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라 Jan 23. 2021

원래는 맥시멀리스트였다죠.

반 강제 미니멀 라이프.




원래 난 미니멀리스트는 아니었다.

혼자 살던 원룸엔 사소한 것들이 넘쳐났다. 초등학교 때 쓴 일기장부터 친구들과 나누었던 종이쪽지까지. 거기에 예쁘고 쓸모없는 것들을 모으기도 좋아했다. 마음에 드는 옷은 다른 색도 꼭 사야 했고, 한때는 리본 달린 신발이 좋아 색깔 별로 모았다.

또 언제는 그림도 못 그리는데 아크릴 튜브 물감을 진열할 용도로 색깔 별로 모으기도 했다. 예쁜 옷 라벨들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고 마음에 드는 선물 박스도 모았다. 그랬다. 난 맥시멀 리스트였다.



그런 우리 집에 토끼 밤이가 왔다.

아가 밤이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돌잡이 어린아이들처럼 모든 물건은 입에 들어갔다 나와야 속이 후련했는데, 종이로 만든 것은 무조건 깨물었고 적당히 씹히는 맛이 있으면 구멍이 날 때까지 깨물었다. 옷과 이불에는 구멍이 났고, 핸드폰 충전기와 키보드 연결선, 심지어 그 굵은 컴퓨터 전원선도 끊어졌다. 바닥에 물건이 있으면 모두 밤이꺼나 마찬가지였다.



밤이와 살기 위해선 정리정돈을 해야 했다.

하지만 난 맥시멀 리스트 아닌가. 물건을 밤이가 닿을 수 없는 숨기려다 보니 옷장과 수납장, 심지어 싱크대도 터지기 직전이었다.

어차피 집에 있어봐야 밤이의 장난감이 될 것이니 물건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늘어나서 헤져서 더 이상 입을 수 없는 옷들, 사용하지 않는 가방들, 신발 등 몇 년간 사용하지 않은 옷과 잡화만 골라냈는데 100리터 쓰레기 봉지로 세 봉지가 나왔다.

난 맥시멀 리스트이면서 테트리스의 달인이었나 보다. 그 많은 물건이 8평 밖에 안 되는 작은 원룸에 다 있었으니 말이다.

이후로도 주말마다 커다란 쓰레기 봉지를 샀다. 매니큐어 같은 수집용 화장품, 머리끈이나 머리핀, 장식품 같은 것들을 버렸고, 더 이상 버릴 것이 없을 때 공부했던 전공책을 버렸다.

마지막엔 베란다에 처박아둔 물품들, 언젠가 사용할 것 같아 모셔두었던 것들 등 부피 큰 물건을 버렸고, 밤이가 뛰어놀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어졌다.


밤이 덕분에 맥시멀 리스트에서 점점 변하고 있다.





밤이와 두번째 집













사라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 같은 퍼펙트한 미니멀리스트는 아니에요샴푸바 하나로 세안과 샤워를 모두 하는 환경을 위한 제로 웨이스트의 삶을 살지도 못해요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니멀 라이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물건에 치여 살지 않을 만큼 적당히 소유하고적당히 단순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서에요

저는 적당히 하는 미니멀리스트예요.


1남편, 1아내, 1토끼가 함께 살아요.

instagram.com/small.life.sarah

blog.naver.com/sechkiz




매거진의 이전글 집은 원래 다 그런 거 아닌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