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1일부터 시작된 '칸 국제 광고제(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 칸 라이언즈)'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칸 라이언즈는 칸 영화제에 자극을 받은 유럽 영화 광고 종사자들이 1954년 광고인들을 위한 행사를 기획하며 창설되었다. 당시엔 극장용 광고가 대부분이었지만, TV 매체가 발달하며 TV CM을 포함한 광고 페스티벌로 확장되었다. 매해 6월 칸의 팔레 데 페스티발(Palais des Festivals)에서 열리며, 9개 트랙(Track) 28개 라이언즈(Lions)로 나뉘어 각각 그랑프리(Grand Prix)와 금, 은, 동 사자상을 수여 한다. (Cannes Lions 홈페이지)
* 2021년은 펜데믹으로 인해 수상이 중단되었던 2020년 출품작까지 함께 심사하여 진행되었다.
올해도 수많은 브랜드의 광고 캠페인이 칸의 선택을 받았다. 버거킹의 'Moldy Whopper(곰팡이 핀 와퍼)'는 창의적인 브랜드 경험을 선사한 옥외광고에 수상하는 'Outdoor' 부문에서 영예를 안았다. 2020년 공개된 광고 영상은 34일간 방치한 와퍼 햄버거에 곰팡이가 피는 과정을 타임랩스로 보여주며 '인공 첨가물 없는 건강한 햄버거'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윤기가 흐르고 먹음직스럽게 촬영하는 기존 음식 광고의 클리쉐를 벗어 던짐으로써 웰빙이 주요 화두로 떠오른 현대 사회에 창의적인 방식으로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을 끌어냈다는 평가다.
Moldy Whopper, Burgerking
'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 트랜스포메이션 라이언즈(Creative Business Transformation Lions)'는 올해 새롭게 신설된 부문이다. 제품 및 서비스를 통해 기업 운영과 고객 경험에 혁신적 변화를 만든 캠페인에 시상한다. 첫 수상의 영예는 프랑스 프랜차이즈 매장 까르푸(Carrefour)의 'Act for Food'에게 돌아갔다. 영상은 건강한 삶과 생태계 보전을 위해 3년간 까르푸가 걸어온 길과 그로 인한 변화를 요약하여 보여준다.
CARREFOUR’S 'ACT FOR FOOD' WINS CREATIVE BUSINESS TRANSFORMATION CANNES GRAND PRIX, Credit : Adage
매년 국제 광고제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나이키는 크리에이티브 효율성(Creative Effectiveness) 부문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브랜드 액티비즘을 선도하는 나이키는 사회적 메세지를 광고 및 캠페인을 통해 표현하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또는 환경적 개선을 통한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만드는 브랜드의 노력 [유승철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제일기획 매거진 (2020.12.14)]
대표적으로 2019년 한국에서 공개한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광고가 있다. 가능성을 믿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여성들을 위해 기획된 이 광고는 가수 엠버와 프로 골프 선수 박성현 등 자신의 분야에서 꾸준히 도전해온 인물들이 등장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얼마 전 공개된 나이키의 'Play New' 캠페인 또한 국내 쳬육계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폭력과 기강 문화를 비판하며 스포츠인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 실제 폭행 및 폭언의 피해자인 심석희 쇼트트랙 선수를 광고 모델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브랜드 진실성이 드러난 스토리텔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그랑프리를 수상한 나이키 '드림 크레이지(Dream Crazy)' 또한 '신념'이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품고 있다. 광고는 '신념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정진하라'라고목소리를 내며, 2019년 아웃도어(Outdoor)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한 후 2년 만에 다시 한번 그랑프리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크리에이티브 효율성 부문은 올해 심사 기준이 개편되며 2017~2019년에 칸 라이언즈를 수상했거나, 후보에 오른 작품들 중에서 선정한다.)
Dream Crazy, Nike Just Do it
가진 것과 맞바꿔 지켜낸 신념
2019년 공개된 '드림 크레이지' 영상은 당시 미 풋볼 선수 콜린 캐퍼닉(Colin Kaepernick)을 광고 모델로 내세운 것으로 논란이 일었다. 캐퍼닉은 2016년 미국 경찰의 흑인 과잉 진압이 논란이 일자 경기 시작 전 국가 제창을 거부하고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시작한 인물이다. 그의 행동은 흑인과 진보 성향 시민들을 중심으로 뜨거운 호응을 얻었지만, 보수층은 사회 분열을 부추겼다며 비난했다.
Colin Kaerpernick on Time Magazine (Oct, 2016)
논란을 만든 캐퍼닉에게 계약서를 내민 구단은 없었다. 그는 NFL(미프로풋볼리그) 협회 소속 구단주들이 공모해 계약을 방해했다며 소송을 걸었다. 하지만 캐퍼닉은 2018년까지도 함께할 팀을 찾지 못했고 2016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현재는 사회 운동가로 활동 중이다)
이같은 상황에 처해 있던 캐퍼닉을 모델로 발탁한 것이 나이키였다. 2019년 '저스트 두잇(Just Do it)' 캠페인 3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광고를 기획 중이던 나이키는 슬로건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로 그를 낙점했다. 세레나 윌리엄스(테니스), 르브론 제임스(농구), 오델 벨컴 주니어(미식축구) 등 쟁쟁한 스포츠 스타들을 제치고 메인 모델로 캐퍼닉을 발탁한 것은 나이키가 크리에이티브 제작에 있어 진실성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신념을 가져라, 모든 것을 희생한다 할지라도 Believe in Something, even if it means sacrificing everything
광고 이미지가 공개되자 인터넷엔 갈등의 불이 번졌다. 캐퍼닉을 비난하는 소비자들은 나이키 불매 운동을 벌였고,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은 '나이키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나?'라는 트윗을 개제했다.
트럼프 미 전 대통령의 트윗과 나이키의 옥외 광고
갈등은 신구 좌우로도이어졌다. *루이지애나주 케너시에서는 '나이키 상품 구매를 중단하라'라고 지시한 시장의 공문이 유출되었고, 이에 반발한 시 의원들은 나이키 매장에 방문해 구매 인증샷을 찍어 올렸다. *글로벌 투자 금융 회사 캐너코드 제뉴이티(Canaccord Genuity)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광고를 본 응답자의 41%가광고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는데,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대학생 그룹에서는 무려 68%가 나이키와 캐퍼닉의 행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 Catlin O'kane, "Mayor bans city clubs from buying Nike products amid debate over Kaepernick ad", CBS News(2018.09.10)
* Nathaniel Meyersohn, "Young people support Nike's bet on Kaepernick, poll shows", CNN Business(2018.09.13)
여러 논란에도 나이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향후 소비 시장의 중심이 될 MZ 세대를 겨냥한 마케팅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실제로 *디지털 이커머스 리서치 기업 에디슨 트렌드(Edison Trends)는 9월 7일 보고서를 통해 나이키의 매출이 31% 증가했다고 발표했고, 광고 직후 급락했던 주가는 같은 날 캠페인 공개 전 수준을 회복했다.
* Martin Pengelly, "Nike sales surge 31% in days after Colin Kaepernick ad unveild, analyst says", The Guardian(2018.09.07)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2019년 칸 라이언즈는 나이키 '드림 크레이지'에 그랑프리 수상의 영예를 돌렸으며, 2021년에도 그 가치를 새롭게 조명했다.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브 효율성 부문은 '아이디어'와 '크리에이티비티', '단기 매출 증대', '장기 매출 증대' '브랜드 성장', '영향력' 등 여섯 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심사한다. 캠페인이 브랜드에게 가져다준 정성적/정량적 효과와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 지속 기간 등 종합적인 효율성을 판단하는 것이다.
*칸 라이언즈 아웃도어 부문 심사위원단장이자 글로벌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그룹 GREY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John Patroulis는 광고에 대해 "모든 면에서 한 단계 높은 수준"이라고 평하며, "최근 광고계에서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 중 하나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광고가 내포하는 사회적 이슈의 옳고 그름을 떠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선수 생활을 내놓았던 캐퍼닉과 그의 정신을 브랜드에 투영시키고자 했던 나이키의 도전이 이같은 결과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 Brittaney Kiefer, "Nike's 'Dream Crazy' director on giving Colin Kaepernick a voice", Campaign(2019.06.18)
(Editor) 권세찬
(생각)
개인에게 신념은 선택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학습과 체험 등에 의해 형성된다.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사상이나 명제, 언설 등을 적절한 것 또는 진실한 것으로서 승인하고 수용하는 심적 태도'를 말한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으로서 매 순간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현실을 지키는 대가로 부당한 일을 외면하기도 하고, 타인의 시선과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회적으로 올바르다고 받아들여지는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때문에 무조건적인 신념의 필요성에는 양분된 의견이 존재한다. 캐퍼닉의 행동에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평생 해왔던 운동을 그만두게 만든 그 신념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누구보다 신념의 중요성을 잘 알았던 마윈 전 알리바바 그룹 회장도, 그의 신념을 지키다 좋지 못한 일을 겪어야 했다.
신념에 따른 선택엔 대가가 있기 마련이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길을 선택한 청년은 그가 마주칠 난관을 견뎌내야 하며, 이직을 선택한 직장인은 새로운 직장에서 겪는 또 다른 문제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필자는 11년간 몸담았던 곳을 떠난 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불안감에 수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야 했다.
하지만 그 대가마저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것이 신념이다. 신념이 있다면 올바르게 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고, 뒤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잠 못 드는 밤에도 필자를 다시 일으켰던 힘은 선택에 대한 믿음과 가끔 마주하는 의미 있는 결과물이었다. 마윈 회장 또한 찰나의 선택이 그를 힘들게 하곤 있지만, 신념이 없었더라면 마윈 회장이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부와 명성을 쌓은 지금도 그는 여전히 신념을 따라 길을 걷고 있다.
나이키 광고에 등장하는 모든 스포츠 스타 중에, 오직 캐퍼닉만이 유니폼이 아닌 일반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선택의 대가가 결코 가벼워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서 그보다 훨씬 무겁고 단단한 신념을 엿볼 수 있는 것은 필자 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당신의 선택을 지지한다는 말과 함께, 광고에 등장하는 나레이션을 소개하며 마무리한다.
If people say your dreams are crazy, if they laugh at what you think you can do
만약 사람들이 네 꿈이 말도 안된다고 말하거나, 네가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을 비웃는다면
good, stay that way.
좋아, 계속 그렇게 하라고 해.
because what non-believers fail to understand is that calling a dream crazy is not an insult.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해. 꿈을 미쳤다고 말하는 건 욕이 아니야.
it's a compliment.
그건 칭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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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don't ask if your dreams are crazy, ask if they crazy enou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