산맥에 중국집 차리기
아르바이트를하던 가게에서 잘리고 가게를 나서기 전
얼음물 좀 마셔도 되겠습니까 물었다
물을 마시면서
세상에는 야무지지 못한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쯧, 훈수를 둔 뒤 사장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
웃는 얼굴에 침 뱉기는 어렵지만
웃는 얼굴로 침 뱉기는 참 쉽다
그런데 왜 어떤 가게들은 집이라고 불리는 걸까? 술집 꽃집 찻집
가엾은 사장님 중국집에 갇혔네
(...)
어느 주말 오후 위트 있는 시 덕분에 잠깐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가 책장에 있는 기형도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집어 들게 되었다. '빈집'을 다시 읽어 보고 싶어서 잠깐 책을 펼쳤다가 주말 시간 한참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는 시들이 많아 반가운 마음에 하나하나 읽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 버린 것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이라도 몇 년이 지나고 나서 다시 펴 봤을 때 내용이 까맣게 지워 저버린 책이 있는 반면 기억에서 지워진 것 같았다가 한두 문장을 읽다 보면 다시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경우도 있다. '입 속의 검은 잎'의 경우 당연히 후자의 경우였다. 제목은 새카만데 시를 읽다 보니 그때의 감상이 되살아나 어쩐지 말랑한 기분이 돼 버렸다. 이럴 땐 책장에 책을 보관해두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최근에는 eBook 리더기를 통해 주로 책을 읽지만 이처럼 반가운 재회는 어쩐지 종이책을 통해 이루어 지곤 한다.
'샤워젤과 소다수'가 청량한 여름을 연상시키는 시집이라면 '입 속의 검은 잎'은 겨울에 접어드는 늦가을에 잘 어울리는 시집이다. 짙은 갈색과 노란색이 섞인 책의 표지도 그러하고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던 시인의 목소리가 남아 있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음울한 분위기의 글들이 많아서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오랜 병치레 끝에 먼저 떠나버린 아버지와 생계를 위해 밤늦은 시간까지 시장을 전전하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그의 시 군데군데 박혀있다. 뿐만 아니라 젊은 시인의 눈으로 본 시대의 부조리와 그 앞에서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일부는 시집 전체에서 나타나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 손사래를 치지만 서른이 채 되지 않은 시인의 모습을 상상하며 읽어보면 그 시절 시를 써내려 가던 시인의 마음을 생각해 보게 된다. '안개', '입 속의 검은 잎', '엄마 걱정' 등 좋은 시가 너무 많으니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찾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집은 워낙 유명한 시라 시집을 즐겨 읽지 않는 사람들도 어디선가 한 번쯤 읽어 봤을 것이다. 연인을 떠나보낸 화자가 사랑에 작별을 고하는 형식의 시는 짧지만 절절하다. 이 시의 백미는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라는 마지막 문장이다. 마침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빈집을 떠났지만 내 사랑(사랑한 추억 혹은 감정)은 그대로 방에 갇혀있다. 짧았던 밤들,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 더 이상 내 것이 아닐 열망들 조차 방안에 고스란히 남았다. 오늘날의 사랑과는 닮지 않았지만 사랑은 종종 다른 속도로 왔다 간다.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청춘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두근거림과 싱그러움, 열정과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20대의 나의 기억을 돌아보자면 불안함과 초조함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불신들이 떠오르는 날들이 많았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과 덜컥 어른이 되어가는 당혹감으로 술을 마시고 밤을 새우고 이따금씩 멀리 여행을 떠났다. 찬란하지만은 않았던 젊은 날들은 대체로 무질서하게 밀려났다. 기형도의 시를 처음 읽었던 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고 시가 처음 쓰인 날로부터도 많은 시간이 지났다. 나는 어느덧 불안으로부터 저만치 멀어졌지만 그만큼 청춘이라는 단어로부터도 거리가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다. 언제까지 젊음의 그늘 안에 있을 그의 시를 다시 읽고 있자니 새삼 젊은 날의 시인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늙은 사람
그는 쉽게 들켜버린다
무슨 딱딱한 덩어리처럼
달아날 수 없는,
공원 등나무 그늘 속에 웅크린
그는 앉아 있다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허용하는 자세로
나의 얼굴, 벌어진 어깨, 탄탄한 근육을 조용히 핥는
그의 탐욕스런 눈빛
나는 혐오한다, 그의 짧은 바지와
침이 흘러내리는 입과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허옇게 센 그의 정신과
내가 아직 한번도 가본 적 없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의 세계에 침을 뱉고
그가 이미 추방되어버린 곳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나의 세계를 보호하며
단 한걸음도
그의 틈입을 용서할 수 없다
갑자기 나는 그를 쳐다본다, 같은 순간 그는 간신히
등나무 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린다
손으로는 쉴새없이 단장을 만지작거리며
여전히 입을 벌린채
무엇인가 할말이 있다는 듯이, 그의 육체 속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그 무엇이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틀니라는 말은 노인을 조롱하는 말로 쓰인 지가 제법 오래되었다. 유치한 놀림거리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늙음의 본질적인 것을 후벼 파는 아픈 상징이다. 이젠 아무렇지 않게 늙음을 조롱하고 누군가의 역사는 남루한 신체 앞에서 사정없이 부정당한다. 전성기를 넘긴 20대 게이머에게 치매 노인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사회. 늙음은 이제 혐오의 좋은 무대다.
'입 속의 검은 잎'을 다시 읽으면서 눈에 띄었던 점은 중년과 노인 등 나이를 먹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긴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여기 옮긴 '늙은 사람'이다. 이 시는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영화 은교에 나왔던 대사를 생각나게 한다. 화자 자신이 언젠가 노인의 세계에 편입될 것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노인이 수십 년 전엔 자신과 같은 모습이었다는 것을 떠올리려 하지 않는다. 아무도 늙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치는 요즘 이 시는 제법 아프게 읽힌다.
세상에 만약에 라는것 만큼 의미 없는 말은 없겠지만 어쩔 수 없이 생각해 보는 일들이 있다. 유재하의 1집 '사랑하기 때문에'를 듣고 있다 보면 떠난 유재하가 아직 살아 있다면 어떤 노래들을 더 들려줬을까?? 같은 생각들 말이다. 겨우 남긴 한 장의 앨범이 너무 좋아 일찍 떠나버린 사람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특히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은 나의 최애 곡이기도 하다.
비슷한 시기에 떠난 기형도에게도 비슷한 원망의 감정이 있다. 겨우 한 장 나온 시집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을까? 청춘의 소용돌이를 지나온 기형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은 무엇보다 아쉬운 일이다. 그의 시 '장밋빛 인생'에서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라고 고백하던 시인이 살아 있었다면 몇 해 전 환갑을 지났을 것이다. 한 갑자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삶을 돌아보았을 때 어떤 고백을 했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