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시마무라가 요코를 오래 훔쳐보면서도 그녀에게 실례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은, 저녁 풍경을 담은 거울이 지닌 비현실적인 힘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방의 눈 얼어붙는 소리가 땅속 깊숙히 울릴 듯한 매서운 밤 풍경이었다. 달은 없었다. 거짓말처럼 많은 별은, 올려다보노라니 허무한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고 생각될 만큼 선명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이윽고 제각기 산의 원근이나 높낮이에 따라 다양하게 주름진 그늘이 깊어가고, 봉우리에만 엷은 볕을 남길 무렵이 되자, 꼭대기의 눈 위에는 붉은 노을이 졌다.
국경의 산을 북쪽으로 올라 긴 터널을 통과하자, 겨울 오후의 엷은 빛은 땅밑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 설국
이 책을 두 세번 넘게 조용히 읊조려 읽게되면 그 구절 뒤로 나즈막한 겨울의 영상이 머리에 서서히 피어오른다. 작가는 겨울의 차가운 온도를 고마코의 찬 머리카락에 빗대어 설명을 했고, 너무나 깨끗한 흰 눈과 고마코의 청결한 피부를 나란히 배치시켰다. 일본 소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처음 접했을 때, 너무나 부드럽고 섬세한 묘사로 온 몸으로 책을 읽는 경험을 했었다.
이상하게도 나에게 일본 소설과 영화, 혹은 일본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섬세한 나의 감정보다 더 섬세하게 다가와 내 마음의 빈 틈을 구석구석 채운다. 내가 생각하는 집요하면서도 섬세한 이 묘사의 느낌을 가장 적나라 하게 보여주는 것은 개인적으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에서 문소리가 낭독을 하는 장면이다. 물론 춘화와 야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 스스로 입에 올리기는 쉽지 않지만 이 장면은 일본소설을 떠올릴 때 내가 받아들이는 느낌 그 자체이다.
https://youtu.be/crcrQdaChgM
부끄러운 입술 아래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날 것의 묘사, 그런데 그 묘사는 이상하게 굉장히 절제되어 있다. 심지어 이 묘사는 아름다운 게이샤의 화장처럼 그럴싸하게 아주 짙은 하얀 분칠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압권은 아주 얇게 그어진 너무나 붉은 입술과 같은 갑자기 도드라진 어떤 낯선 표현이다.
문소리가 아주 내성적인 자태와 목소리로 표현을 했지만, 그 속에 응축되어 있는 이상한 힘과 분노 또한 일본 소설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유사하다. 이상하게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말수가 적은 우울한 형상 아래에 수많은 사고가 교차하고 그 무게감은 인생을 짓누르고 삶의 방향을 전환시킨다.
아름다우면서도 기괴하고
숨이 멎을 것 같은 묘사는 깊은 잔상을 남긴다.
아름다운 설국,
오늘도 그렇게 나는 일본의 국경을 넘나드는 열차를 타고
아름다운 한 여인의 차갑고 검은 머리카락처럼
깊게 드리워진 밤을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