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의 이야기를 종종 SNS에 올린다. 아빠 품에서 팔베개를 하고 잠을 자는 사진, 아빠를 찾아 각 방문을 두드리는 영상, 침대 위의 인형들 사이에서 인형 인척 앉아있는 사진 등. 그러면 어김없이 질문을 받는다.
“토끼도 교감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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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난 시골에 살았다. 집 문을 열고 나가면 바다처럼 논이 펼쳐지던 그런 곳이었다. 어느 날 아빠가 토끼를 데려왔고 현관문 왼쪽에 노란색 플라스틱 사과 박스 두 개를 연결해 집을 만들었다.
아침 이슬이 맺혀있던 시간이면 아빠와 논과 밭 근처에서 토끼풀, 민들레, 씀바귀 같은 것을 뜯어와 간식으로 주었다. 하지만 기억도 거기까지, 난 토끼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한 마리인지 두 마리 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흔한 이름 하나 지어주지 않았으니 토끼와 교감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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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토끼 소피 이야기를 들었다. 소피는 남편네 하얀 토끼였다. 아침에 얼굴을 내밀면 작은 입으로 래빗 키스를 해주는 사랑스러운 토끼였다.
그때부터였다. 토끼 입양을 생각했던 것이. 남편은 종종 토끼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고, 그때마다 마음이 콕콕거렸다.
밤이를 입양했지만, 참 힘들었더랬다. 일단 토끼에 대해서 알아야 했는데, 반려 토끼에 관련된 책도, 개통령 강형욱 반려견 교육사도 없었다. 얻을 수 있는 정보라고는 토끼 관련 카페와 블로그 경험들 뿐이었다.
우리는 매일 싸웠다. 최소한 집안에서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은 교육하고 싶었지만 내 고집만큼이나 밤이도 고집쟁이였다. 정말 토끼도 ‘반려 동물’이 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고, 몇 개월은 정말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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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너무 힘들었던 어느 날, 지칠 대로 지쳐 침대에 앉아있었다. 상처 받은 마음에, 연속된 야근으로 방전된 체력에 참으로 힘들었더랬다. 그런데 밤이가 갑자기 침대에 폴짝 올라오더니 슬며시 엉덩이를 붙이고 옆에 앉았다.
몸 한쪽 구석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뒤돌아 앉은 밤이의 조막만 한 등을 보니 눈물이 났다. 하루가 힘들어서였는지, 밤이가 옆에 와 준 것이 고마워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밤이의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으며 한참이나 울었다. 그 날, 나는 토끼도 교감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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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밤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것은, 타인이 적어놓은 경험을 그대로 받아들여서가 아닐까 싶다. 사람의 각자의 성격이 다르듯, 토끼도 모두 성격이 다른데 말이다.
밤이는 우리가 떠올리는 토끼 하면 떠올리는 순한 토끼와는 거리가 멀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확실한 토끼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열 번쯤 시도해보아야 하는 고집 센 토끼이다.
우리는 요즘도 가끔씩 싸운다.
하지만 그 싸움이 예전과 같은 다툼은 아니다. 그저 간식이 조금 더 먹고 싶어서, 서로 좋아하는 자리에 눕고 싶어서, 혹은 서로 사랑받고 싶어서 하는 밀당, 혹은 앙탈이다.
밤이는 여전히 내가 힘들어할 때면 몇 년 전 원룸에서처럼 달려와서 조막만 한 등을 보인다. 하지만 나도 이제는 밤이가 애정 받고 싶어 할 때면 언제나 손을 내밀어준다.
올해로 7년째,
우리는 서로의 기분 정도는 척 보면 아는 사이가 되었다.
작은 집에 토끼랑 함께 삽니다.
1남편 1아내 1토끼가 사는 이야기. (정말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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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밤이의 작지만 큰 세계, 집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지내는 이야기예요. 장난꾸러기 토끼이지만 보송한 얼굴로 두 발을 곱게 모으고 앉아있으면 마음은 어느새 고롱고롱 해지곤 해요.
토끼와 살면서 라이프 스타일이 변했고, 소소한 습관들도 변했어요. 맥시멀 리스트는 미니멀리스트가 되었고, 청소라고는 한 달에 한 번쯤 하던 사람이 매일 아침마다 대청소하는 부지런한 인간이 되었죠.
토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능청스러운 밤이에게 우리는 7년째 길들여지고 있어요.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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