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닿지 않은 '부조리의 감성'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후 내친김에 시지프 신화까지 읽어봤다.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다 읽는데까지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번역의 문제인지 카뮈 문체의 문제인지 문장들은 마치 어려운 단어들을 조합해 놓은 듯 모호했고 내 집중력의 문제였는지 쉽사리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상이 명료하다면 문장도 쉬웠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니체의 글은 난해함 속에서도 어떤 명쾌함이 있었는데 카뮈의 문체는 그저 '어려운 단어의 조합'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내가 건져 올린 단 하나의 깨달음은 '부조리' 그 자체였다. 세상은 의미 없이 존재하는데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인간들이 그 간극에서 겪게 되는 부조리함에 대한 정리는 명쾌했기에 끝까지 읽어 내렸다.
카뮈가 책의 첫머리에서 이 책을 '부조리의 철학'이 아니라 '부조리의 감성'이라고 칭한 것이 어쩌면 이 모호함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우리가 아는 시지프는 바위를 산꼭대기 정상까지 굴려 올려야 하는 영원한 운명에 처한 인물이다. 꼭대기까지 기껏 올려놓으면 바위는 다시 굴러 떨어지고 시지프는 다시 내려와야 한다.
카뮈는 시지프가 바위를 올리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 없는 습관적인 행동을 하겠지만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순간, 그는 자신의 운명을 의식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 순간 시지프는 온몸으로 자신의 운명과 부조리함을 느낀다.
하지만 카뮈는 그 바위를 올리는 순간에 잠시 느끼는 성취감과 희열, 그리고 그 부조리함을 느끼며 내려오는 동안 피어나는 반항심과 운명에 대한 거부감이 그를 '살아있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부조리를 인식한 인간이 삶으로 원상 복귀하는 최상의 결말은 반항과 통찰력을 간직한 채 삶 속으로 돌아오는 것, 희망을 갖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부조리를 인정한 후에도 삶을 지속하게 하는 카뮈가 이끌어낸 3가지 귀결은 반항, 자유, 열정이다.
삶은 곧 반항이다. 매일의 의식과 반항을 통해 운명에 대한 도전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 포기와 정반대 되는 삶의 태도다.
부조리가 알려주는 사실 중 하나는 내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종착역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오히려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자유를 되돌려 준다. 자신의 삶, 반항, 자유를 최대한 많이 느끼는 것이 바로 최대한 많이 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열정. 부조리한 삶에서 미래에 대한 무관심과 주어진 모든 것을 남김없이 소진하겠다는 현재에 대한 열정이 삶을 지속하게 한다는 것이다.
카뮈가 강조하는 것은 명철한 의식과 반항의 열정이다. 세상의 부조리를 의식하고 항상 새로워지고 항상 긴장을 유지하는 의식만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카뮈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해설하는 대목이었다. 도스토옙스키와 니체를 좋아하는지라 나의 개인적 사심이 들어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신이 된다는 것, 그것은 오직 이 지상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 그 어떤 불멸의 존재도 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이 통찰은 니체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결국 인간은 신을 믿고 영원을 동경하든가 자신을 믿고 이 삶을 자유롭게 살아가든가 하는 선택지에 놓인다.
"존재는 허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하다." 이 구절이 카뮈가 도스토옙스키를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부조리한 삶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부록으로 실린 카프카의 작품 속 부조리는 카뮈의 것보다 개인적으로 더 와닿았다. 대학교 시절 카프카의 작품들을 읽었었다. 그의 작품들은 기묘하다. 주인공들은 이유 없이 벌레가 되거나 심판을 받거나 성에 찾아가야만 한다. 하지만 그 주인공들은 그것에 크게 의문을 품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일상 속에서 그 부조리한 상황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당시에는 그저 기묘하고 답답했던 느낌이었는데 그것이 이제와 돌이켜보니 부조리함이었다. 카프카의 작품들이 부조리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의 작품들은 마치 꿈 속 같다. 말도 안되지만 결론도 없다. 부조리 그 자체다.
물론 카프카의 주인공들이 카뮈가 이끌어낸 '반항하고 열정을 갖는 삶'을 살지는 않지만 부조리라는 현상 자체를 가장 잘 포착하고 표현한 작가는 카프카가 아닐까 생각된다. 잠깐 잊고 있던 카프카의 작품에 대해 다시금 상기시켜 주는 좋은 대목이었다.
완독 후의 솔직한 결론은 내가 카뮈의 사유 방식과 완벽히 공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장은 어려웠고 그의 '열정적인 반항'이라는 결론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카뮈 작품들 독서의 가장 큰 수확은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명철한 인식을 얻었다는 점이다. '이 세계는 의미가 없다'는 진실과 마주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카뮈를 알아본 가치는 충분하다.
언젠가 다시 카뮈의 사유가 필요해지는 시기가 온다면 그때는 지금보다 조금 더 깊이 그와 대화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일단은 이 명철한 인식을 안고 다음 작가의 책으로 넘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