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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에 Dec 02. 2020

 내 동생의 결혼

사랑하는 나의 동생아




Peter Doig, <100 years ago>,  1998, 229 ×359 cm, Centre Pompidou, Paris



나에게는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 정말 작고 귀여운 그 아이가 치열하게 싸웠던 소년이 되었고,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해보겠다고 하는 일꾼이 되었다가 이제는 한 여자의 남편이 된다고 한다. 나에게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혈육이라 정말 마음속 한편에 마치 아픈 손가락처럼 남아있는 나의 동생. 그래서 나의 결혼 때, 내 동생은 그렇게 누이를 떠나보내는 마음을 담아 눈물을 흘렸을까.


막내인 동생은 철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성숙했고, 생각이 없어 보이면서도 정말 바다처럼 속이 깊었다. 내가 정말 힘들었던 취업의 시절, 매번 낙방하던 문턱을 넘지 못해 온 방 창문의 커튼을 어둡게 쳐놓고 방구석에서 누워있기만 한 그 시절에도 내 동생은 무덤덤하게 내 옆자리를 지켜주었었다.


엄마처럼 뭘 먹어라, 몸 잘 챙겨라, 이것저것 잔소리와 걱정을 늘어놓지도 않았다.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내 옆에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내 머리맡에 앉아있었다. 하교길에 정말 얼굴만 한 모카빵을 사 와서 나에게 던져주며 맛있다고 먹으라고 했었다. 자기가 수업시간에 흥미로웠던 강의를 요약해서 알려주었었다. 누나가 울 때에는 그냥 울게 내버려 두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힘든 시간은 어쩌면 부모님보다는 내 동생과 함께 했는지도 모른다.

 

동생이 가고 싶었던 의학대학원 정문 앞에 있는 지금은 사라져버린 TGI 레스토랑에서 이것저것 시켜먹으면서 청운의 꿈도 키웠었다. 푸르른 녹음이 짙게 우거진 세상이 우리 주변을 온통 감싸고 있었다. 노력하면 세상의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고, 내가 대한민국에서의 최고의 커리어 트랙을 거침없이 밟아나갈 수 있는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둘은 모두 낙방했고 자꾸만 실패했으며 허무하게 사라진 꿈을 보며 낙담했다. 그렇게 어떤 인생의 슬픈 정점을 우리는 함께 했었다. 동생의 면접 날, 정말 별거 아닌 김치찌개와 계란 프라이를 차려 새벽에 아침밥을 차려주었던 내 모습은 정말 엄마 그 자체였었다. 


한 때, 동생은 나에게 하나의 자랑이었고, 기쁨이었다.



그런 동생이 왠 낯선 여인의 손을 잡고 있는 그 모습이 참으로 이상했다. 어른이 되서 응당 부모의 품을 떠나고 누나의 품을 떠나는 것이 순리이거늘, 어쩜 그렇게 애기처럼 계속 안아주고만 싶었는지 나는 벅차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동생이 아름다운 신부와 함께 행복하게 오래오래 백년해로 하기를 얼마나 그 자리에서 기도했는지 모른다. 이제 가족과 가족의 모습으로 동생과 만나서 살아가겠지만, 우리 둘의 너무 아름다웠던 청춘 그 시절은 영원히 내 기억 속에서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괜히 서러워지려한다.


하지만 이게 인생이고 흘러가는 세월이라면 기쁘게 받아들이리. 

더욱더 아름다운 세월이 나를 마주하는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아가리.

이 세상 속에서 귀한 인연이 닿아있는 그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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