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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철 Dec 15. 2020

트럼프가 멕시코 장벽을 세우면, 이 영화가 예측했다

[리뷰] 선과 악의 '회색지대'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선과 악, 옳음과 그름. 싫음과 좋음. 우리는 이분법적인 삶에 길들어있다. 사회가 아무리 복잡해져도 이 단순한 흑백 논리는 웬만해선 변하지 않는다. 특히 인생에서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게 편하다. 좋거나 싫거나. 경계가 확실한 영역에 '모호함'이 끼어들기 시작하면 삶은 피곤해진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런 삶의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이 영화는 '악을 벌하기 위해서 악이 된 이들과 그런데도 악은 될 수 없다'는 가치의 충돌을 다룬다. 힘없는 선과 선한 의지를 가진 악의 충돌. 어느 것이 옳은 것일까?


줄거리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영화의 주요 무대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대의 도시인 '후아레즈'이다. F.B.I의 유능한 팀장인 케이트(에밀리 브런트)는 애리조나의 한 주택에서 마약 소탕 작전 도중 대량의 시신을 발견한다. 그 시신들은 멕시코 마약 카르텔 간 이권 다툼의 희생자들이다. 시신을 수습하던 중 폭탄이 터지고 케이트는 아끼던 동료를 잃는다.


미국 본토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 사건으로 여론은 악화하고 정부는 진상을 파악하라는 압력을 받는다. 멧(조슈 브롤린)이 이끄는 CIA팀이 주축이 되어 마약 카르텔의 수장을 잡기 위한 작전팀이 꾸려진다. 케이트는 이 작전에 연락관으로 참여한다. 그리고 이 작전엔 정체가 불분명한 알레한드로(조르지오 텔 토로)도 함께 참여한다. 그러나 케이트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 작전에서 자신이 소외당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공간

  

ⓒ 롯데엔터테인먼트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대인 '후아레즈'는 끔찍한 범죄와 평범한 일상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법은 있지만, 총과 마약이 지배하는 무법지대다. 밤이 되면 죽음의 총탄과 불꽃이 후아레즈의 검은 상공을 가른다. 도시의 입구 교각에 도살된 가축처럼 매달린 시신들은 도시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무언의 경고다. 사람들은 교각에 매달린 시체 옆에서 태연하게 테니스를 치고 있다. 이 장면은 후아레즈가 법에 따라 유지되는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알레한드로와 멧, 케이트 그리고 CIA 작전팀은 검은색 벤을 타고서 멕시코의 국경을 넘는다. 법이 지배하는 공간인 '엘파소'에서 법이 미치지 못하는 공간인 '후아레스'로.


고래의 울음소리 같은 배경음악은 깜깜한 동굴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음악은 멜로디의 변화 없이 타악기의 리듬만 일정하게 반복된다. 치열한 교전이 없어도 긴장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는 할리우드식 액션처럼 장면들이 시원스럽게 폭발하지도 않는다. 화려한 그래픽이나 역동적인 액션도 없다. 그러나 터질 듯 터지지 않는 긴장된 분위기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마치 롤플레잉 게임을 하는듯한 1인칭 시점의 전투장면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선과 악의 회색지대: 후아레즈


"웰컴 투 후아레즈."


알레한드로는 후아레즈의 입구에서 케이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의 환영 인사는 '여행자들을 위한 관광 안내문'이 아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인 황혼처럼 사물은 흐려진 채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경계가 불분명한 범죄자의 도시를 상징하는 경고문이다. 그리고 후아레즈에 들어서는 순간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알레한드로의 말처럼 법은 멀리 있고 총은 가깝다는 사실. 그러나 원칙주의자인 케이트는 작전이 진행될수록 혼란스럽다. 그녀의 당당함과 강함은 법이 허용되는 구역에서만 가능하다. 마초들의 세계에서 그녀의 저항은 소극적이다. 선악이 모호한 회색지대에서 그녀는 단지 군복 입고 총을 든 관람객일 뿐이다.


악은 처벌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영화의 몇몇 장면과 주인공들의 대사는 박훈정 감독의 2013년 개봉작인 영화 <신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경찰이지만 조폭으로 위장한 이자성(이정재)과 이를 기획한 강 과장(최민식)의 관계 또한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한 인물들이다. 강 과장의 말처럼 악은 애초부터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최소한의 악만 남겨두는 방식이 가장 합리적이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자성과 강 과장의 입장은 다르다. 이자성이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뇌하다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듯이 이 영화에서 보이는 알레한드로와 멧의 초법적 행위 또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식이다. 적어도 그들의 입장에선.


선과 악. 옳고 그름. 정의란?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국가와 개인. 국가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 개인에겐 모든 것을 잃는 한순간이다. 국가가 합리적이라는 이유로 선을 선택하면 개인은 그 합리적 선택의 가엾은 희생양이 된다. 이 영화 속에서 능력 있는 F.B.I 요원 케이트는 국가가 결정한 그 합리적인 선택의 보증인이자 무능한 협력자다.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치던 그녀는 무기력해지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괴로워하지만, 그 무기력을 안겨준 남자를 향해 방아쇠는 당기지 못한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기


열 번을 봐도 새로운 영화가 있고 한 번을 봐도 기억에 오래 남는 영화가 있다. 드니 빌뇌브의 영화는 후자다. 그의 영화는 한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나의 두 눈이 영화 촬영 현장의 카메라라도 된 것처럼 모든 장면이 생생하다. 어쩌면 블록버스터의 화려한 컬러에 익숙해진 나의 시선이 드니 빌뇌브식의 흑백이 주는 모호함에 깊숙이 젖어든 탓인지도 모르지만. 그의 영화는 익숙하지만 새롭다. 그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가져와서 그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새롭게 꾸밀 줄 안다. 그것이 그리스 비극 <그을린 사랑>이건, 소설이 원작인 <컨택트>이건, 실재하는 지옥도 후아레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이건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이야기로 다가온다.


오래된 현실, 지나버린 미래


모든 예술이 그렇겠지만, 영화는 현실과 닿을 때 관객에게 가장 리얼하게 다가온다. 2015년에 개봉된 이 영화의 배경은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이 된 '도널드 트럼프'의 공약과 관련이 깊다. 트럼프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대에 9m 높이의 담장을 세우겠다고 했다. 남미 마약의 주요 루트인 후아레즈는 그 거대한 장벽의 중심이다. 트럼프에게 선과 악은 확실하다. 선은 미국이고 악은 멕시코 이민자들이다. 트럼프에게 미국에 좋은 것은 선이며 안 좋은 것은 악이다.


또한, 그는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미국의 오래된 영광을 지속하기 위하여 세계 곳곳에 보이지 않는 담장을 세우려고 한다. 어쩌면 세계로 불어닥칠 트럼프의 불확실한 '나비효과'는 브라질이 아니라 엘파소와 후아레즈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니 빌뇌브의 최근작 <컨택트>의 화법을 빌려서 말하자면 트럼프의 장벽은 이미 지나버린 미래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정말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에 장벽을 세울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과연 이 영화를 보았을까?



*이 글은 2017년 3월 23일 오마이뉴스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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