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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 멜 Dec 06. 2022

현실과 가상의 괴리에서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청춘’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마냥 좋은 장면들로만 포장할 수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청춘은 아름답지만 아프고, 불완전하고, 위태롭다. 그런 청춘을 지나온 사람들은 학창 시절의 기억이 그저 하나의 추억으로,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성장통으로 치환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절을 견딘 과거의 ‘나’는 분명 괴로움에 발버둥 쳤을 것이다. 이와이 슌지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아픈 상처로 얼룩진 청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을 구태여 극복하려 한다거나, 아름답게 감싸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느 성장영화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결국 이 영화는 성장영화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누구에게나 힘든 현실이 존재하고, 영화 속 인물들 또한 그런 현실과 함께 견디기 힘든 우울과 고통을 겪고 있다. 단짝이던 유이치와 호시노는 한순간에 관계가 틀어졌고, 유이치는 왕따를 당하기 시작했다. 한 명이 폭력적으로 군림하는 그 관계 속에서 유이치는 저항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힘든 현실로부터 도피해 가상의 세계에서 위로를 갈망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괴리는 여기서부터 나온다. 현실과 가상의 관계가 완전히 반대라는 것이다. 서로가 누군지 모르고 만난 웹상에서의 유이치와 호시노는 서로의 고독과 아픔을 위로하고 보듬어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결국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비극이 벌어진다. 영화는 그런 불안정한 청춘의 모습을 어지러운 카메라 무빙과 편집, 그리고 알 수 없는 텍스트들로 표현한다. 흔들리는 카메라 무빙은 불안정한 심리를 표현하고, 어디에서 끊어질지 알 수 없는 편집은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 없는 인물들을 나타내는 듯하다. 중간중간 영화에서 아름다운 장면이나 음악이 나올 때는 그들이 겪는 고통스러운 현실과 대비되면서 그 현실의 무게가 더 크게 다가온다.

 유이치와 호시노의 관계는 어느 한쪽이 가짜라고 말할 수는 없다. 현실의 폭력도, 웹상에서의 위로도 그들의 진짜 모습이었다. 영화는 이로써 위태로운 청춘의 두 얼굴을 보여주면서도, 그 괴리가 결국 어떤 비극을 불러일으키는지 보여준다. 엔딩에서 들리던 ‘I wanna be…’라는 가사가 계속해서 맴돈다. 그들은 무엇이 되고 싶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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