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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장군 Dec 06. 2020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후편)

뉴질랜드에서 생각을 보내요

지난주,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 대한 글을 쓰고 나서, ' 주제에 대해 내가 진정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대해 계속 생각했다. 뉴질랜드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한국보다 좋은지 쓰고 싶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관심사는, ' 부모로서 내가 느끼는 편안함에 양쪽 사회에 이토록 차이가 있는 것일까' 가까웠다.

메일을 보내고 1주일간, 역시 여러 분의 피드백을 받았다. 50분의 구독자  또래 부모들은 현재 거주하는 곳의 가족 친화적 휴가지 꿀팁을 전해주기도 했고, 뉴질랜드 예찬처럼 느껴질까 걱정한  마음을 다정하게 보듬어주기도 했다.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일을 하는 독자님들은 '개인의 선함에만 의지해서는 바뀌지 않는 ' 공감해주면서 '혼자나 소수의 노력으로는  버거운, 약자나 소수자를 대하는 행동이 사회 전체적으로 나아지게 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라고 질문했다. 그리고 결국,  분과의 대화 덕분에, 이번 주에 주제를 바꾸는 대신  '아기 키우기 좋은 나라' 대해 아래와 같이 '후편' 쓰자고 결심하게 되었다.

1주일간 드문드문 무의식적으로 생각을 잇던 끝에, 어제 우연히 '힐빌리의 노래'* 뒤늦게 읽으며 가슴을 쳤다. 여러 구절에 줄을 그었지만, 특히 '자신이 하는 행동과 선택이 자신에게뿐 아니라 가족, 지역사회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차리는 ' 바로 내가 찾던 해답이었다.

지금 한국은  어느 사회보다 다양성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지만, 현재 주된 한국인들의 정서는 '가족 이기주의' 가까운, 사회적으로는 행동이 차가운 그런 모습이 아닐까.  기저에는 물론 끝없는 경쟁이 있다. 너무나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많은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분야에서도 (깜짝 놀랄 정도로 높은) 기준을 세워져 있고  거기에 도달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자신이  높은 기준에 크게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하고 싶어 한다. 나의 삶을, 타인의 삶을 쉽게 눈에 보이는 잣대로 점수를 매기고, 쉽게 규정한다.

 오래된 질서에 20, 30대는 질려있다. 기회는  이상 풍부하지 않지만, 기준은 오히려  팍팍하고, 사회 전체가  과도한 기준에 익숙해져  과도함이 정상처럼 느껴진다. 이것만으로도 한국 사회는 너무나 피로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가치, 정체성, 선택의 이유를 충분히 생각하고 설명할 기회와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피로한 세상에서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는 것에 대한 강박이 피어난다. 그게 내가 남에게 해줄  있는 유일한 미덕이다. 그게 내가 남에게 기대하는 최대한의 친절이다. '나도 피해 주지 않을 테니, 너도 피해 주지 .' 위의 나와 깊이 있게 대화했던 20 독자님은, 주변 친구들 거의 모두가 '어른은 무엇인가' 대해 '남에게 피해 안 주고 혼자서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기준에  미흡하다. (사실 아이들  아니라 '사회적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모두 자의가 아니지만  기준을 충족시킬  없는 사람들이다.)  지점에서 '맘충'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피해를 끼치지 말아야 하는' 기준이 있는데, 사람들이 아이들만 특별히 친절하게 대할 거라고 기대할  있을까? '나는 이렇게 남에게 피해를 안 주려고 노력하는데, 저들은 애가 있다는 이유로 저렇게 아무렇게나 행동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얼마나 분노가 치밀까?

 뿌리 깊은 문화적 이슈는 부모가 '아이를 키우기 좋은 나라' 만들어달라고 정부에 요구한다고, 육아수당이 늘어난다고 해소될  있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 존재하는 수많은 다양한 가족 안의 아이를 품어주는 제도가 있어야겠지만, 모든 아이( 약자)  다르게 대해'' 하는지 한국 사회만의 맥락이 있어야 한다.  개인의 태도가 변하지 않으면, 육아수당이 얼마든 사람들이 받는 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변화는 오늘, 나의 태도와 행동이 갖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명이라도 알아차리는 데서 아주 천천히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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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 저자는 성공한 자신이 여전히 소속감을 느끼는, 아름답지만은 않은 힐빌리의 문화를 솔직하게 말한다. 공교육의 질이나 일자리의 부재라는 눈에 보이는 수치보다, 때로  중요한 문화, 사람들의 생각과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핵심 이슈라는 . 그들은 게으르지만 자신의 게으름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를 먼저 제압하고 공격해야 한다고 배우며, 노력 대신 타고난 재능이나 물려받은  때문이라고 성공한 자를 폄하한다.
재미있는 것은 교회를 착실히 다니는 문화 사람들이  성공하고,  행복감을 많이 느낀다며 힐빌리와 비교하는 부분인데, 바로 한국 사회가 아닐까? 생각했다. 한국 사회는, 어쩌면 너무  행동하는 사람들이 과도하게 경쟁해서 피로하다는 것에 가깝겠지.


** 이 얘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건 찡했고, 피해 안 주고 혼자 잘 사는 사람이 어른이라는 건 안타까웠다. 사실은 일종의 고립의 상태를 추구하는 건 아닌가 싶은 느낌에. 어른이란 스스로 설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나 정신적 능력이 기본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올바로 판단할 수 있고, 주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의 정의는, 2-30대의 피로감의 거울이라는 느낌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 과도한 피로감 이면에 결핍되어 보이지 않는 것이 많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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