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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혼자만의방 Feb 11. 2024

인생이란 외로움과 두려움과의 싸움이다.

명절이 되니 가슴이 덜컹.

이혼의 후유증이다.

후우...괜찮아. 괜찮아.

이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뛰었나?

숨이 가쁘면 괜찮아질거야.

초조했다.

해변가를 달리기 시작했다.

조깅하는 사람들 멋져보였었는데...

이런저런 사연이 있었겠구나.

다들 살기위해 애쓰고 있구나.

배가 고팠다.

바닷가 횟집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러나 어디에도 혼자 먹을 수 있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 혹시...회덮밥되나요?

아뇨. 자리 없어요.

네...

죄인마냥 부끄럽게 돌아섰다.

다음 그리고 다음. 그리고 다음, 다음, 다음 간판.

밖에 나와 있는 물고기 잡이채를 든 아저씨.

사장일까? 손님일까?

혹시...회덥밥되나요?

나를 힐끗보고는 1초정도의 망설임. 네 그럼요.

아아.감사합니다.

어서오세요~ 하이톤으로 나를 맞이하는 아주머니.

저렇게 밝게 손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

주인아주머니인가 보다.

2층으로 올라가세요.

회덮밥 시킬건데 올라가도 되나?

저..혼자왔는데...

네. 2층으로 올라가시면 되요~ 여기 손님 한분 올라갑니다.

경쾌한 목소리로 무선기에 말하는 아주머니.

아아...감사합니다.

왁자지껄 대가족, 단체손님들로 북적이는 테이블들.

이미 차려놓은 상들. 다 4인씩 차려져있다.

어디에도 앉지 못하고 서서

저...혼자왔는데 어디 앉아야될까요?

아무데나 않으셔도 되요.

감사합니다.

3인의 상을 치우는 아주머니.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뭐가 죄송하세요.

눈물날 뻔.

다정하고 친절한 목소리에

힘이 났다.

나. 이렇게 외로웠나.

이렇게 위축되어 있었나.

회덮밥은 정말 맛이 없었다.

그렇지만 아주머니는 한상 가득 반찬을 4인용만큼 가져다 주었다.

나는 정말 맛있게 싹싹 먹었다.

먹어선 안되는 미역도 먹었다.

아주머니가 먹는 방법까지 설명해준

친절담긴 미역을,  그 마음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문득 내 자신이 참 안쓰러웠다.

돈내고 사먹는 건데

뭐가 이리 죄인이고 죄송하고 감사한지.

나는 어떤 대접을 받고 살았던걸까?

잘못한 것도 없이 왜 이리 위축되는 걸까.

친구를 먼저 보냈다.

고속버스터미널에 데려다주고 돌아서려는데

마음이 초조했다.

내가 말을 잘못하지는 않았을까?

혹시 서운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그녀는 내일 애인을 보러 서울로 돌아간다.

나는 혼자 남겨진다.

그녀의 애인은 유달리 다정하고 따듯하다.

내게도 그런 애인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기 전에

아니 나는 이제는 더이상 누구에게도 맞추고 싶지 않다고

합리화한다.

그런데 이 초조함은 무엇일까?

아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얼마나 듣기 싫었겠어.

자책이 시작된다.

그만. 그만하자.

크게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자책은 그만하자.

그렇게 사소한 일로 끝나버릴 관계라면 끝나도 괜찮다.

아니, 끝나야만 한다.

나는 마음을 다잡는다.

타인에게 휘둘리지 말자.

타인이 내게 느끼는 감정으로

나를 재단하지 말자.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자.

인생은 외로움과 두려움과의 싸움이다.

혼자가 될 두려움.

혼자인 외로움.


손이 시려워 많이 뛰지 못했다.

가슴에 초조함이, 답답함이 남아있다.

14층. 엘리베이터는 11층에서 올라가는 중이다.

그래. 계단으로 올라가자.

9층쯤 올라가니 호흡이 턱까지 차오른다.

포기하고 엘리베이터를 향했다.

또 다시 11층에서 올라가는 중이다.

하아..그래 5층만 더 올라가자.

어느새 올라가다 보니 15층이다.

힘든 고비를 넘기면 어느새 14층에 다달아 있구나.

허벅지가 땡기니 외로움이고 두려움이고 잊었다.

소리에 민감한 친구가 가고

너무나 보고 싶었던 넷플릭스를 튼다.

눈치보면 먹지 못했던 피자를 시킨다.

살인자0난감을 정주행한다.

늘 불안하다는 최우식은

카메라 앞에서도 그대로의 자신으로 있다.

그런데 나는 뭔가?

불안을 감추느라 과장된 목소리와 몸짓.

진짜 불안할 때 어떤 목소리와 몸짓인지

알지 못한다.

매일 감정을 숨겨왔기에

정작 어떻게 연기해야하는지 갈피를 잃어버린다.

이래서 배우가 되겠니?

하긴. 니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게 되겠다고 했니.

이제는 부끄러워하기도 부끄럽다.

말이나 말지.

어찌나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는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수많은 충동적인 이야기들을

뭐라고 떠들어댔는지 기억하고 싶지 않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더워서그런가?

발코니 문을 열어본다.

그래 파도소리를 들으면 좀 나아질거야.

밖으로 나가본다.

14층 위에서 콘크리트 바닥을 바라본다.

얼마나 사는게 두려워야

이 높이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걸까?

이 공포를 이겨낼 만큼 생이 공포스럽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이로듭을 탔을 때의 공포가 떠오른다.

그래. 그건 놀이기구인줄 알면서도

안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떨어지는 느낌이 무서워서 죽을 뻔 했다.

감정은 사실과 다르다.

그러나 나는 이러나 저러나 공포감에 압도된다.

감정에 초연할 수 있다면

이 높이에서 번지점프도 스카이 다이빙도 모두 웃으며 할 수 있겠지?

그런 대범한 심장은 타고나는 것일까?

나는 아무래도 즐길 수는 없을 거 같다.

겁쟁이, 쫄보.

이런 내가 싫다.

강해질 수 없다면 숨기지 말자.

불안한 눈빛, 불안한 몸짓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최우식이 너무나 멋지다.

강한 척 감정을 숨겨온 내 안에는

수치심이 겹겹이 쌓여 있다.

그래서..벗겨도 벗겨도 부끄럽고 부끄럽다.

슬플 때 슬픔을

당황했을 때 당황을

화났을 때 분노를

난감할 때 원할 때 숨기고 싶을 때 자랑하고 싶을 때 기쁠 때

그 마음을 들키고 싶다.

말로 다 표현하지 않았을지라도

감정을 들키고 싶다.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숨기지 못하고

얼굴과 말투에 묻어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인간적인.

그렇지 못한 나는

감정을 들키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나는

그럴 용기조차 없는 나는

오늘도 혼자 남아있다.

인생이란 외로움과 두려움과의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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