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삶
이방인이 시대를 초월하여 왜 그토록 유명한지 알겠다.
뫼르소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다.
그는 말 그대로 이방인이다.
그는 여느 문학 속 등장인물과 다르다.
규정지을 수 없는 사람이다.
생각이 많아 복잡한 사고를 하는 자아분열의 사람도 아니고 고전 속 인물들처럼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성을 갖고 있지도 않다. 그저 '별생각 없는 낯선 사람'이다.
그는 과거의 회한이나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그때그때 느끼는 감각과 현재에 충실하다. 삶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 사람이라면 응당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욕망을 좇기 마련이지만 그에게는 그런 것이 무의미하다. 태양의 열기, 바닷물의 차가움, 마리의 피부결 등 감각적 실재만이 중요할 뿐이다.
인간의 삶이란 어쩌면 그렇게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애초에 아무 의미 없이 존재하는데 오직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만이 삶에 자꾸 의미를 부여하려 하고 그 의미를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이 삶은 같은 결말을 향해 가는 것인데 말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이며 무엇이 진정한 인간다움인지에 대해 누가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인가?
뫼르소는 그럼에도 삶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는다. 사형을 앞둔 감옥에서 종교적 구원을 주입하려는 사제와의 격렬한 논쟁 끝에 그는 비로소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을 깨닫고 받아들인다. 우주가 자신에게 냉담하고 무심하다는 이 절박한 진실 속에서 그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존재가 세상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이야말로 그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된다. 그는 더 이상 타인의 잣대로 평가받는 '이방인'이 아니며 바로 이 순간 자신의 삶을 뜨겁게 사랑하기 시작한다.
결국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삶을 살아야 한다면 세상의 부조리함을 직시하고 거대한 의미를 찾기 위해 고통받기보다는 그저 현재의 순간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자신의 삶을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근래에 읽은 책 중에 가장 도끼 같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