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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원 Sep 09. 2023

직시(直視)

어떤 문제라도 해결책을 찾고 싶으면, 문제의 본질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을 본 줄 안다는 것은 많은 시간의 수련을 통하여 전문가의 경지에 올라선 사람이나, 천부적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법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누구나 그 어려운 일을 간단하게 처리 할 수가 있는 비법이 있다.

아주 간단하다.

'직시(直視)' 하면 된다.

아무리 껄끄러운 일이라도 피하지 말고 직시하면 된다.

그러나 이것도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직시와 상대적인 개념으로 '사시(斜視)'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흔히 '사팔뜨기'라 일컫는, 사시(斜視)는 사물을 바라 볼 때 두 눈이 정렬(整列)되지 않은 육체적 질병이기도 하지만, 사물을 비스듬히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늘의 별을 관찰하거나, 어둠에서의 희미한 불빛은 직시하는 것보다 사시로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척추동물의 눈에는 망막에 상이 맺히지 않는 맹점(盲點, blind spot)이 있어 아무리 사물을 뚫어지라 쳐다봐도 못 보는 부분이 생긴다. 이럴 때는 좀 삐딱한 사시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삐딱한 시선은 필자를 저승으로 한 방에 보낼 뻔하기도 했다.

 귀농하여 표고버섯을 재배하던 필자는 배지 배양을 위하여 만든 배양대(1.5m 높이)에 올라가 작업을 하다가 발을 헛디뎌 바닥에 떨어졌었다. 정신을 잃었던 몇 분간의 시간이 지나고, 제정신이 돌아온 후, 지금 살아있음에 신께 감사를 드렸다. 물론, 아내에게 이 극적인 무용담을 얘기했다가 한동안의 애정 어린 잔소리에 5년은 더 늙어 버렸지만...

 사고의 원인은 누진 다초점 안경 때문이었다.

 눈을 흘기듯, 사물을 사시(斜視)로 보는 것이, 이 안경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연륜이 있으신 분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금방 눈치를 챌 것이다.

 배양대에 올라가 '직시(直視)'하지 못하고 '사시(斜視)'를 했으니 발을 헛디디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우리 경기고속버스 기사들이 정해놓고 식사를 하는 식당이 있다. 이곳의 위치는 필자가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하는 센트럴터미널 쪽이 아닌 경부선 쪽에 있다.

 그래서 식사를 위하여는 거구를 이끌고 경부선 쪽으로 왕복 행차를 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 덕분에 얻는 즐거움도 있다. 왕복은 하는 동선 양옆으로 고급스러운 실내장식의 브런치 전문점이나

 커피숍들이 즐비하여, 창 안쪽에 선남선녀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광경을 대놓고 볼 수도 있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세련된 복장의 젊고 아리따운 아가씨들의 자태도 감상할 수가 있으니, 식당까지 왕복하는 수고를 보상받고도 남음이 있다.

 아무리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는 꼰데라 불릴지라도 사회적 체면이 있는지라, 남의 눈을 의식해 가면서 지나고 있는데...

젊은 남녀의 대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반대편 여성에게 뭔가를 어필하느라 열심히 말을 하고 있고, 상대방 여성은 조용히 듣고 있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서로의 눈이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반응을 살피고자, 아주 미소한 표정변화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이 눈에 역력히 보이지만, 여자는 남자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남자는 직시(直視)고 여자는 사시(斜視)다

눈을 마주치는 않는 것은 '나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보이기 싫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그 남자는 전혀 인지를 못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하마터면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 "구차하게 매달리지 말고 때려치워라!"라고 남자에게 말할 뻔했다.

필자가 소싯적 영업을 할 때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 구매책임자가 있는 업체와의 거래는 신중에 중을 기하였다. 경험적으로 판단하건대, 그런 업체는 후일에 꼭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였다.


부동시(不同視)를 오래 방치하면 사시(斜視)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한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부동시로 군 면제까지 받은 자가 대통을 하고 있다. 세월이 많이 지나 벌써 사시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걸린 중요한 사안마다 직시하지 못하고 사시로 들여다보고 있으니,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겠는가? 삐딱한 시선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며, 대한민국의 치욕이다.

 국민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 지도자는 더이상 필요가 없다. 본인의 정당하지 못한 사심을 감추고자 '도리도리'하는 지도자도 대한민국은 원하지 않는다.


능력이 안되면 내려오는 것이 맞다.

이제 내려올 때가 되었다. 국민의 손에 끌려 내려오기전에 자진해서 내려와라!

그것이 윤통이 마지막으로 직시(直視)할 국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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