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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 Oct 29. 2023

나파 밸리 Napa Valley] 보르도와 캘리의 만남

Opus One Winery

새로운 시선, 나파 밸리새로운 시선, 나파 밸리

오푸스원은 방문 직전까지 갈지 말지 망설였다. 소위 ”강남 와인“으로 유명해 있어빌리티(?)만을 강조한 와인이 아닐까 싶어 망설였지만, 색안경을 끼고만 보기에는 Robert Mondavi와 Philippe de Rothschild, 미국과 프랑스의 두 거장이 함께 합심해 만들어 낸 와인과 와이너리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래서 직접 와이너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맛을 보고 나서 판단하기로 했는데,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정말 크게 후회할 뻔 했다. 역시 그 무엇이든 함부로 속단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신전같은 오푸스원 와이너리 외관

방사형으로 펼쳐진 포도밭 한가운데 현대식 신전처럼 놓인 오푸스원 와이너리 건물은 웅장하다 못해 약간 신성했다. 우리를 안내해 준 오푸스원의 와인 에듀케이터, 브랜든은 원래 새하얗던 건물이 누렇게 변색된 모습을 보게 되어 안타깝게 되었다고 했지만, 난 오히려 약간 누르스름한 그 톤이 주변의 포도밭 밑 자갈밭과 비슷해 주변 경관과의 연결성이 좋다고 생각했다. 너무 하얬다면 오히려 와인이나 지상의 일과는 일절 상관없는, 신탁을 받는 델포이 신전 같았을 듯했다.

와이너리 건물 중심으로 포도밭들이 뻗어있다, 여기 건너편이 토칼룬

테이스팅은 내부와 외부 중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데, 우린 캘리포니아의 장렬한 태양을 맞으며 와인을 마시고 싶어 테라스를 선택했다. 우리가 방문한 지난 8월, 테이스팅은 오푸스원 2017, 오푸스원 2019, 그리고 오버츄어 Overture 이렇게 세 종류였다.

코스터 뒷면엔 각 빈티지의 설명이 쓰여 있다.

오푸스원은 까베르네 소비뇽 Cabernet Sauvignon/ 메를로 Merlot/ 까베르네 프랑 Cabernet Franc/ 쁘띠 베르도 Petit Verdot 블랜드로, 보르도 블랜딩을 미국 토양에서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매 빈티지마다 기후뿐만이 아니라 포도 열매가 언제 맺혔는지, 언제 어떻게 땄는지, 껍질 접촉은 며칠을 시켰는지 블랜드는 각 품종 당 몇 퍼센트를 썼는지 상세히 서술하여 현재 와인이 내는 그 맛과 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소개한다. 오푸스원은 꽤 오랜 시간 블랜드로 싱글 라인업을 유지하다 얼마 전부터 세컨드 라인인 오버츄어 (NV)를 내고 있는데, 오푸스 원은 동일한 블랜드지만 매해 조금씩 기후에 따라 맛이 다른데, 이를 조금 더 넓은 범주에서 -같은 밭, 같은 숙성을 거친 와인을- 블랜딩해  전반적인 균일성을 조금 더 맞춘 게 오버츄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시면서 적어둔 노트

2017 빈티지 오푸스원은 베리류의 붉은 과실향과 커피, 잔디, 보리의 구수한 맛이 좀 더 메인이라면 2019년은 좀 더 peppery 하고 산도가 높고, 민트류의 허브향, 말린 장미향이 주류였다. 2017년의 경우 5년 간의 가뭄이 지나고 비가 많이 내리는 봄, 영양과 수분이 가득한 해에 heat wave가 몇 차례 있던, 날씨가 꽤 변덕스러웠던 데 비해 2019년은 평이하고 무던한 해였다고 한다. 2017년이 좀 더 과실이 터지는 다이내믹한 향을 낸다면, 2019년이 좀 더 차분하고 편안했던 이유가 아닐는지 싶다. 지배적인 향은 달라도 두 빈티지 다 밸런스는 환상적. 그야말로 변태같이 맞춰놓은 와인이었다. 오버츄어는 2018년에서 2019년 사이에 만들어진 블랜드였는데, 오푸스 원에 비해 팔레트가 비고 감초맛이 강했다. 산도가 올라오긴 하지만 조금 아쉬웠다.

와인 제작하는 장비들

와인을 마시고 브랜든의 가이드를 따라 와이너리의 연구실, 지하의 생산시설 및 저장고 등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겉에서 봐선 큰 건물 한 동이라 시설이 크거나 대단할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지하로 어마어마한 공간이 있었다.

바닥에 동그란 게 뭘까하고 들여다보니 스틸 탱크의 윗부분들이었다.
대형 스틸 탱크들이 쭉 서있다, 중간중간에 바리끄들.

스틸탱크들이 줄줄이 서 있던 공간은 얼마나 웅장하던지, 미국과 자본주의의 스케일을 제대로 느끼고 왔다. 오푸스원 와이너리의 기획 단계서부터 생산, 동선 등 모든 요소를 고려해 설계했다고 하는데, 역시나 계단 하나 허투로 만든 게 없었다. 역사가 짧은 대신 생산에 대해 세심하게 고민한 흔적이 돋보였다.

실험실에서는 직원들이 각 와인들을 섞어가며 실험하고 있었다

오푸스원이 아직까지도 명실상부 나파 와인을 대표하는 와인 중 하나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요소를 세심하게 고려한 건물 설계부터 지속적인 연구, 변하는 기후에 대한 고찰까지, 오푸스원은 지금도 한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그저 비싼 와인 이라고만 불리기엔, 한없이 아까운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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