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필 May 01. 2022

푸른 밤, 불어오는 바람-1

단편집.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저 아무런 계획은 없었고, 목적지는 있었다. 제주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회사에서 몇년간 정말 열심히 일했다. 야근은 밥 먹듯이, 회식은 주에 한번씩, 그로인해 약해진 위장병은 덤으로.


하지만 한번도 꾀를 부리거나 아프다는 핑계로 회사를 쉬거나 한적도 없었다. 그냥 묵묵히 일을 해왔을 뿐이었다.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차츰 차츰 갉아먹고 있을 줄은 모른채.


한달 전 쯤 회사 인사발령이 있었다.

당연히 연차로 따졌을때, 올해 승진 대상자로 알고 있었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상사도 미리 승진 축하한다고 했으니, 의심할 이유조차 없었다.

하지만, 승진명단엔 이름이 없었다. 두번 세번 봐도 없었다. 승진에서 제외된 것이다.


애써 웃어 넘기고, 퇴근길에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며, 맥주한캔을 사들고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 반캔 정도 마셨을때, 갑작스럽게 구역질이 나와, 참지 못하고 변기를 부여잡고 토를 했다.


어질어질.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잠을 청하면 좀 괜찮아지겠지 했지만, 한숨도 자지못한 채 다음날 아침까지도 빙글빙글돌아 미칠 것 같았다.

처음으로 회사에 병가를 냈고, 운전도 할 수 없어 택시를 잡아 병원에 갔다.


의사가 뭐라뭐라 하면서 원인을 설명해줬는데, 들린건 '스트레스로 인한' 이라는 단어밖에 들리지 않았다.

회사 생활이 인생의 거의 전부 였던 내게 회사에 대한 노력이 인정받지 못했다는게,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것 이라는게 의사의 의견이었다.


실제로 난 회사, 집 외엔 주말엔 술한잔 하는게 전부였고, 딱히 취미랄 것도 없이 그저 퇴근 후 맥주 마시기가 행복이었으니, 회사뿐인 삶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렇게 꼬박 하루를 쉰 뒤 다음날 출근하는 길은 천근만근이었고, 사무실에 앉아 늘 보던 메일과, 업무 지시서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이야기조차도 그저 웅성거림으로 밖에 안들렸다.


'퇴사해야겠다.'


점심시간이 되었을때 생각했다. 아니 결정했다.

이렇게도 행동적인 사람이었나? 점심시간이 끝나고 바로 상사에게 다가가 퇴사를 얘기했다.

그는 승진이 누락되어 그러는 것이냐며, 자기가 미안하다고 뭐라뭐라 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퇴사가 하고싶어졌다. 나를 찾아야할 것 같아졌다.


몇 번이나 면담을 했을까, 다음해의 승진을 약속하기도, 연봉 인상을 제시하기도, 유급휴가를 보내주겠다고도 꼬셨지만, 그저 퇴사만을 요구했고, 결국 연차 소진 후 퇴사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마지막 출근 후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그저 한동안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


지금까지 보내온 시간들은 값진 시간이었음은 틀림없다. 많이 배웠고, 좋은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스스로를 잃어갔다. 잃어버린 것을 찾아야할 시간이다.


그래 여행을 떠나자. 

휴대폰을 열어, 다음날로 떠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제주도 9시 20분 비행기. 김포 출발.


계획은 없다. 그저 목적지만 정했을 뿐. 



to be continued.




매거진의 이전글 아일랜드 식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