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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달쌤 Dec 04. 2020

나도 한때 연예인 같았어~

#1. 울산 다운초(1)

첫 발령지의 추억...

    

2004년 임용 재수를 하고 고향인 대구가 아닌 울산으로 시험을 쳤다. 대구에 또 임용을 치기에는 부담이 컸다. 내신도 안 좋고 경쟁률이 좀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울산, 경북, 경기도는 1:1.2에 가까울 정도로 경쟁률이 낮았고 난 울산에 임용을 치고 합격하게 된다. 그리고 내 예상과는 달리 3월 발령이 갑자기 나게 되어 친구 도움으로 하루 만에 원룸을 구하고 바로 ' 울산 다운초'로 교직의 첫발을 내딛는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 울산에서 꾀 규모가 컸던 다운초(52 학급 초과)는 학생들로 바글바글했고 선생님들도 무지 많았다.


첫날 떨리는 마음으로 정작을 입고 출근했다. 전교생들이 운동장에 다 나와있었다. 그리고 난 나와 같이 발령을 받은 여자 선생님 한분과 편입한 형님과 같이 조회대 단상 뒤에 서 있었다. 교장선생님께서 하나하나 호명했고 난 제일 마지막에 소개되었다.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뒤쪽에 6학년 여학생들 사이에서 엄청난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내키가 좀 크긴 한데 정장을 입어서 그런지 멀리서 보면 괜찮아 보였나 보다. 이렇게 나의 첫 학교에서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난 담임이 좋은데......


재수를 하면서 힘들 때마다 미래의 나의 반 아이들 앞에서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때가 비로소 왔는데 첫날 교장실에 모인 우리 신규 3명은 벌써 업무와 학반이 다 배정되어 있었다. 학반을 쭉 훌터보았지만 내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 권 선생님... 올해는 체육 좀 맡아주소... 교장인 내가 부탁할게... 내년에는 담임 주겠네."


교장선생님의 온화한 미소에 난 "네"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두 선생님들은 자기의 반을 찾아갔고 난 어디에 갈지 몰랐다. 그 당시 워낙 교실이 부족해서 교과전담실 여유가 없었고 체육실도 없었다. 그 당시 고학년 체육은 인기가 제일 없었는데 알고 보니 이 큰 학교에 강당이 없었다. 밖에서 주당 20시간을 생으로 했었다. 난 그래도 좋았다.  뜨거운 햇빛 아래서 5, 6학년 체육 책을 들고 운동장에서 각종 체육 도구들을 나르고 넣고를 반복했다. 책을 보고 수업을 진행하면 6학년 학생들은 나에게 말했다.


" 선생님, 재미없어요... 공이나 줘요. 축구하고 싶어요."

" 선생님 저희 앉아서 이야기해도 되죠?"


그때 6학년은 엄청 어려웠다. 나랑 나이차도 얼마 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나를 좋아했지만 수업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남자들은 축구를 할 때 나도 같이 하기도 했고 여학생은 뭐 부끄러워하거나 나를 괴롭히거나 그랬던 것 같다. 여름이 오자 내 얼굴은 정말 완전 갈색으로 변했다. 선크림도 제때 바르지 않았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기진맥진하여 교과실에 낡은 등받이 의자에서 30분 정도 잠들었다. 교과실은 옥상문 나가기 전  빈 공간이었고 영어 선생님 2분과 같이 썼었다. 참 열악했던 한 해였다. 그리고 난 군대를 가고 다시 왔고 첫 발령 때 교장선생님은 퇴임하시고 다른 교장선생님께서 또 체육전담을 주셨다. ㅠㅠ



여학생들이 부담스러워......

수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6학년 여학생들이 참으로 어려웠다. 혼내면 삐지거나 울고(요즘은 울면 더 혼낸다. 일부러 그러는 경우가 많아서) 난 마치 큰일이 난 것처럼 달래면 수업은 어느새 엉망이 되어 버린다. 한날은 여학생이 울자 또 난 가서 달래려는데 그 당시 연배가 많은 선배 교사가 나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시더니 그 여학생 등짝을 세게 두드리면서 "울지 마"라고 소리쳤다. 아마 내 모습이 안쓰러우셨나 보다. 그리고 복도를 지날 때마다 복도 창문으로 6학년 여학생들이 손뼉 치고 환호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편지나 선물도 많이 받았고 간간히 나를 좋아한다는 여학생들이 짖꿎은 말을 하고 도망가는 경우도 많았다. 나도 인기가 많은 것이 싫지만은 않았지만 이건 뭐 수업은 다시 생각해도 엉망이었다. 교사로서는 거의 빵점이었다.                    


그래도  많은 사랑을 받았어...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교에 선생님들 대다수가 나에게 참 많은 사랑을 주셨다. 내 실수에 웃으시며 가르쳐주시고, 첫해에 그 많았던 회식자리에서 내가 돈을 낼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내려고 하면 화를 내시며 나중에 네가 내 나이가 되면 사주면 된다고 늘 말씀하셨다. 학교에서 난 교사이기보다 학생에 가까웠다. 누군가는 말한다. 교직을 시작하는 첫 학교가 가장 중요하다고... 그때 첫인상이 선생님 교직의 평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나에게 첫 학교에서 첫 해를 생각하면 참 기분이 좋다. 뜨거운 햇빛 아래 땀 흘리며 엉망인 수업에 웃으며 따라준 학생들이 있었고 넓디넓은 운동장 위로 가끔씩 지나가는 뭉게구름이 참 좋았다. 앞으로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지만 이 첫 감정은 늘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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