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로에 Dec 01. 2020

회사에서 눈물이 날 때

내 성격 때문인가요, 나의 꿈 때문인가요?



Edvard Munk, <Eye in Eye>, 1894, 136 x 110 cm, Munch Museum, Oslo, Norway 




회사라는 공적인 장소에서 감정이 격해져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이를 낳고 이제 여의도로 복귀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나는 사실 2016년부터 이곳에서 쭉 지내온

누구도 나를 신참으로 보지 않는 말년 대리 그 자체였다.


그러나 나 마음과 감정은 리셋되어 마치 부서에 처음 들어와서 벌벌 눈치를 보던 그때로 내 자신이 돌아가 버린 것 같은 일주일이었다. 사람들의 말과 의도가 잘 읽히지 않았고, 눈치 있고 빠르고 자신감 있게 스스로 먼저서 나서지도 못했다. 업무 플로우를 읽지 못해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나에게 팀장은 무언가를 요구하고 또 요구했다.


'적극적이고 똑똑한 일꾼이자 광대가 되어 팀을 고무시켜달라고' 암묵적으로 그는 나에게 눈치를 보냈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치 신입의 롤을 나에게 맡기면서도 오래된 선임처럼 마인드를 갖고 능숙하게 다 해내라는 건데 그 어느 쪽도 사실 나의 성격에 맞는 것이 없다.


사람마다 성격은 천지 차이이다. 그 고유한 성질을 역행해서 사회생활을 해야만 하는 건가, 나는 진심으로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 모두가 고유한 자기의 영역이 있고 잘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배려해서 그 전장에 해당 장수를 보내서 싸우게 하는 것이 리더로서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거 아닌가.


나는 정말로 지독한 typical A형 그 자체이다. 혈액형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네이버에  '여자 A형'이라고 치고 바로 첫 글을 읽어보면 그냥 그게 나라고 나는 바로 얘기할 수가 있을 정도로 나는 그런 성격을 갖고 있다.


내가 가장 심적으로 고통을 많이 받는 것이 '먼저 나서서 얘기를 꺼내는 것'이다. 나는 일단 매우 신중한 성격으로 확실하지 않은 무언가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에 공포를 느끼고 있고, 나는 또한 다른 사람들의 리액션에 과민한 반응을 일으키는 예민한 성격으로 화두를 꺼냇을 때 그 돌아올 말들에 상처를 너무나 잘 받는다. 이 두 가지의 이유라면 내가 얼마나 합리적으로 '화두를 꺼내는 것'이 나와 적합하지 않은 일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한쪽에 재주가 없다면 나머지 다른 쪽으로 그 재주가 갈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말보다는 글에 능해서 의사표현을 글로 하는 것을 너무나 선호한다. 나는 무언가 진득하게 앉아서 연구하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사색하는 것에 깊은 애정을 느끼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나의 재주이고 능력일지도 모르지만 회사는 나의 이런 것을 도저히 써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회사는 그저 나보고 센스 있게 나대면서 분위기를 띄우고 다른 팀에서 보았을 때 화기애애하고 적극적인 팀이라고 느끼게끔 나에게 행동을 하라고 한다.


얼마나 졸렬한가!


화기애애하고 적극적인 느낌은 정말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리더가 분위기를 잘 닦아서 팀원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인데 과연 이것은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 것일까? 리더 자신은 스스로에 대한 고찰과 반성을 해보았을까? 모든게 다 팀원의 과오이고 부족일까. 나는 정말 삿대질을 하고 따지고 싶었다.


당신이 나에게 요구하는 그 적극성 때문에 내 속이 말라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정말 말해주고 싶었다.


한바탕 팀장에게 적극성이 부족하다고 박살이 나고 나서 모니터를 응시하는데 참을 수 없이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 무섭게 분비된 옥시토신 호르몬 때문이라고 얘기하기엔 벌써 7개월이 지났다. 그냥 이건 과거부터 절대 변하지 않는 나 자신이었다. 나는 과거에도 한번 솟아오른 감정을 컨트롤하기가 어려워 가끔 이렇게 공적인 공공장소에서 치부를 들키곤 했다. 나이 곧 마흔 줄에 다다른 만년 대리가 눈물이라니, 이거 왠 웃기고 어이없는 상황인가.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간에, 그렇게 눈물을 줄줄 쏟아냈다. 화장실에 가서 미처 남은 눈물을 다 쏟아내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저히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회사생활이 너무 잔인한 것은 끝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시간은 미친 듯이 빠르게 부질없이 반복적으로 흐르고 있는데, 그렇게 내 인생은 흘러만 가고 있는데 도저히 이 공간에서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분명 끝이 있기는 한데 이렇게 답답한 마음을 갖고 매일을 살고 매월을 살고, 그렇게 몇 해를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지난해 뒤에는, 나의 젊음이 사라졌을 거고,

그렇게 지나가 버린 시간 뒤에는, 삶에 대한 나의 열정이 아마 사라져 있을 것이다.


정말 평범하고 평범한 다수의 사람 중에 하나가 되어 건강한 삶 외에는 아무런 욕심도 꿈도 없는 사람이 되어있겠지,


나는 내 인생이 무언가 특별했으면 좋겠다.



거창한 그런 성공, 이런 것이 아니라 내가 무언가 고유한 나만의 색깔을 마구 발산하면서 사는 꿈을 열망하는 것 같다. 그것이 얼마나 사치이며, 혹은 사치가 가능한 환경에 있는 자만이 이룰 수 있는 꿈인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편에 그 생각을 도저히 놓을 수가 없다.


나는 오늘 또 회사에서 눈물을 흘리고 마음을 다쳤다. 하지만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모호한 이유로 눈물을 흘렸고,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헛된 꿈을 꾸면서 살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이유를 알면서도 오늘 또 반복하는 삶을 살았다. 언제쯤 이 루프의 끝을 마주할 수 있을까.



간절한 마음이 앞서는 요즘이다.






작가의 이전글 공허한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