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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필 Apr 29. 2022

아일랜드 식탁

단편집

조용함 속에 들리는 작은 소음이 좋다.

간간히 들리는 다른 집의 물 떨어지는 소리, 무언가 쿵쿵거리는 소리와, 어딘가의 집에서 보고 있는 티브이의 소리, 그리고 내가 타이핑하는 키보드의 소리.


처음 와이프와 집을 보러 다니기로 했을 때, 난 나의 공간이 필요했고, 투룸이나, 쓰리룸 정도로 허름한 집이라도 상관없으니 내 방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집들은 내가 가진 돈으로는 구하기 어려웠고, 있다 해도 너무나 낡은 집이라 와이프의 동의를 구하긴 어려웠다.

그러다가 지금 사는 집을 찾게 되었는데, 1.5룸으로 방과 거실이 분리가 되어있는 형태였다. 

다시 말해 내가 필요한 내 공간은 지워졌고, 적절하게 현실과 타협을 하게 되며, 마음에 드는 구석을 찾아야 했다.

그게 바로 지금 내가 앉아있는 주방의 작은 아일랜드 식탁이었다. 앉아서 무언가 하기 좋은 높이, 질감, 그리고 색감.

하얗고 적당한 높이의 이 아일랜드 식탁은 나에게 단순히 밥을 먹는 곳이 아닌 이 작은 1.5룸 오피스텔에서 가장 늦은 시각에 홀로 있을 수 있는 창조의 공간이자 사색의 공간이 되었다.

늦은 새벽 이 식탁에 앉아  다른 집의 작은 소음들을 백색소음 삼아 집중을 하고,  타이핑 소리가 반사되어 공간을 채울 때 내가 무언가 쓰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게 한다.


어릴 적에 글을 쓰고 있으면 차분해졌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이 날뛸 때 하얀 종이, 또는 화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고요해졌고, 한 글자 한 글자 적다 보면, 내가 마주한 문제의 해답들이나, 답답함이 해소되는 경험을 하곤 했다. 힘든 시간마다 끄적이는 낙서라 해도 글을 조금씩 그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써왔는데, 언제부턴가 글을 써서 돈을 버는 방법들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고, 날 위로하기 위해 쓰던 글이 아닌, 돈벌이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하얀 종이를 바라보면 더욱더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하여 글 쓰는 게 전혀 즐겁지도 않고 괴롭기만 했다.


그렇게 끄적임을 멈추고 한참이 흐른 뒤, 제주도로 자의로든 타의로든 이주를 하게 되었고, 이곳으로 이주하는 데 있어서의 생각과, 경험, 걱정 그리고 끝없이 부딪히는 신혼생활과 현실-돈, 직업, 직장- 등의 압박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했고, 새벽의 이 작은 식탁에서 원래 글을 쓰던 이유로 돌아가 생각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시 글을 쓰게 해 주었다.


그렇기에 이 공간 안에서 내가 쓰는 글들은 내 생각의 기록일 수도, 소설이 될 수도, 그저 낙서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으로부터 나오는 이야기들이고, 모두 다 내일 더 나은 내 삶이 되길 바라며 내게 던지는 위로로 쓰는 글들이기에, 나와 같이 현실이 어렵고, 위로가 필요하고,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내가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란다.


이 조용하고 차분한 공간 속에서 쓰고 있는 글 또는 낙서들이 나에게 희망이고, 기쁨이고, 즐거움이듯, 누군가에게도 그렇게 다가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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