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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장군 Nov 04. 2020

자연에 살어리랏다(?!)

뉴질랜드에서 생각을 보내요

뉴질랜드에 오기 전

2008년 여름부터 2009년 봄까지 뉴욕 맨하탄에서 혼자 일하고 살았었다. 온종일 반짝이는 고층빌딩에 앉아, 창 밖으로 보이는 끝없는 빌딩숲에 지치고 질려, 저녁마다 센트럴 파크로 갔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배경이고 경험이었지만, 그 때의 나는 평생 그 어느 때보다도 외로웠고, 그 높고 높은 빌딩숲 대비 센트럴 파크는 (맨하탄 아래 브라이언트 파크 등등 포함해도) 너무 부족한 초록이었다.

한편 내가 뉴질랜드에 맨 처음 온 건 우연히도 중학교 1학년 때였다. 90년대 초반, 아빠 친한 친구분들이 모두 뉴질랜드 이민을 오셔서 그 분들을 볼 겸 북섬관광을 할 겸 열흘 정도, 난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족여행을 했다. 그 때의 뉴질랜드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조용했고, 화장실이 깨끗했고, 어딜 가나 소 또는 양만 있고 사람은 없었다. 호텔방에서 TV를 켰는데, '오늘 시민들의 생활'이 뉴스로 나와서 뜨악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한국에선 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붕괴되는 게 뉴스인데 여긴 대체 뭐지?'

이런 기억을 안고 뉴질랜드에 살러 왔을 때, 나는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에 가슴이 벅찼다. 해변과 바다, 화산, 호수, 강 등등 모든 자연이 다 있다는 나라. 오클랜드에서도 어디서나 차로 10분 내로 해변에 닿을 수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나 포함 모두가 아파트가 아닌 주택들에서 사는 이 곳.

양털구름 같았던 로망

집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Waiatarua Reserve라는 거대한 습지 공원이 나온다. 이 곳의 풍경은 그냥 뉴질랜드 그 자체 같다.


-인시아드 MBA할 때 맨날 가던 퐁텐플로 숲은 '가위손' 스타일로 유럽식 조경이 완벽했었는데- 이 공원은 누가 조경을 하는지 마는지 모를 정도로 그냥 그대로 펼쳐져 있는 넓디넓은 초원이다. 다양한 나무도 있고, 오리와 흑조가 노는 작은 호수도 있고, 이름답게 비가 오면 범람하며 냄새를 풍기는 슾지도 있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숨겨진 숲도 있지만, 어쨌든 별로 인위적인 터치 없이 그냥 항상 거기 심심하게 있는 넓디 넓은 초록이다.

기쁠 때도, 우울할 때도, 뛰고 싶을 때도, 생각하고 싶을 때도, 아이들 놀이터에 가야 할 때도, 나는 무조건 거기에 간다. 넓게 펼쳐진 그 지평선을 보며 그냥 막막해지게 되고, 그 느낌에 익숙해지면 그냥 그 순간이 그리워진다.


지난 3월쯤 어느 저녁, 느지막히 일몰을 보러 갔는데, 뭔가 따끔한 느낌이 났다. 그리고 나는 나중에 많은 고통과 함께 알게 되었다.. 내가 벼룩에 물렸다는 사실을. 등에 일렬로 난 문 상처, 두드러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식단을 바꾸고 편히 쉬어도 낫지 않았던 그건, 벼룩이 물고 간 자국이었다.

아이들까지 몸을 벅벅 긁기 시작하자 우린 주변에 물어보았고, 벼룩이 여기에선 아주 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집집마다 방역하시는 분이 와서 우리가 겪은 일을 설명하자, 내 상처를 본 그 분은 전형적인 벼룩이라며, 집 어디로 튀었을지 모른다며(?) 카페트를 다 스팀청소하고 집안 곳곳을 살균소독해주시고 가셨다. 그러고도 계속 가렵자, 그 분은 다시 오셔서 다시 방역을 해주시고 가셨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벼룩의 습격이었다.

우리 집에는 정원이 있다. 주인이 '나뭇잎 떨어지는 것 정도만 빗질하면 된'다기에 처음에는 여러 나무가 심긴 이 정원을 좋아했다. 그러나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고 그 작은 나뭇잎이 다 떨어지는 걸 쓸어도 쓸어도 끝이 없는 게 '가드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곳곳에 잡초들은 왜 그렇게 빨리 무성히 자라는지. '잡초 같은 생명력'이라는 말을 백번은 되뇌이며 뽑다가, 손을 다치고, 오만 벌레를 다 보고, 비명을 지르고, 다시 쓸고 뽑기를 계속하고 있다.

얼마 전, 둘째 아이 플레이데이트에 초대해준 키위 집에 갔더니, 그 집에는 허브 가든, 레몬 나무 등 내가 로망을 잔뜩 가진 나무들이 있었는데, 'worm farm'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벌레들을 키우는 흙상자'인데, 좋은 토양을 만들어 맛난 과일이 나오게 하는데 중요하단다. 7살 짜리 그 집 큰 딸이 그 Worm Farm을 알려주며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하는 동안, 나와 나의 3살, 7살짜리 두 아들은 잔뜩 겁에 질려서 먼 발치에서 혹시 벌레를 만지라고 하진 않을까 떨고 있었다.

그나마 막내가 제일 키위스럽다...

https://images.app.goo.gl/vCRdLEr8WyqnGtro9

큰아들 Sn학교에서도 종종 안내문이 오는데, 단골 토픽 중 하나가 '어느 아이 머리에서 이가 발견되었으니 아이들 유의시켜달라'는 내용이다. 처음에는 lice라는 단어를 몰라서 찾아보고 '헉' 소리가 나왔다. 나의 환상이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 우리 나라에서 박멸된 지 벌써 수십년 된 그 '이'..

그 밖에도 아무리 문을 다 닫아놔도 garage 바닥에 가끔 떨어져있는 귀뚜라미, 그리고 이름 모를 처음보는 (거대한) 벌레들.. 단 것도 안 두는데 왠지 끝없는 개미의 습격이 시작되어 모든 바닥과 코너를 부들부들 떨며 벌레약으로 도배한 적도 있었다.

정말, 자연과 함께 산다는 것

자연과 함께 사는 것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30년 넘게 도시에서만 살았던 나는, 그 뒷면에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편리하지 않아도 크게 불평하지 않고 살 수 있다'던 오만은 이 곳에서는 1차원적인 착각에 불과했다. 여기 오기 전까지 살던 여의도 미성아파트에서는, 아파트 정문에서 전후 200m 안에 이마트와 편의점이 있었다. 여기 집에서는 2km 반경에 슈퍼가 없다. 그리고 해양성 기후라 (5월-9월에) 폭풍우와 폭우가 잦은데, 정전이 된 적만 벌써 5번이다... (불편한 걸 나열하면 끝이 없다)

'가드닝'을 즐기는 키위들은, worm farm을 친밀하게 느끼고, 집에 벌레들을 크게 문제 삼지 않으며, 왠만한 건 자기들이 다 손으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아이들이 생기기 전,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다, 아이들과 다같이 키우며, 자연에서 신발 양말 다 벗고 나무에 올라가 논다. 자연을 보러 나가 공원을 즐기던 나의 얄팍한 서울 취향은, 실제로 그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걸 배울 수록 굉장한 환상에 불과했구나 싶다.

이 모든 일상에서 부딪치는 손으로 하는 일, 특히 가드닝이 '아주 어렵지 않다' '그렇게 더럽거나 무서운 게 아니다'라는 걸 알게 된 게 발전이랄까. 이 곳에서 부모로부터 그렇게 함께 살며 자란 키위들이 나중에 우리 아이들과 연애를 하게 된다면(!) 얼마나 깔깔댈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몸으로 부딪혀 알게 된 게 웃기고 즐겁다. 어쨌든 벼룩이던 worm farm이던 '이'던 다 지나가는 일이고, 가드닝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영국계 이들의 '정서'야 여전히 멀지만 그래도 잡초를 뽑고 나뭇잎을 쓰는 '속도'는 충분히 늘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만 해도, 조금은 열린 마음이 된 것만 해도, 그게 어디야! 나를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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