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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Oct 16. 2024

잊지 못하는 피해자, 기억 못 하는 가해자... 학폭

[리뷰] 티빙 <돼지의 왕>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연상호, 2011년)은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원작 스토리가 훌륭하고 작화도 독특하다. 예상치 못했던 마지막 반전은 충격과 소름이 돋았다.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지난 2022년 3월 티빙(TVING)에서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됐다. 드라마는 원작보다 등장인물도 많고 서사도 더욱 풍성해졌다. 원작에서 풍기던 날것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기본 설정과 스토리는 대폭 수정했다. 그러면서도 원작이 지닌 '학교 폭력'과 '사적 제제'라는 주제 의식을 놓치지 않고 잘 각색했다.

드라마 주요 스토리는 학창 시절 일진들에게 왕따를 당한 황경민(김동욱 분)이 성인이 되어서 가해자들을 찾아가 사적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다. 학교폭력과 사적복수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후에 나온 송해교 주연의 <더 글로리>(2022년, 넷플릭스)와 비교되기도 한다. 돼지의 왕은 남성 중심의 복수 서사지만 더 글로리는 여성 중심의 복수 이야기다. 복수의 방식도 <돼지의 왕>은 원초적 폭력에 중점을 두었다면 더 글로리는 언론과 SNS를 활용한 지능형 복수다.

누군가는 괴물이 되어야 했다

중학생인 황경민과 정종석(김성규 분)은 일진 무리에게 매일 왕따와 폭력을 당한다. 드라마는 원작의 잔혹함을 훨씬 뛰어넘는다. 단순히 학교폭력을 리얼하게 묘사하는 수준을 넘어서 폭행, 성추행, 조리돌림 등 가해자들의 폭력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그런 두 사람에게 같은 반이지만, 잠만 자던 김철(최현진 분)이 나타나서 도와준다. 경민과 종석에게 철이는 구원자다. 그리고 세 사람은 친구가 된다.

"우리가 힘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착하게 살면 될까? 아니야. 힘을 가지려면 우린 악해져야 돼. 계속 병신처럼 살고 싶지 않으면 괴물이 되어야 해. 알겠냐?" -김철

존재감 없이 교실에서 잠만 자던 김철은 왜 경민과 종석을 도와줬을까? 그가 남들처럼 상관하지 않았다면 이후에 벌어진 그의 비극적인 삶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는 잠에서 깨어나 경민과 종석을 도와준다. 정종석과 황경민처럼 돼지의 사슬을 끊어 내기 위해서 급기야는 신이 되려고 한다. 하지만 김철은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돌린다. 그도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은 아이였기 때문이다.

끔찍했던 시간

▲스틸컷돼지의 왕, 황경민 스틸컷, 티빙



학창 시절 왕따를 당하던 황경민은 잘나가는 회계사가 됐다. 하지만 그는 학창 시절 일진들에게 당했던 괴롭힘을 단 한 순간도 잊지 못했다. 오히려 황경민은 일진 무리에게 당했던 끔찍한 만행들을 잊지 않으려고 검정 수첩에 적어놓았다. 하지만 김종빈(조완기 분)을 비롯한 가해자들은 황경민의 존재마저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은 잘나가는 의사로, 제약회사 직원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황경민이 한순간도 잊지 못했던 학창 시절의 끔찍했던 치욕을 그들은 단지 좋았던 시절로 추억한다.



황경민은 이들의 "그때 좋았잖아"라는 말을 듣고 분노한다. 그리고 처절한 복수를 시작한다. 형사가 된 정종석도 피해자다. 하지만 그는 과거를 잊지 못하는 황경민과는 달리 끔찍했던 학창 시절 가해자들에게 당했던 폭력과 왕따를 잊고 형사로 살아간다. 종석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잘 아는 황경민은 복수의 현장에서 매번 정종석에게 묻는다.



"종석아, 너도 같이 해야 하잖아."



종석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다. 그렇기에 경민처럼 복수를 할 수가 없다. 더욱이 그는 현직 경찰이다. 그럴수록 경민은 종석에게 더욱 압박을 가한다.



몰랐거나 모른 체 하거나



학창 시절 나를 괴롭히던 친구가 있었다. 내가 그 친구보다 체격은 컸지만 소심하고 싸움을 싫어하던 나는 그의 놀림을 그냥 받아주었다. 그는 내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매일 나를 괴롭혔다. 학교 근처에 소가 한 마리 있었는데 내가 그 소를 닮았다며 소라는 별명을 붙였다. 나는 졸업할 때까지 별명이 소였다.



학교는 폐쇄된 공간이다. 폐쇄된 공간은 은밀하다. 그리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만들어 낸다. 경민과 종석 같은 약자를 보호해야 할 어른들은 그런 상황을 아예 모르고 있거나 알아도 모른 체 한다. 그것은 암묵적으로 용인된 질서였다.



고등학교 시절은 더 심했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했다. 학년 간 서열이 군대처럼 엄했고 이해할 수 없는 규칙도 많았다. 한여름에도 상의 단추 끝까지 채우기, 실내화 신고 밖으로 나오지 않기, 한여름에도 상의를 걷어 올리지 않기, 한 겨울에도 주머니에 손 넣지 않기 등이 있었다.



아침 점호 시간 기숙사 밖으로 슬리퍼를 신고 나왔다고 얼굴도 모르는 선배에게 호출을 당했다. 그는 찌그러진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로 내 엉덩이를 열대 때렸다. 잠을 잘 때는 엎어져서 자야 했고 일주일간 의자에 앉을 수가 없었다. 학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3학년 선배들에게 반찬 배식을 잘하지 못한다고 선도부에 호출을 당해서 엉덩이에 불이 났던 적도 있다. 그들은 분명 나에게 가해자다.



사람들은 대부분 남에게 받은 트라우마와 상처만 기억한다. 하지만 돌아보면 우리도 인생의 한 시점에서 누군가에게 가해자였을지도 모른다. 물리적 폭력이나 정서적으로 가해자였을지도 모른다.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자율학습 시간이었다. 그 친구는 나보다 체격도 작았고 마른 친구였다. 우리는 서로 친하지도 멀지도 않은 사이였다.



어느 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옆자리에 있던 그 친구가 나를 계속 놀렸다. 나는 그 친구에게 하지 말라고 몇 차례 경고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놀림이 이어졌다.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책상 위로 올라가 그 친구에게 하지 말아야 할 물리적 행동을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친구를 볼 때마다 미안했다.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서로 데면데면했다. 그리고 때리는 것보다 맞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깍두기가 있던 시절



어릴 적 동네에서 비석 치기, 제기차기 등 편을 먹는 놀이를 할 때 마지막에 한 사람이 남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그 아이를 놀이에서 빼는 대신 깍두기를 시켰다. 깍두기는 잘못이나 실수를 해도 괜찮았다. 그때도 왕따와 폭력은 있었지만 그래도 깍두기가 있던 그 시절이 그립다.



드라마는 새드엔딩이다. 이 드라마는 결코 해피엔딩일 수가 없다. 드라마를 통해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할까. 학교 폭력은 결코 있어선 안 되지만 사적 복수는 정당한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피해자의 복수는 정당한가 등의 질문이 남는다.



왕따와 폭력을 줄이기 위해선 교육과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동시에 학교폭력을 가능하게 했던 학교라는 공간과 구조를 바꾸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폐쇄된 공간을 드러내면 된다. 드라마는 원작에 비해서 나쁘지 않았다. 원작이 고구마식 진행이었다면 드라마는 통쾌한 사이다였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늘어지고 결말도 원작이 주었던 충격에 비하면 힘이 약했다. 차라리 원작의 심플함을 충실히 따랐으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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