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어제자로 넷플릭스에서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드라마를 다 봤습니다. 노희경 작가님의 2008년작인데요. 방송국 드라마국의 PD들의 일과 사랑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은 시청률이 높게 나오진 않았지만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한 드라마로 유명합니다. '어찌 되었든 유명한 드라마는 이유가 있다!'라고 생각하기에 보기 시작했습니다.
드라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5년 전의 직장생활입니다. 드라마국 PD들도 일반 사무직과 하는 일의 결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직장인입니다. 그래서 직장 내의 위계에 치이고, 일이 어떻게든 어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에피소드들이 담깁니다. 상사에게 서류뭉치로 머리를 맞는 장면이 흔하고, (요즘 같으면 직장 내 폭력감입니다.)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호통치는 것은 거의 매 회마다 나오는 것 같고, 주인공들은 응급실 의사만큼 항시 업무를 위해 대기 중입니다. 워라밸에서 라는 없고 워만 있는 삶이랄까. 드라마기에 보다 극적으로 표현한 건 있겠지만, 15년 전의 직장생활이 지금보다 어려웠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자신의 일에 열정적인 사람들이 얼마나 멋있는지를 잘 그려냈다는 점입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인 정지오 PD(현빈)과 주준영 PD(송혜교)는 연출 일에 진심입니다. 드라마를 잘 만들기 위해 동료들과 언성 높이며 얼굴 붉히기도 하고, 더 좋은 작품을 찍기 위해 서로 경쟁하기도 합니다. (그리곤 서로 곧 술잔을 기울이며 화해하고 하하 호호합니다.) 일에 매진하고 일에 진심인 그들을 보며, 나는 본업을 좋아하는가, 본업에 대해 얼만큼의 열정을 지니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을 참 교과서처럼 듣고 자랍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보면 좋아하는 일이 뭔지도 모르겠고, 좋아하는 일이 있더라도 현실적인 이유로 그것을 접어 두기도 하지요. 어쩌면 이 드라마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운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일지도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그만큼 드물고, 그만큼 행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등장인물이 이해가 되는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에는 도무지 미워할 수밖에 없는 악역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이 다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서사로 조금씩 모난 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인물들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아, 그랬구나.' 하며 인물들의 모난 면조차 이해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 어떤 등장인물도 미워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완전히 나쁜 사람도, 완전히 착한 사람도 없다는 진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요.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확실히 색다른 드라마입니다. 노희경 작가님이 드라마란 무엇인가에 대해 오래도록 고민한 흔적이 느껴지며, 작가일을 하면서 PD들을 곁에서 지켜봐 온 구력이 면밀히 드러나는 드라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