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들여 만든 첫 서비스를 포기하자고 내부적으로 최종 결론지었다. 피벗 없이 기능을 수정하고 개선해 나가도 될 일이었겠지만 프로덕트가 무거웠기에 작은 수정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우리의 실수였다). 그리고 회사는 그 시간을 버틸 만큼 안정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VC 관계자분들을 종종 만나러 다니기도 했지만 확실한 성과가 없었기에 지난한 대화만 오고 갈 뿐이었다.
투입된 비용과 시간이 아까웠지만 빠르게 다음 서비스로 넘어가는 것이 중요했다. 농산물 유통 시장의 혁신이라는 목표는 달라질 게 없었기에 우리는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시장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다양한 상인분들과 대화를 했다. 대부분 내게 시장에서 일하는 어려움을 토로하셨지만 그 이야기를 통해 상인 분들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기에 항상 귀 기울여 들었다.
그중 가장 주목했던, 그리고 가장 많은 분들이 얘기했던 어려움은 바로 "신규 거래처 확보"였다. 도매시장이 야채 경매는 보통 밤 9~10시부터, 과일은 새벽 1~2시부터 시작되어 해가 뜰 때까지 이어지기에, 낮 시간대에는 대부분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상인들에게 새로운 거래처를 뚫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매장 운영은 매니저에게 맡기고 낮에는 거래처 미팅과 영업을 다니는 사장님들도 계셨지만, 그 역시 쉽지 않았다. 전국 도매시장은 농안법과 공익 추구의 구속력 안에서 경쟁력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어려움은 도매시장에서 거래처를 찾고자 하는 소매상들도 마찬가지였다. 시장에서 오랫동안 거래할 거래처를 찾으려면 한두 번 거래해서는 불가능하다. 최소 수개월 거래를 통해 내게 필요한 품질의 물량을 제때 납품해 줄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생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도매시장 상인들이 더 많은 거래처를 찾을 수 있도록 돕고, 거래 당사자들 간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고자 새로운 서비스들을 기획했다. 하나는 도매시장 청과법인들의 정보를 등록하여 노출하는 '온라인 전단지'였고, 다른 하나는 도매시장의 상인들만 사용할 수 있는 폐쇄형 도매시장 커뮤니티였다(이름은 '도매톡'으로 지었다).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도매상인들의 회원 가입을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판로 개척을 지원할 계획이었다.
첫 프로덕트의 실패를 교훈 삼아 이번엔 매우 매우 가볍게, 최소한의 기능만 넣어 3~4주 만에 MVP를 출시했다. 그리곤 서울 경기권 도매시장 약 1천여 곳의 도매 점포에 영업을 다니며 전단지를 돌렸다.
워낙 간단하게 만든 제품이라 UX, 에러, 디자인 등 모든 게 별로였다. 하지만 전단지를 받아본 상인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영업을 다니며 욕도 많이 먹었지만 꽤나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였고, 어떤 사장님은 젊은 사람들이 고생한다며 20분 간 나를 앉혀놓고 버섯의 유통 생리에 대해 설명해주시기도 했다(?)
아침이 되면 도매시장은 잠에 든다
우리는 4~5명의 상인들을 따로 모셔 추가적인 사용자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제품 개발에 돌입했다. 첫 실패의 교훈을 토대로 빠르게 결정하고 린하게 움직였기에 마음도 한결 가벼웠다.
그즈음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최종 선정되는 기쁜 소식도 있었다. 꾸역꾸역 1년을 버티고 나니, 이제는 좋은 일들만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