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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장군 Nov 22. 2020

삶을 함께 나누는, 반려동물

뉴질랜드에서 생각을 보내요

강아지 흑역사

어릴 적 할머니네서 살았던 적이 있다. 그린벨트라고 불리는 서울 외곽 지역이라, 주택가 언덕 꼭대기였다. 학교 가려면 그 길을 다 내려가 버스를 타야 했고, 동네엔 개들이 즐비했다. 끈이 묶여있지 않은, 체형도 색도 다양한 똥개들이었다. 나를 보며 반가워 짖고 졸졸 따라오던, 걔네들이 너무 무서워 골목골목 돌아 개들을 따돌리고 집에 오곤 했었다. 그 이후 지인들의 강아지나 고양이들이 귀여웠지만, 난 여전히 접촉은 무서워하는 겁쟁이였다.

뉴질랜드에서 지금 사는 집에 들어온 첫 날, 거실 바닥 문틀에서 코를 찌르는 정체불명의 지독한 냄새가 났다. 알고 보니 전에 살던 사람이 아주 큰 개를 키웠는데 그 개가 그 곳에서 계속 소변을 봤단다(윽!) 청소를 아무리 해도 냄새를 지울 수 없어 연락했더니, 부동산 중개인이 그 냄새에 특효약*이라며 아주 독한 스프레이를 줘서 한 네 다섯 번 뿌리고 나니 서서히 없어졌었다. 왜 주인이 이번 세입자를 구할 땐 'No Pet'을 명시했는지 이해가 갔다.**

옆집 할머니 말에 따르면, 그 사람은 유명한 변호사였고, 싱글이었다는데 그리고 출장 때문에 집도 자주 비웠다던데, 그럼 그 개는 혼자 이 큰 집에서 뭘 한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나 주인을 기다렸을까. 그 문틀에 쉬야를 하면서...

모두의 삶에 녹아있는 반려동물

예상은 했지만 여긴, 아주 아주 아주 반려동물이 많다. 공원을 가도 1인 1강아지 기본이다. 종류도 다양하다. 한국의 아파트나 빌라가 제한하는 작고 귀여운 종류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사이즈와 털색깔, 털모양의 강아지를 본 것 같다.

강아지파와 고양이파로 나뉘는데 물론 강아지와 고양이를 함께 키우는 가족도 많다. 싱글들도, 룸메이트들이 사는 집도, 노인 혼자 사는 집도... 어떤 세대든 어떤 상태든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삶이 그렇지 않은 삶 만큼 자연스럽다. 싱글일 때부터 반려동물이 있는 경우가 많다보니, 동거나 결혼을 해도 자연스럽게 그들을 함께 키우다가, 아이가 생기면 아이와 반려동물을 다같이 부양하는 셈이다.***

s도 학교에서 배우는 것 중 하나가 강아지를 대하는 법이었다. 어느 날 브로셔 같은 걸 들고 와서 봤더니, 자신의 몸을 안전하게 지키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그 중 한 챕터가 강아지가 근처에 있을 때 해서는 안되는 행동(예, 뛰기, 짖는 것 흉내, 먹을 것 주기)과 해야 하는 행동(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기)을 다루고 있었다. 늘 함께 하는 존재들이라, 어려서부터 어떻게 대해야 안전한지 확실히 가르쳐주는 것이다.

지난 해 다녔던 회사에서는 분기에 한 번 강아지를 데려오는 날( 'Bring your dog day')이 있었다. 주인들과 함께 출근한 강아지들은 의외로 업무에 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책상 주변이나 휴지통에 음식을 치워달라는 것 빼곤 특별한 주의사항도 없었다. (물론 첫 날에는 -강아지가 옆에 오면 얼음이 되는- 내 책상으로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이 아이들이 모여서 좀 힘들긴 했다.) 두번째부터는 익숙해져서인지, 서로 쫓아다니고 가볍게 짖는 몇 마리의 그 강아지들이, '어린이집에 온 아이들과 똑같'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주인을 따라 회의실에 들어가서 주인 말을 듣고 얌전히 기다리는 강아지들이 귀여웠다.

https://images.app.goo.gl/V1hNP5nuEdp73saYA

https://images.app.goo.gl/eajhMa4XahETu7eo8

다르게 생겼지만 삶을 공유하는, 반려인간과 반려동물

그 강아지 중 하나가, 비오는 날 잠깐 주인(전 직장동료)이 문을 열어놓은 사이에 도로에서 차에 치여 사고로 죽는 일이 있었다. (사진은 그녀의 페이스북 포스팅) 그 동료는 이틀동안 출근하지 못했고, 회사에서는 그녀를 위로하는 큰 꽃다발을 보내주었다. 그녀는 이후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모하며 뉴질랜드 자전거 종단을 해낸, 내가 본 가장 강인한 사람 중 한 명이었지만, 그 강아지 사고 이후 그녀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그 표정은 가족을 잃은 아픔이었다.

우리 아이들도 이런 환경에서 자라다보니, 이제 강아지 키우자고 자주 조른다. 나는 '엄마는 너희 둘 키우는 것도 힘들어서 뭘 더 키울 여유가 없다'고 말하곤 한다. 솔직히 아직 내 의지로 반려동물을 키울 날이 올 것 같지는 않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거나, 키웠던 사람들에 비해 내 경험과 생각은 일천하지만, 그래도 이런 환경에서 3년을 살다보니 이제 한 가지는 정확히 알 것 같다. 반려동물은 나와 다르게 생겼지만, 나의 삶을 함께 하는 존재이다. 내가 밥을 주고 배변훈련을 시키니 내가 부양하는 존재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 때로 인간의 말보다 훨씬 더 깊은 감정을 전해주고, 변하지 않는 마음을 나누는 사랑하는 가족이다. 어떤 계기로 어떤 날부터 서로의 삶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매일을 함께 하는 가족.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이란 본질적으로 복잡하고 힘들 때도 많지만, -내 친구 m이 말한 대로-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재미'를 느끼려고 선택한 방식이다. 서로 자라거나 나이 먹어 가고, 서로 아플 때 옆에 있어주고, 같이 놀며 웃고, 외로울 때 꼭 안아주는 존재. 나와 다르게 생겼고, 다른 언어를 쓰지만, 인생을 함께 하며 함께 나이먹어 가는 소중한 존재. 반려동물과 반려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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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오줌 냄새 특효약 스프레이가 있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신기하게도 유일한 제한이 렌트할 때 No Pet이라고 하는 집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강아지.. 그래서 자기 집이 아니면 키우고 싶어도 못 키우는 경우도 가끔 있긴 한 것 같다. 아니면 강아지랑 같이 살 수 있는 집을 구하겠지만.
***우리 같으면 아기에게 털이 날린다고 걱정할 것 같은데, 여긴 그냥 인간 아이와 동물 아이가 다같이 큰다. 첫번째 친구가 되는 것이다. 어제도 여기서 사귄 친구 V 집에 갔는데, 와이프가 임신 중이었다. 그들은 이미 11년된 (인간나이 57세) 목장견이 있었고 역시 연로하신 고양이가 집 어딘가에 숨어있었다. 기가 태어나면 이 분들이(?) 귀여운 인간 아기를 베이비시팅해주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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