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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서울 Dec 11. 2020

다시 온 엄마호텔

올해 나는 무슨 복을 받았는지 일주일 휴가를 또 받았다. 연말 일주일을 통으로 정읍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생각해보면 휴가란 누가 준 게 아닌데 왜 이렇게 고맙고 복된 기분이 드는 걸까. 법적으로 주어진 정기휴가를 올해 안에 소진해야 하고, 내가 휴일근무를 해서 대체휴가가 생긴 것인데도 연말 5일의 휴가를 있는 대로 다 쓸 수 있다는 게 여간 축복인 게 아니다. 겨울에 이렇게 휴가가 일주일 주어진 적은 회사 다니며 처음이다. 휴가는 일 년에 단 한 번, 여름휴가밖에 몰랐다. 회사를 오래 다니고 볼 일이다. 처음 만나는 겨울의 자유다.


나는 그렇게 다시 정읍에 왔다. 서울을 벗어나는 고속버스 안에서 무한한 해방감을 느꼈다. 지난 한 달 반 참 고생했다, 잘 해냈다, 스스로 칭찬을 해주었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나른한 기분이 드는 것이 마치 갑옷 같은 '사무실옷'을 벗어던지는 느낌이었다. 버스에서 바라본 깜깜한 창 밖 풍경은 해외로 떠나는 그 어떤 비행기보다 설렘을 주었다. 한 달 반 만에 다시 온 이곳은 완연한 겨울이다. 차가운 밤공기에선 장작 때는 냄새가 났다. 상쾌하고  신선하면서 훈훈한 냄새였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연말 정읍 시내 빛 장식


그 사이 코로나 방역이 더욱 삼엄해져 서울에서 온 버스가 정읍터미널에 도착하자 발열체크 구간을 통과해야 터미널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내일은 확진자가 800명을 넘길 것이란 뉴스가 뜨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오는 걸 반기지 않았다. 외지인이 여길 대체 왜 오느냐, 서울에서 음성 판정을 받고 와라, 정읍에서 걸리는 코로나는 다 서울에서 온 친지들과 접촉해서 생긴다는데 너는 어쩔 거냐 등등. 제발 오지 않았으면 하는 엄마의 진심이 느껴졌다. 태생부터 불효녀인 나는 엄마의 간절한 마음을 뒤로한 채 "괜찮아"라는 의미 없는 답변만 늘어놓았다. 


갈대가 아름다운 정읍 천변 풍경. 마스크를 벗자 공기에서 겨울 냄새가 났다.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집에 들어가자 엄마는 KF94 새 마스크 봉투를 뜯고 빈틈없이 얼굴에 꼭 붙여 착용한 뒤 거실로 나오셨다. 그리고 나를 위해 당근주스를 갈아주셨다. 토마토, 양배추, 사과, 당근을 넣은 엄마의 신선한 웰컴 드링크. 이제 엄마는 불효녀 딸을 둔 덕에 일주일간은 집에서까지 마스크를 쓰고 계시겠다 한다. 따뜻한 돌침대가 있는 안방을 내게 내어주시고 작은 방으로 가서 주무셨다. '거리두기 하자'는 말씀을 남기신 채.


    

엄마호텔의 웰컴드링크, 고마워 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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