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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에 Dec 19. 2020

사랑 없이는 무엇이 남는지요

우리는 평범한 사랑을 하고 있는 걸까요?



 Richard Bergh, <Nordic summer's evening>, 1899, 170 × 223.5 cm, Gothenburg Museum of Art




뭉크의 우울한 그림의 심연에는 그의 혹독한 첫사랑 밀리에 타우로브가 있고,

피카소의 에로틱한 느낌의 모호한 여인의 그림 뒤에는 도나 마라가 있었다.

만 레이는 가질 수 없는 리 밀러의 얼굴을 분해해서 사진으로 남겼으며,

피터 슐레진저는 호크니에게 가장 아름다운 파란색을 남겨주었다.



작가들의 광기 어린 삶을 마주하다 보면 응당 한 줄 적혀 있는 뮤즈란 이름의 연인들이 항상 나타나곤 한다. 불안정한 그들의 감정은 연인으로 인해 더욱 불타올랐고, 연인 때문에 스스로를 화려한 불길 속에 몸을 내던진 작가들 덕분에 우리는 아름다운 작품을 조우하게 되었다.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이 났을 뿐인데 그들의 사랑은 역사가 되고 기록이 되었다. 


모든 사람이 경험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과연 내가 만들어내는 것일까 아니면 주어지는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그 사람에게 내가 젖어드는 것이라면 분명 사랑의 감정은 언제 어디서부터 나도 모르게 시작되고 진행되었는지 모른다. 분명 처음에 누군가를 만났을 땐 이성이 내 머리를 지배했었다. 이런 점은 마음에 들고, 저 부분은 나랑 다르고, 음 이런 부분은 나쁘진 않은데 그렇다고 좋지도 않네? 수도 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나 혼자되내며 이성적으로 생각한 이 순간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정말 알아채지 못한 채,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 연극의 막은 바뀌어버렸다.


나는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일상은 뒷전이 되어버렸고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었다. 만나도 특별히 하는 것 없어도, 그냥 옆에 손만 잡고 있어도 마음속에 차오르는 따뜻함을 무어라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왠지 그 따뜻함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금요일, 너무너무 힘들었던 업무가 끝이 났지만 왠지 모르게 집에 가고 싶지가 않다. 무작정 힘든 몸을 이끌고 용산역에서 목적지 없이 떠나가는 기차를 타고 낯선 바닷가 마을을 향해 간다. 늦은 자정을 넘어 가장 깊은 밤을 향하는 시간에 노곤함이 짙어져 머리는 점점 무거워지고 은근 쌀쌀한 날씨 때문인가 몸이 으슬으슬 추워진다. 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내 어깨를 따뜻한 팔로 포근하게 감싸주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에게 이름을 물어보지도 못한 채 너무나 따뜻한 품 안에서 나는 잠이 들어버리고 기차는 아침 동트는 바닷가를 향해 다시 한번 힘차게 나아간다."


누군가에겐 비범하고 나에겐 평범할지라도 사랑은 사랑이다. 그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축복을 경험했고, 일상의 평범한 것들이 나를 지치게 해도 사랑은 특별함을 줄곧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별거 아닌 나를, 평범한 연속극보다 더 지루했던 나의 삶을 아름답게 그려주어 고마운 나의 사랑.


내가 언젠가 갑자기 사라진다 해도 내 모습을 그대의 머릿속에 뚜렷하게 남겨놓아 준 나의 연인에게 문득 애틋함과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설령 멋진 사랑으로 길이길이 남길 수 없는 나의 평범한 사랑이라 해도, 그 사랑 없이 나에게 무엇이 남는지요.



한번 겸연쩍게 물어보고 싶은 깊고 깊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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