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결국 악의 편입니다."
45년 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연설중의 한 구절이다.
내가 그 친구를 만난 것은...
1984년도 군사독재정권의 서슬 퍼런 칼날이 사회적 공포분위기를 자아내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나는 대학교 일 학년이었고, 소위 재수(再修)를 해서 들어간 대학이었다. 이제 와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원해서 재수를 한 것도 아니요, 공부하고 싶어서 선택한 학과도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대학 새내기답게 학과 공부의 종료시간과 동시에 친구들과 학교 후문에 즐비한 술집으로 직행하여 작금의 현실과 이상을 토론하곤 했다.
학창 시절 시리즈에서 말씀드렸듯이, 나 자신이 정신 발육상태가 남보다 늦다 보니, 똑똑한 놈보다 좀 덜 떨어진 친구가 좋았다. 이것이 친구를 사귀는데 기준이 되었다.
그날은 소싯적 많이 접해보지 못한 알코올을 몸에 들어부어 정신이 몽롱한 상태이어서 나의 선택 기준을 적용하지 못한 채, 미확인 상태의 옆자리 친구와 학생운동에 관하여 난상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수가 없게도 이 친구는 민주화 투쟁의 선두에서 친구들을 이끌며 열렬하게 깃발을 날리던, 카리스마와 명석한 두뇌를 겸비한 놈이었다. 말빨에서도 밀리고 나를 논리로 들이받는 것이 정말 맘에 안 드는 놈이었다.
"너는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결국 악의 편이라는 말 몰라?"
부친이 공무원이란 핑계로 학우들의 민주화 투쟁에 제대로 동참해보지 못한 죄스러움을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던 나에게 카운터 펀치를 먹인 놈이다. 신입생 강의실에 들어와 우리들을 겁박하던 선배 앞에서 당당하게 학우들을 이끌고 강의실 밖으로 나가던 사건... 문무대 훈련소 입소 첫날, 비인격적인 교육에도 교관들의 위세에 짓눌려 찍소리 못하는 학우들을 대표하여, 교관들에게 강력 항의하던 일 ...
본인의 입으로 말한 "행동하는 양심" 실천하던 친구였다.
우리는 그 사건이 있은 후에도 친구들 모임 때마다 만나 허심탄회하게 수다 떠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졸업을 했고 각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었다.
"대한민국에서 없어져야 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삼성, 강남, 서울대..."
그날도 그 친구와 술자리를 하다가 얼큰히 취한
상태의 내 입에서 나온 소리다.
공교롭게도 그 친구는 강남구에 살면서 삼성에 다니던 때다.
"네가 원하는 세상은 하향 평준화냐?"
친구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비록 서울대는 나오지 않았으나, 없어져야 될 세 가지중 두 가지가 해당되었으니... 더구나 친하던 친구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었으니 얼마나 많이 섭섭했을까?
그 친구의 회사가 있는 거제도까지 찾아가 룸살롱에서 둘이 술 먹던 일로부터, 내가 사는 괴산까지 찾아와서 유람선을 건조하는 마을사업의 컨설팅까지 해준 친구...그 간의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제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평생의 친구로 변해 있었다. 또한 내 페북 글의 열렬한 독자이자 나를 응원해주는 지원군이다.
내 페북 담벼락에 들어온 것에만 반가워하고 있다가, 오랜만에 친구의 페북에 방문에 보니 세계가 인정하는 학자가 되어 있었다.
벌써 작년에 세계가 인정해주는 국제학회의 석학회원(碩學會員)으로 선정되었으나, 이제야 축하하고 있으니, 그동안 친구의 동정에 무심했던 나 자신 많이 쑥스러움을 느낀다.
이번 기회에 지면을 빌어 친구에게 미안함과 축하를 보낸다.
내 친구가 책상머리 학자가 아니라, 자신의 말을 실천하는 학자가 된 것에 존경을 표한다.
" 현수야!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