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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장군 Nov 29. 2020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전편)

뉴질랜드에서 생각을 보내요

많은 키위들은 20대에 외국(특히 영국이나 호주)으로 떠났다가 가족이 생기고 아이를 낳으면 고국으로 돌아온다. 북유럽과 함께 뉴질랜드는 명실공히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로 알려져 있고, 살아보니 왜 그런지 여러 부분에서 느낀다. 아이가 놀 공간, 장난감이 어디에나 있는 건 물론이고, 대부분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친절을 베풀며, 아이들만의 문화를 존중해준다.

동네 약국에 가도, 응급실에 가도, 세련된 카페에 가도, 아이가 놀 거리가 작게라도 거의 늘 있다. 작은 장난감들이나, 색칠하기 키트 정도로 별 건 아닌데,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부모가 괴롭지 않게(!) 시간을 소소하게 때울 거리들이다.


전에 프랑스에 살 때 노르웨이 여행을 갔는데, 베르겐에서 오슬로 가는 기차를 탔었다. 그 기차 한 량이 놀이방 칸이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한 칸이면 몇 좌석이고 돈이 얼마인데', 그걸 매트와 미끄럼틀, 키즈 프로그램이 나오는 TV가 있는 실내 키즈카페로 운영하고 있었다. (덕분에 돌쟁이 S와 7시간 여행을 무사히 패스할 수 있었다.)


뉴질랜드도 그 정도까지 극단적이진 않더라도, 거의 모든 공간에 애들이 놀 거리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일상적인 공간에 아이가 함께 있다면 '아이를 위한 무언가도 마련해둔다'는 게 기본 전제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 아이를 위한 공간은 훨씬 더 멋지고 세련된 건 확실한데, 내가 느낀 뉴질랜드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여긴 '수수해도 어디나 그런 게 있다'에 가까운 것 같다. 아이를 위한 대단한 공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거의 모든 일상적인 곳에 녹아있다는 것.(사진: (일반) 카페 한쪽 구석에 있는 토마스 기차놀이)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친절은 (아무리 케바케라고 해도 한국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여의도에 살 때, 아이를 데리고 택시를 타면 아주 괴로운 상황이 되기 일쑤였다. 문을 열어주거나 짐을 들어주는 친절을 기대할 수 없는 건 물론이거니와, 아기를 데리고 탄다는 이유로 욕이나 불평을 듣는 경우도 종종 겪었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당연히 아이와 패키지로 교통약자가 되는데, 이동에 필요한 도움을 주는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다. 내가 뼈저리게 배운 건, 이런 종류의 문제는 개인의 선함에만 의지하면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존중, 친절의 표현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연습하고 훈련한 이 뉴질랜드 사회에서도 사람들이 (교통)약자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선택적인데, 하물며 그런 표현이 서툴고 '도와주는 것'으로만 인식하는 현재 한국에서 개인들이 그렇게 행동할 이유는 당연히 부족하다.

많은 카페와 레스토랑에 키즈메뉴가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고 꼭 키즈메뉴를 매번 시킬 필요는 없지만, 아이들도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메뉴판을 보고 자기들 메뉴에서 시키는 것이 익숙하다. 학교에서 한 해 두 번 디스코파티를 여는데 (첨부영상), DJ가 와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들을 믹싱해서 틀어준다. 아이들은 드레스코드를 갖춰입고 움칫둠칫(!) 몸을 흔들며 그들만의 문화를 즐긴다. 어느 사회에서나 약자인 아이들이지만 이 곳 뉴질랜드 사회에서는 있는 그대로 존중받으며,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쌓아나간다. ‘아이와 함께 하는 오클랜드’ 웹사이트에는 여기서 아이의 눈높이에서 함께 살기 위한 거의 모든 정보가 정리되어 있다.

https://www.aucklandforkids.co.nz/


부모들에게도 아이를 남에게 맡길 수 있는 옵션이 거의 항상 마련되어 있다. 요즘은 한국도 째깍악어, 맘시터, 놀담 등 베이비시팅 스타트업이 활발해졌다고 들었다. 본질적으로 부모가 아이 때문에 어느 정도 취미생활 등을 포기하는 건 어쩔 수 없긴 하다. 하지만 여기는 부모라고 무조건 아이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는 게 당연하다거나, 양가 부모님이 도와주는 게 디폴트인 사회가 아니다. 휴가지에서도 베이비시터를 구해 아이들을 맡기고 부모 또는 한부모의 휴가를 즐길 수 있는 네트워크가 전화번호부 시절부터 있어왔다. 싸지 않은 비용이라 해도, 다른 곳에서 비용을 줄이더라도, 어른만의 오롯한 휴식을 즐기고 싶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전체 그림에 항상 배치해두는 사회.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전제가, 부모들(만)이 주장하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에 깔려있는 나라. 여기서 부모로서 살아보게 된 건 부정할 수 없는 크나큰 행운이다. 그렇지만 이런 분위기와 문화를 혼자나 소수의 힘으로 만들 수 없다는 걸 명확히 알게 된 것도 씁쓸한 동전의 양면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맘충' 같은 혐오의 언어가 존재한다. 부모도 아이를 핑계로 상식 이하의 짓을 하면 지탄받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몇몇 극단적인 사례를 보고 부모 전체를 (게다가 왜 엄마만?!) 폄하하는 건 정말 큰 모욕이다. 존중이 없는 혐오의 정서는, 늘 개인의 문제를 그 그룹의 문제로 쉽게 치환해버리는 오류를 범한다. 돈이 많으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이를 키울 때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얼마나 큰 지 알게 된다. 개개인의 호의 그 이상, 아이와 그 양육자를 따뜻하게 지켜봐주고 지지해주는 문화는 돈과 무관하다. 아이들이 가진 동심을 존중하고 공감해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고 관심이라는 것을, 여기 뉴질랜드에서 매일 매일 느낀다. 우리 사회도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로 변해가기를, 직접 부모 뿐 아니라 모두의 사회적 합의와 배움이 쌓여 변화가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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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에게도 중독성 있는 두 곡을 추천합니다. 현재 저희 가족 최애곡....
https://youtu.be/npjF032TDDQ

https://youtu.be/ZtV9Vi6tSVk


**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깊게 이해하고 싶어서, 친구 B와 '이상한 정상가족'(김희경)을 함께 읽었다. 아동을 가족에 속한 존재로 보는 게 아니라, 각 아동이 국가(시민사회)와 맺는 1:1 관계로 본다는 '아동인권'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북유럽과 뉴질랜드, 호주 같은 나라가 가장 먼저 이 아동인권을 채택하고, 그래서 체벌 등을 가장 먼저 금지시킨 나라라고 한다. 뉴질랜드에는 아동부(Ministry of Children(마오리어로 Oranga Tamariki)가 있다. 이 기관은 학대 정황이 의심되는 아동을 보면 누구를 막론하고 신고할 수 있고, 그 부모와 상담과 제재까지도 관여한다. 가족에 대한 재활 및 지원 등도 담당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중심에 그 아동을 독립적으로 보호한다는 원칙이 있다. 뉴질랜드에도 숨은 가정폭력이 꽤 많고, 거의 모두 주택에 거주한다는 특성상 잘 노출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이 부서가 아이들의 안전판이 되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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