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bar)에 가면 라임 혹은 레몬과 함께 서빙되는 맥주가 있다. 최근 전염병과 이름이 겹치며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했던 코로나(Corona)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멕시코 양조기업 *그루포 모델로(Grupo Modelo)가 소유한 글로벌 브랜드인 코로나는 1925년 출시된 역사 깊은 라거(Lager)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 중 하나다. *미국 시장에서도 기네스, 하이네켄에 이어 가장 유명한 맥주 3위에 랭크될 만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우리가 아는 모델로(Modelo)맥주를 만드는 기업이다. 2008년, 앤하이저부시 인배브(Anheuser Busch InBev, AB Inbev)가 52조 원이란 거액에 지분50%를 인수하며 글로벌 맥주 기업의 일원이 되었다.
* Christian Smith, "These are top 20 most popular beers in America, according to a new urvey", The Drinks Business (2021-04-21)
코로나 맥주
2021년 여름, 코로나의 미국 판권을 소유한 콘스텔레이션 브랜즈는 라스베가스 스트립 한복판에 새로운 맥주 자판기를 선보였다. 디지털 언어학습 기업 *듀오링고와 협업하여 탄생한 이번 이벤트는 길거리의 사람들에게 '코로나 하드 셀처 리모나다' 맥주를 공짜로 나눠준다.
* 듀오링고는 2019년 기준 3억 명의 사용자를 보유한 글로벌 에듀테크 기업으로, 누구든지 무료로 배울 수 있는 외국어 학습 과정을 제공한다.
다만 한 가지 재미있는 조건이 있다. 바로 '정확한 스페인어 발음'으로 맥주를 요청한 사람들만 공짜 맥주를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다.
Dame una Corona Hard Seltzer *Limonada por favor
* Limonada : 레모네이드(Lemonade)의 스페인어식 표현
맥주 공짜로 드려요! 단, 스페인어 제대로 하면..
잠들지 않는 도시로 알려진 라스베가스는 축제와 게임, 도박의 중심지로서, 거리 구석구석이 술과 마약으로 가득한 곳이다. 또한 매해 수 백회의 산업 컨벤션과 박람회,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는, 말 그대로 세상 모든 사람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미국 박람회 참석 당시 촬영했던 라스베가스 스트립
이 길거리의 중심에서 코로나 맥주와 듀오링고는 크로스오버(Crossover) 마케팅의 일환으로 새로운 맥주 자판기를 선보였다. 코로나의 신제품 출시에 맞춰 기획된 이 팝업(pop-up) 이벤트는 음성인식 키오스크에 대고 맥주를 요청하는 사람에게는 공짜로 하드 셀처를 제공한다.
단, 정확한 발음으로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사람만 맥주를 마실 수 있다. 발음이 이상하거나 잘못된 단어를 말하면 'No bueno (정확한 발음이 아닙니다)' 라는 대답을 듣게 된다. 물론 재도전의 기회가 있지만, 그럼에도 완벽한 스페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면 공짜 맥주의 기회는 사라진다.
라스베가스 스트립에 설치된 코로나 하드 쉴처 레모네이드 자판기 (credit : Corona Hard Sheltzer Limonada)
맥주를 받는 데 실패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마지막 기회까지 날려버린 이들에겐 열심히 공부하라는(?) 의미에서 듀오링고 플러스 1개월 이용권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듀오링고 플러스는 듀오링고의 프리미엄 유료 서비스로, 이벤트 참여자는 선물받은 이용권을 등록하여 한 달간 무료 학습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사람들은 시도 자체만으로도 즐겁다는 반응이다. "스페인어 수업을 더 열심히 들었어야 했는데.." 라고 한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Perfecto!(완벽해요!)"라는 응답기의 칭찬에 환호하는 사람도 있다. 여럿이서 동시에 발음하는 꼼수(?)를 부리는 사람들도 보인다.
엑티베이션을 주도한 멀린로우 LA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레나토 바레토(Renato Barreto)는 "리모나다가 많은 비 스페인어권 사람들에게발음하기어려운 단어라는 사실에 착안했다"라고 전하며, "이런 언어적,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과정에 소비자가 직접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리모나다를 다른 레모네이드 하드 셀처와 차별화 하고자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Corona Hard Seltzer Limonada | “Say ‘Hola’ to Corona Hard Seltzer Limonada!"? :60
주류와 발음이 무슨 관계?
코로나가 하드 셀처 리모나다 출시에 맞춰 해당 이벤트를 기획한 것은 마케팅 활동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를 최소화하고 브랜드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문화적 전유란, 사회 내 주류 문화집단의 구성원이 하류가 되는 문화 집단의 문화나 정체성 요소를 차용하는 것을 말하는데, 특히 그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차용하는 것을 가르킨다.
대표적으로 미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프로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둘러싼 논쟁이 있다. 클리블랜드는 1915년부터 인디언스란 팀명과 원주민이 연상되는 로고를 사용해왔는데, 이것이 북미 대륙의 원주민과 그 문화를 희화한다는 것이 주요 쟁점이다. 클리블랜드는 결국 올해 7월, 100년간 사용한 팀명과 로고를 교체하기로 결정했으며, 내년 시즌부터는 '클리블랜드 가디언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로고(왼쪽)와 이름 변경을 요구하는 지지자들 (오른쪽)
미국과 같은 다인종/다문화 국가에서 이런 논쟁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우리나라처럼 '한국시민=한국인'이라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나와 다른 문화집단의 문화적 요소를 대하는 방식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멕시코인을 중심으로 한 *히스패닉계 문화에도 적용되는 사항이다. 히스패닉계 인구는미국 전체의 18%를 차지하고, 일부 주에서는 그 비율이 50%에 육박할 정도로 거대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의 중심 문화는 여전히 영어권 영미문화이기에, 그 외 인종/문화는 모두 비주류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주류 집단과 이들 사이에 문화적 이해를 두고 발생하는 논쟁은 뗄 수 없는 운명인 셈이다.
*라티노(Latino)는 모든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을 포함하는 말이며, 히스패닉(Hispanic)은 스페인어권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만을 지칭하는 말이다.
때문에,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 있는 사회에서 특정 문화의 브랜드를 판매하는 기업에게 그 문화가 가진 모든 요소 - 언어, 관념, 신앙, 관습, 규범, 예술 등 - 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도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은숙명과도 같은 과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코로나 맥주가 신제품 출시와 함께 사람들의 발음 테스트(?)를 진행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이번 캠페인의 키(key) 아이디어는 수많은 미국인이 '리모나다'를 잘못 발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어가 문화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고려한다면, 이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유쾌하게 풀어냄으로써 브랜드가 가진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보여주려는 전략임을 눈치챌 수 있다.
'싱코 데 마요'는 1862년 5월 5일 프랑스에 대항한 멕시코의 푸에블라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리는 날이지만, 그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멕시칸 치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멕시코와 코로나 맥주
멕시코인에게 술은 생일, 세례, 결혼, 장례식, 농사 일 등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엔 늘 함께해온 존재다. 멕시코인들의 파티에는 언제나 맥주 박스가 가득하며, '마초'로 불리우는 멕시코 남자들은 술을 얼마나 잘 마시는가를 '남자다움'을 가르는 척도로 삼는다. 농촌 지역에서 자란 멕시코 소년들은 아직도 고대의 관습에 따라 *뿔케(Pulque)를 마시기도 한다.
*아즈텍 문명 시대부터 의례주로 사용되어온 멕시코의 전통주로, '백 년의 꽃'으로도 알려진 용설란을 활용해 만든다. 이 뿔케가 16세기 스페인의 침략과 함께 유럽에서 건너온 증류법을 만나 탄생한 것이 데킬라(Tequila)다.
용설란과 뿔케(Pulque)
1800년대 말은 정부의 음주 친화적 정책과 함께 뿔케 농장과 데킬라, 맥주 산업이 번창한 시기다. 당시 포고문에는 '경찰이 만취자를 제지할 수는 있으나, 스스로 걷지 못할 정도로 취할 경우에 국한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을 정도였다. 이 시기를 거치며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스포츠를 관람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도 했다.
이 흐름의 중심에서 탄생한 맥주가 코로나다. 출시 이래 멕시코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로 자리 잡은 코로나는 이제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브랜드가 되었다. 특히, *병목에 라임 웨지를 얹어 즐기는 독특한 음주 방식은 코로나를 멕시코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브랜드로 끌어올렸다.
* 인터넷에는 이것이 세균 번식과 벌레를 차단하려는 멕시코인들의 오래된 관습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행위의 유래에 대해 밝혀진 사실은 없다.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알려진 추측은 1981년 어느 외딴 레스토랑의 바텐더가 손님들과 코로나 맥주병에 레몬을 던져넣는 게임을 벌인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이다 (Martin Lindstrom, "Buyology - Truth and Lies About Why We Buy", p.88)
Corona Extra
글로벌 인기를 등에 업은 코로나는 올여름 하드 셀처 리모나다를 새롭게 출시했다. 미국은 현재 MZ세대 소비자를 중심으로 하드 셀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으며, 코로나 또한 새로운 소비자들과 접점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맛의 하드 셀처를 연일 선보이고 있다. 그런데 웬걸, 정작 제품을 사는 미국인들이 제품명조차 제대로 발음하는 법을 모르고 있다면 어떨까? 만약, 이 상황을 한국의 '김치' 문화에 대입해본다면? 김치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미국인들이 정작 김치를 '기무치'라고 알고 발음하고 있다면 어떨까?
Corona Hard Seltzer Limonada
브랜드가 탄생한 배경 문화는 브랜드 스토리와 철학, 가치, 경험의 뼈대가 되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인 마이바흐는 독일의 문화 부흥기인 '황금의 20년대(Goldene Zwanziger)'를 상징하는 브랜드이며, 애플은 미국인 특유의 개척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내는 브랜드로 평가받는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자동차나 스마트폰을 구매하는기 위한 목적 보다는, 그들이 가진 철학과 문화를 즐기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그렇기에 기업 또한 브랜드의 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사 고객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주류로서의 가치를 넘어 멕시코인들의 삶과 문화가 진하게 베여있는 코로나 맥주. 이번 코로나 USA의 유쾌한 캠페인은 기업에게는문화 마케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소비자에게는 어쩌면 대수롭지않게 여겨왔을 타문화를 향한 존중을 견지하는 유익한 이벤트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Editor 권세찬.
미국은 지금 하드 셀처 전성시대
미국에서 하드 셀처(Hard Sheltzer)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약 2년 전 2030 소비자의 주목을 받으면서부터다. 하드 셀처는 과일이 첨가된 알코올 탄산음료로서, 사탕수수로부터 나온 설탕이나 맥아를 발효 시켜 만든 알코올에 탄산과 과일추출물을 더해 제조한다. 오리지널 맥주 대비 칼로리는 절반 수준이면서 4~6%의 낮은 알코올 도수를 자랑한다는 점이 술을 마시면서 건강도 지키고 싶은(?) 신세대의 마음을 제대로 흔들었다는 분석이다. 실제 *2019년 미국 하드 셀처 판매액은 전년 대비 약 170% 증가한 47억 달러(한화 약 5조억 원)을 기록했는데, 같은 기간 맥주 판매액이 1% 증가한 것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성장세다.
* Michael O'Connor, "Big brewers pop top on new hard seltzers brands in 2020", S&P Global Market Intelligence (2020-02-05)
트렌드의 중심에는 2016년 마크 앤서니 블랜즈가 창업해 만든 화이트클로(White Claw)가 있다. 창업 이후 미국 하드 셀처 시장의 선두로 자리 잡은 화이트클로는 젊은 느낌의 라이프스타일을 마케팅 무기로 내세우며 신세대를 공략했다. 당시 일시적으로 재고 품귀 현상이 발생할 정도로 수요가 폭발했으며, 2019년엔 버드와이저의 매출을 뛰어넘을 정도로 성장했다. SNS에는 화이트클로 구매 인증샷이 유행처럼 번졌고, *인터넷엔 각종 밈이 떠돌았다.
*밈의 특성상 브랜드에 우호적인 콘텐츠만 생산되는 것은 아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white claw meme을 검색해보시길..
White Claw Hard Seltzer
자연스레 경쟁사들의 시장 진입이 이어졌다. 하드 셀처 시장의 기존 플레이어였던 트룰리 하드 셀처(Truly Hard Seltzer)가 판매 마케팅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고, AB Inbev는 자사 브랜드 이름을 붙인 '버드 라이트 셀처(Bud Light Seltzer)를 출시했다. 쿠어스 맥주를 소유한 몰슨 쿠어스 또한 2020년 Vizzy Hard Seltzer를 선보였다. 코로나는 지난 2020년 세 가지 맛의 하드 셀처(Corona Hard Seltzer)를 처음 선보인 데 이어, 올여름 코로나 하드 셀처 리모나다를 새롭게 출시했다.
일각에서는 하드 셀처의 인기가 (마치 한국에서의 '과일 소주' 처럼) 일시적인 유행에 그칠 것이라 바라보고 있지만, 당분간 글로벌 시장은 현재와 같은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신제품 출시 만큼이나 치열해질 기업들의 마케팅 전쟁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