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인가 상처인가
뚜렷한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토요일.
엄마는 오늘 병원에 조직검사를 받으러 갔단다. 우리 딸 지우를 할머니 댁에 맡겨놓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아빠와 함께 병원에 가서 두려운 마음으로 엄마의 세포를 한 개씩 한 개씩 뜯어냈었어. 결과가 나올 때까지 두려운 마음을 안고 살아가야 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 앞으로 살아야 할까에 대한 생각들도 꾸준히 하고 있단다.
삶에 대해서 겸허해지는 순간들이 살면서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아. 순간에 취하고, 상황에 젖어서 하루를 그저 수동적으로 살아가기에 급급한 요즘의 나날들. 그런 엄마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겸허한 지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지우가 없었다면 어쩌면 엄마도 삶의 자유를 지속적으로 누리도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
살아가고 죽어가는 모든 것을 온전히 엄마 혼자 감당할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것은 슬프지만 편안한 생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구나. 내가 없을 때 우리 딸 혼자 남겨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고작 6개월 된 엄마가 이렇게 강하게 느끼는데, 앞으로는 이런 마음들이 얼마나 더 심해질까.
우리 딸, 어떻게 보면 삶이라는 것을 그렇게 지나친 애착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가끔은 지우가 그냥 흘러가는 물결에 몸을 맡긴 채 둥둥 떠내려가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하늘에 계신 절대자가 어쩌면 모든 인생에 대한 설계를 끝내고 우리 지우를 엄마 곁으로 보내셨을 수도 있단다. 수동적으로 살아가라는 말이 아니라, 가끔은 우리 딸이 삶에 순응하는 자세를 갖고 살아갔으면 참 좋겠구나.
지우야. 오늘은 이상하게 삶의 모든 부분들이 흑백사진처럼 엄마의 머릿속에 강한 자욱으로 남는 것 같구나. 엄마의 손을 꼭 잡아주며 안심시켜주는 아빠의 마음도 애달프고, 엄마의 걱정을 그 누구보다 마음 아파하고 계신 할머니의 눈빛도 너무 가슴이 아린 하루였단다.
엄마가 고등학교 3학년, 수능 보기 하루 전날 극심한 긴장감으로 복도를 걷고 있었는데 창 밖에 빨래를 탈탈 털어서 널고 있는 한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참 가라앉았던 적이 있었단다. 그 어떤 의미 있는 날도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일상 그 자체라는 생각을 하면 거창한 하루도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구나.
엄마는 이런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려고 마음을 먹고 있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떠오르는 생각은,
사랑하는 우리 딸 옆에서
엄마는 오래오래 함께 있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