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degas Gomez Cruzado
스페인에는 다양한 와인 산지와 스타일이 있지만, 스페인을 대표하는 지역을 딱 한 곳만 꼽으라면 그건 리오하일 것이다. 리오하의 와인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새 아메리칸 오크에서 숙성하는 바닐라와 토스트 풍미의 전통적인 스타일의 와인부터 한 밭에서 나는 다양한 품종을 모두 혼합하여 만드는 필드 블랜드 field blend까지 그 구성이 상당히 다채롭다. 다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주로 들어오는 리오하 와인은 전통적인 방식의 와인이 주류를 이루다 보니, 조금 다른 스타일의 리오하를 시도해 보려면 역시 현지로 가는 수 밖엔 없다. (국내 와인 시장 전망이 당분간 안 좋다고들 하는데, 향후 수입 다양성이 조금 우려된다…)
올 초, 유니크한 리오하 와인을 찾고자 스페인에 다녀왔다. 우리가 거점으로 삼은 곳은 리오하의 와인 수도라 불리는 아로 Haro로, 리오하 알타 Rioja Alta를 기반으로 하는 많은 대형 와이너리들이 아로에 자리 잡고 있어 편하게 몇몇 와이너리를 둘러볼 수 있었다. 리오하 알타 지역은 리오하 알라베사 Rioja Alavesa나 리오하 오리엔탈 Rioja Oriental에 비해 대형 와이너리들이 많은데, 필록세라 피해가 컸던 보르도의 생산자들이 내려와 고도가 조금 높은 평지 땅을 많이 매입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기후변화와 떼루아에 대한 강조로 알라베사의 험준한 언덕이나 비탈에 위치한 밭들이 더 가치가 상승하였으나, 여전히 전통의 강호들은 많이들 알타에 머무르며 좋은 포도를 포도원으로부터 매입한다. (양조 시즌에 방문하면 트럭이 대형 저울 위에 멈춰 서서 매입할 포도 무게를 재는 걸 볼 수 있다고 한다. 리오하의 감독관도 동행하여 감시한다고 하는데 구경해 볼 수 있으면 진풍경일 듯하다.)
스페인은 저렴한 인건비 등을 내세운 대량 생산자가 많아서 오랜 숙성 기간 등을 거치는 리오하 와인들도 특정 금액 이상을 넘어서기가 어려워 대량생산을 요하다 보니 스타일의 다양성을 추구하기가 쉽지 않았었는데, 최근 기후변화와 트렌드의 변화등으로 인해 마이크로 끌리마 micro-climate와 떼루아를 강조한 소형 생산자들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시도들이 시작되었다. 대형 와이너리에서도 인기 품종 이외 오랜 시간 외면받았거나 잊혔었던 자생종 탐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토양의 특색을 반영하는 와인들을 소량 출시하면서 리오하의 와인이 다채로워지고 있다.
리오하 알타의 대형 생산자 중 하나인 Gomez Cruzado는 1800년대 후반부터 아로를 지킨, 역사가 긴 와이너리 중 하나로, 아직 국내에 정식 수입이 되고 있지는 않아 아쉽게도 한국에서 만나보기는 어려운 생산자이다. Gomez Cruzado 또한 미국산 새 오크를 쓴 전통 방식의 리오하 와인을 만들어오던 생산자이나, 최근 트렌드에 맞춰 토착 품종을 찾아내 연구하고 필드 블랜드나 떼루아를 반영하는 와인을 많이 시도하고 있다. 포도는 모두 손수확하며, 지속적으로 와인에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리오하에 방문하며 몇몇 와이너리들은 사전 예약을 하고 방문했지만, Gomez Cruzado는 예약 없이도 충분히 방문할 수 있어 아침 일찍 (와이너리 오픈런) 첫 손님으로 입장했다. 뒤에 점심 예약이 있어 별도 투어 없이 테이스팅을 진행했는데, 테이스팅 하는 와인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주고 테이스팅 룸이 실제 오크 숙성하는 숙성고에 위치해 와인 배럴들에 둘러싸여 와인을 마시는 귀한 경험을 할 수 있어 좋았다.
Gomez Cruzado에선 다양한 와인 테이스팅 코스가 있었는데, 우리가 가장 관심 있는 떼루아별 테이스팅에 가장 기본 라인인 오노라블레 Honorable를 추가하여 테이스팅을 진행하였다. 마신 와인들의 특징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Montes Obarenes 2016 (Viura 65%, Tempranillo Blanco 25%, Malvasia 5% and local varieties. 새 프렌치 오크 80%, 콘크리트 숙성 20%)
- Acidity: H
- dry
- Body: M
- Acl: 14.5% H
- Length: Long
Notes: 사과, 흰 꽃, 꿀, 버터, 버섯, 타임, 바질, 게뷔르츠트라미너 같은 망고, 리치. 팔레트에서 짠 기와 젖은 돌.
몬테스 오바레네스는 근처에 있는 산 이름으로, 와인은 그 밑의 북서향 밭에서 난 수령이 100년 이상된 비우라를 활용한다. 뗌쁘라니요 블랑코는 30년 이상된 다른 밭에서 가져와 블렌딩 한다고 한다. 꽃과 과실향을 극대화하기 위해 오크 안 쪽을 그을려서 구부리는 방식이 아닌, 스팀으로 열을 가해 구부려서 구운 오크에서 나올 수 있는 토스트 향을 최소화했다. 1년에 8,000 병 정도 생산하며, 아로마틱이 다양하게 나오는 데 산도가 좋아서 밸런스가 훌륭하다고 느꼈다. 게뷔르츠트라미너나 비오니에의 바디를 낮추고 산도를 올린 느낌이랄지, 기존 비우라 100% 보다 훨씬 풍부한 향과 구조감을 나타냈다. 테이스팅 때 만족스러워 친구와 나눠 마시려 한국에 사 왔을 정도.
Pancrudo 2021 (Grenache 100%, 스테인리스 스틸 발효. 65% 프랑스산 오크 및 35% 콘크리트 숙성)
acidity: M+
dry
tannin: M
body: M
Length: long
Acl: 14.5% H
Notes: 블루베리, 블랙베리, 플럼, 버터, 캔디, 메탈(철분)
판크루도 산자락에 위치한 650m 고도에 위치한 4 hct. 의 밭에서 나는 그르나슈로 만든 와인이다. 토양은 철분 함량이 높은 점토성 토양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미네랄 함량이 높다고 한다. 스테인리스 스틸에서 알코올 발효 후 젖산전환은 프랑스산 오크 배럴과 달걀모양 콘크리트에서 진행하는데, 이 달걀 모양 덕분에 지속적으로 대류가 발생해 와인이 안에서 알아서 움직이며 잘 섞인다고 한다.
약간 물 빠진 루비 컬러에 rim에 약간 푸른 끼가 도는 와인으로 맛은 살짝 블루베리 콩포트를 얹은 빵 느낌이었다. 팔레트에서 느낌이 예쁜 와인이었다.
Cerro Las Cueves 2021 (Tempranillo 80%, Graciano 12%, Mazuelo 3%, and Garnacha 5%. Foudre &프랑스산 오크 숙성)
acidity: M
body: M
Acl: 15% H
tannin: M~M+
Length: M~M+
Notes: 정향, 삼나무, 후추, 붉은 자두, 블루베리, 보리, 약한 커피, 파프리카, 약간의 vegetal
경사진 비탈에 위치한 척박한 석회질 토양의 밭에서 키운 80년 넘은 수령의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들로 만든 와인으로, 리오하의 전통 대형 오크통 형태인 푸드레 Foudre 및 프랑스산 오크에서 숙성하였다. 깊은 자주색, rim에는 살짝 보랏빛을 띄는 와인으로 전통적인 방식의 리오하 와인을 좋아하지만 미국산 오크의 기름지고 달달한 바닐라향은 싫은 사람에게 딱이다. 생 삼나무향에 과실도 너무 튀지 않고 차분해 밸런스가 좋다. 색과 과실향 더 잘 백업해 주기 위해 그라시아노를 추가하고 척박한 석회암 토양에서 오는 강건하고 구조감 좋은 타닌도 한몫한다.
Honorable 2019 (90% Tempranillo, 10% local varietal. 프랑스산 오크 및 20% 미국산 오크 18개월 숙성)
acidity: M
tannin: M
Acl: 14.5% H
body: M
Length: Long
Notes: 블랙페퍼, 플럼, 블랙베리, 삼나무, 크랜베리, 약간의 바닐라와 vegetal (살짝 덜 익은 느낌)
Gomez Cruzado의 대표 와인으로, 해당 와이너리의 첫 와인이자 리오하의 첫 수출와인으로 대표성을 갖는 와인이라고 한다. 숙성 등 조건을 따지자면 리제르바 급 와인지만, 기존 이름의 명성이 있어 라벨에 리제르바 표기를 거부하여 리오하에서는 green label, 즉 제네릭한 등급으로 출시되고 있다. 타닌 추출을 줄이고 부드럽게 하기 위해 줄기를 제거하고 펌핑오버를 시행하며, 가볍게 토스팅된 프랑스 및 미국산 오크에서 약 18개월 이상 숙성한다고 한다.
리오하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미국산 새 오크를 많이 활용하는데, 이는 이 지역 와인에 특징적인 토스트향과 녹진한 바닐라향을 부여한다. 다만 사람들의 입맛이 점점 아메리칸 오크보다는 생나무향이나 향신료향을 보다 강조하는 프렌치 오크로 조금씩 변하고 있어 최근 리오하에서도 프렌치 오크도 함께 사용하는 와이너리가 늘어나고 있는데, Gomez Cruzado도 그랬다. Gomez Cruzado는 가장 클래식한 라인업에도 일정 비율 이상 프랑스산 오크를 활용하며, 오크의 나무향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와인을 생산하고 있었다. 또한 토양의 구성이나 고도, 방향등을 고려해 싱글빈야드나 토착 품종을 다양하게 활용하여는 노력이 돋보여 정말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