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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중과 상연

이해와 오해 속에서 서로의 그림자가 된 두 여성의 이야기

by 김인철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 후기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은중과 상연>을 봤습니다. 오랜만에 스킵도, 빠르게 보기 없이 끝까지 몰입해 본 드라마였습니다. 두 여성이 주인공인 서사답게 스토리는 단단했고, 감정선은 섬세하면서도 복잡하네요. 15화에 이르기까지 드라마의 호흡은 느리다 싶을만큼 길고 차분했습니다.


은중(김고은)은 가난하지만 당차고 따뜻한 성격으로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인물이다. 반면 상연은 내면의 불안과 외로움 속에서 은중과 복잡한 관계를 맺는다. 은중의 남자친구 김상학(김건우 분)은 은중에게는 든든한 연인이지만 상연에게는 오래전부터 마음을 품어온 짝사랑의 대상이다. 상연은 그 감정을 숨긴 채 은중과의 관계를 이어가지만, 상학을 향한 마음은 은중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으로 뒤섞여 복잡해진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편애와 오빠의 죽음으로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온 상연은 오빠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쫓다가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상황과 마주한다. 결국 은중, 상연, 상학 세 사람의 관계는 사랑과 질투, 이해와 오해가 얽히며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는 거울이 된다.


넷플릭스_어린 상연과 은중


은중이나 상연이 감정을 실어 전하는 대사들이 느리게 들렸다. 특히 상연의 대사가 반 호흡 정도 느리게 다가왔다. 그 짧은 공백 사이에 나는 상연의 알수 없는 표정 이후에 나올 다음 말을 미리 떠올리곤 했다. 마치 내가 상연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은중은 배려심 깊고 당찬 인물이다. 남자든 여자든, 은중이 가는 곳엔 늘 사람이 모인다. 창백한 표정에 감정을 숨기고 속을 알 수 없는 상연과 달리, 은중은 감정에 솔직하고 매사에 당당하다. 사랑과 일에서 좌절해도 금세 훌훌 털고 일어선다.


하지만 내 마음이 기운 인물은 배려심 깊은 은중이 아니라 내면이 불안한 상연(박지현 분)이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차이를 배제하고 정서적으로 닮은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상연이다. 그녀가 겪고 있는 불안, 상처와 외로움은 내가 겪어온 상처와 외로움과 상당히 많은 점들이 겹쳐 있었다.


상연.jpg 넷플릭스_상연


김상학(이수혁 분)은 은중의 남자친구이자 상연이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인물이다. 감정 표현이 서툴지만 내면에는 깊은 책임감과 따뜻함을 지닌 사람이다. 은중에게는 안정감과 믿음을 주는 연인이지만, 상연에게는 닿을 수 없는 동경의 대상이다. 상학은 두 사람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려 하지만, 결국 상연의 감정과 과거의 진실이 드러나면서 그 관계는 흔들린다. 그는 끝까지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쓰지만, 은중과 상연의 관계 속에서 자신 역시 상처받고 성장하는 인물로 남는다.


제목 없음.jpg 넷플릭스_은중


상연은 그녀가 스스로를 지칭했듯이 나쁜년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상연의 캐릭터는 미워할 수만 없다. 그녀의 말과 행동, 눈빛, 한숨, 표정 하나하나가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다. 상연의 은중을 향한 질투와 시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은 낯설고 이질적이었다. 은중에게 있는 배려심과 당당함처럼 상연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인터넷에 달린 댓글 하나를 보고 멈췄다.


“상연은 쌍연이야.”


저 댓글을 읽는 순간, 짙은 안개처럼 답답하던 상연에 대한 내 감정이 순식간에 투명해졌다.


“나는 한 번도 너를 이겨본 적이 없어.”


상연은 이 말을 자조 섞인 목소리로 반복한다. 상연은 은중의 어떤 면에서 서운함을 느꼈던 걸까. 단순히 시기나 질투라고 말하기엔, 그녀가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너무 깊었다. 나는 그 시작이 상연의 어머니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딸보다 제자를 더 아끼고 사랑했던 어머니. 그 애정의 불균형 속에서 상연은 서운함과 미움을 동시에 품었을 것이다.


상연에겐 오빠가 있었다. 잘생기고 똑똑해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오빠. 그런 오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상연은 오빠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를 파헤치다, 오빠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진실은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든다. 은중과의 관계마저 그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은중과 상연.jpg


은중과 상연은 서로를 바라보지만 바라보는 시선과 입장은 다르다. 그리고 상연은 항상 은중의 인생에 불쑥불쑥 끼어든다. 상연이 ‘쌍연’이 되어가는 과정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러나 피할 수 없이 다가온다. 드라마 후반부로 갈수록 상연은 은중에게 못되게 굴지만, 상연의 말처럼 그 뻔뻔스러운 장면들이 이해되었다.


은중은 상연에게 말한다.


“누가 너를 끝내 받아주겠니.”

"그 말이 내 30대 전부를 지배했어.저주처럼 끈질기게."


누군가의 한마디가 어떤이에겐 삶을 통째로 흔들만큼 강렬하다.


“전에 너한테 못되게 굴었지. 그래서 더 뻔뻔해지기로 했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상연의 처연한 외로움이 마음속 깊이 스며들었다. 비록 그 외로움이 그녀 스스로 자초한 것일지라도, 나는 그 외로움을 이해 할수 있었다. 쌀쌀해진 요즘 날씨 탓만은 아니다. 어쩌면 나 역시, 나를 떠나간 사람들을 떠나게 만든 장본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가까운 이들과의 이별 속에, 조금쯤은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으니까. 그게 의도적이든, 아니든.


은중과 상연 어린시절의 인연으로 감정의 균열, 관계의 변화 비밀과 상처의 폭로, 결별과 재회를 반복한다.

상연은 결국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고, 은중은 그런 상연을 끝내 이해하고 용서한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예전처럼 함께할 수 없지만, 서로의 존재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한다. 드라마는 “우리가 미워했던 사람 안에는, 결국 우리의 모습이 숨어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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