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 아이템을 선정하기 전 고려했으면 하는 두 가지
직장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창업을 하고 싶은데 아이템이 없다’는 얘기를 합니다. 창업을 할 마음은 있는데 아이템이 없어서 창업을 못하겠다는 건데요, 아이템을 선정하는 것은 장사를 시작하는 단초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첫 번째 가게와 두 번째 가게를 추진하기 시작한 계기는 아이템의 발견이었으니까요.
저는 첫 번째 가게로 동네의 파리바게트 지점을 양수받아 시작했습니다. 이모께서 인테리어 한 지 14년이 지나 다 낡은 파리바게트가 아주 저렴한 가격에 나와 있으니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신 거예요. 1년 간 양수인을 찾았는데 없었고, 2주 안에 양수받을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그대로 건물주와의 계약 기간이 끝나 폐업을 할 예정인 그런 가게였어요. 이모의 제안이 아니었다면 장사는 시작해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텐데. 아이템을 발견한 저는 서울 신용보증재단에 달려가 대출도 받고, 인테리어를 새로 할 돈은 없으니 페인트 칠하고 조명만 바꿔서 신나게 영업을 시작합니다. 이게 저의 첫 장사였어요.
그렇게 파리바게트를 운영하다 보니 아이템에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합니다. 첫 번째로 제조기사님이 빵을 만들어주시다 보니 제 임무는 판매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게 너무 보람도 없고 재미도 없는 겁니다. 이거 내 일 같지가 않다, 남은 인생 동안 판매만 한다고 생각하면 숨 막힌다, 여기서 매장 운영 관리하는 법만 배우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두 번째는 본사의 원칙이 당일 생산 당일 판매라 매일 밤 빵이 남았어요. 아르바이트생들 나눠주고, 주변 상인분들 나눠주고, 지인들 나눠줘도 끝이 없는 폐기 빵들. 음식을 기부받아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푸드뱅크에 기부를 했더니 글쎄, 2019년 기부금 영수증에 찍힌 금액이 무려 2200만 원이었어요. 이게 다 내 돈인데. 옆 가게 배스킨라빈스 사장님께 고민을 털어놨더니 사장님께서 아이스크림은 버리는 게 없다고 자랑하시는 거예요. 대부분의 식품은 유통기한이 있지만 없는 식품도 존재합니다. 와인, 꿀, 특정 양념들, 그리고 아이스크림. 두 번째 아이템의 발견이었습니다. 그날로 저는 이 상권, 저 상권 아이스크림 가게를 할 자리를 찾아 들쑤시고 다녔지요.
아이템을 잘 발견해서 저는 여기까지 왔습니다만 어쩔 때는 등골이 서늘해질 때가 있어요. 직접 운영을 해보니 더욱 아이템 선정은 장사의 승패를 판가름하는 게 와닿거든요. 와, 내가 그때 다른 걸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 코로나 시국에 일찌감치 그동안 모아둔 돈 다 날리고, 없는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을 겁니다. 혹시 지금 생각하고 있는 당신의 창업 아이템이 있다면 어떤지 한 번 생각해보세요. 직접 장사를 해보니 좋은 아이템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특성이 고려되어야 하더군요. 좋은 아이템의 이런 장점들이 없다면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도 구상해보아야 합니다.
당신이 지금 생각하는 아이템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잘하는 것일 수도 있고, 유행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셋 다 해당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아마 누구나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유행하는 것(혹은 유행할 것)에서 창업 아이템을 찾습니다. 그러고 나서 돈 벌어서 차도 바꾸고, 아파트도 마련하고 하는 청사진을 꿈꾸지요. 그런데 차도 바꾸고, 아파트도 마련하려면 일단 돈을 많이 벌어야 하잖아요. 돈을 많이 벌려면 매출이 높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매출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매출의 구성요소를 높이면 되겠죠. 매출을 구성하는 것은 고객 수와 객단가입니다. 그렇습니다. 차도 바꾸고, 아파트도 마련하려면 고객 수가 많고, 객단가가 높은 장사를 하면 되는 겁니다. 여기 첫 번째 고려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객단가지요. 객단가가 높은 장사를 해야 돈을 벌 확률이 높아집니다.
왜 고객 수는 무시하냐고요? 무시하는 게 아니라 고객 수 늘리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직접 가게를 열고 손님을 기다려보면 깨닫게 되실 겁니다. 새로운 고객이 우리 가게로 오게 하여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게 쉬울까요, 아니면 이미 방문한 고객에게 사이드 메뉴를 팔아서 추가 구매하도록 만드는 게 쉬울까요? 답은 이미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고객 수를 늘리는 것은 당신의 노력과 역량과 운 때의 삼 박자가 맞아 들어가야 하는 것이고, 일단 객단가라도 높은 장사를 해야 성공 확률이 올라가는 겁니다. 고객 수 늘리기는 그다음 영역이에요. 7,000원짜리 국밥을, 1,000원짜리 꽈배기를 하루에 수 천 그릇, 수 천 개씩 팔면 좋으련만 모종의 행운이 작용하지 않는 이상 이제 막 개업한 가게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박리다매라는 말도 있지요. 박리한 물건을 팔면 이익도 박리라는 게 특이한 케이스를 제외한 평범한 사장님들의 중론이더군요.
1,000원짜리 단팥빵 25개 팔기와 25,000원짜리 케이크 하나 팔기를 비교해보세요. 파리바게트 운영할 때 새 학기가 되면 근처 학교의 선생님들이 전화로 단팥빵을 주문하곤 하셨죠. 요즘엔 반마다 학생수도 적어서 30개 안 되는 단팥빵 주문하시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어요. 그럼 며칠 전부터 발주 내용을 몇 번씩 확인하고, 당일엔 일찍 출근해서 미리 포장을 하고, 늦지 않게 챙겨서 학교에 도착하면 수위 아저씨께 신분증을 맡기고 계단으로 교무실까지 올려다 드려야 25개를 팔았습니다. 혹시 잊어버릴까, 늦을까 스트레스에 시간과 기름값을 추가로 들여야 팔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매장에서 팔면 되지 않냐고요? 매장 하루 단팥빵 생산량은 선주문이 없으면 20개였습니다. 그마저도 남을 때가 종종 있었죠. 하지만 케이크는 하나만 팔아도 단팥빵 매출을 따라잡습니다. 저희 매장은 케이크를 하루에 평균적으로 20-35개 정도를 팔았는데, 어떤 때는 하루에 팔린 빵 매출을 다 합쳐도 케이크 매출에 못 미쳤어요. 빵 종류만 100가지가 넘었는데도요. 요식업의 끝은 소고기 장사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나가는 돈이 많더라도 일단 들어오는 돈이 많아야 장사를 계속할 동력이 생깁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에 소고기 구이집을 여러 개 가지고 계신 회장님이 사시는데 어떤 날은 노란색 람보르기니를 끌고 나가시고, 어떤 날은 보라색 롤스로이스를 끌고 나가십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도 본래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이 동네에 있는 매장을 관리할 때 잠시 들리는 곳이라고 하네요. 소고기 100만 원어치 팔기와 김밥 100만 원어치 팔기, 어떤 게 쉬운지 비교 안 해도 되겠죠?
지금 만지작 거리고 계신 아이템이 객단가가 낮아 실망하셨을 수 있어요. 하지만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저는 한 컵에 5,000원짜리 젤라토를 팔고 있습니다. 비싸다고 하시는 고객님도 있고, 싸다고 하시는 고객님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저는 5,000원인 젤라토 컵을 팔아서 월세도 내고, 직원들 월급도 주고 해야 합니다. 오픈도 하기 전에 이건 많이 어려운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컵보다 비싼 포장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컵에 비해서 가성비가 좋게 느낄 수 있도록 가격을 설정하고, 인스타그램에 의도적으로 포장 사진을 올리고, 포장은 쿠폰 도장도 더 팍팍 찍어주고, 리본도 묶어보고, 생일 초도 동봉하고. 그 결과 컵 판매량도 많지만, 제 가게의 이익은 대부분 포장에서 나옵니다. 컵에 비해 매출이익률이 훨씬 떨어지는데도요. 각자의 아이템에 맞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사이드 메뉴도 팔고, 세트 메뉴도 팔고, 어울리는 다른 제품을 큐레이팅 하고. 어쨌든 객단가가 높은 걸 파세요. 객단가가 높지 않은 아이템을 고민하고 계신다면 재고해보세요. 업셀링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그래야 돈 벌 확률이 올라갑니다.
객단가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그다음으로 고려해보아야 할 요소는 제가 과거에 단골 화장품 가게 사장님과 나눴던 대화에서 출발합니다. 제가 자주 가는 아리따움 지점이 있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사장님이 제 멤버십 적립 번호도 외우고 계셨어요. 그런 가게에 어느 날 아주 오랜만에 화장솜을 사러 갔더니 사장님이 아무리 여름이라도 얼굴이라도 보자며 자주자주 오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여름이면 손님들이 안 오나요?”하니까 화장품 가게는 여름이 비수기라는 겁니다. 건조한 겨울이 성수기래요. 사소한 일일 수도 있지만 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화장품에 성수기, 비수기가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이게 학교에서 배운 계절성이라는 거구나. 계절성이 없는 제품과 서비스는 없다고 배웠지만 그때서야 교과서 속 지식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계절성은 기후·휴일·휴가 등의 변화 결과로써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기업이나 경제활동의 변동 현상을 말한다고 합니다. 계절뿐만 아니라 휴일, 휴가에 따른 변동도 계절성이라네요. 백화점 직원인 제 남편은 주말에 출근하고 평일에 휴무를 갖습니다. 백화점은 주말이 잘 되니까요. 많은 자영업자들은 명절 전후나 가정의 달 5월에는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사람들이 지출이 많아서 장사가 안되거든요. 이것도 계절성입니다. 내 아이템도 직접 해보지 않아서 모를 수 있습니다만 분명 계절성이 있습니다. 커피를 주력으로 하는 카페와 디저트를 주력으로 하는 카페의 성수기는 같을까요? 다릅니다. 커피를 주력으로 하는 카페는 사람들이 차가운 음료와 에어컨이 있는 시원한 공간을 찾아 방문하는 여름이 성수기입니다만, 디저트를 주력으로 하는 카페는 비수기예요. 여름에 입맛도 없는데 텁텁하고 단 디저트를 찾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제가 파는 젤라토의 성수기를 맞추기는 너무 쉽습니다. 당연하게도 젤라토의 계절은 여름이죠. 크게는 동일한 품목을 판매하는 배스킨라빈스도 여름이 성수기입니다. 그래서 배스킨라빈스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라는 엄청난 발명을 합니다. 덕분에 매년 배스킨라빈스의 최고 매출은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입니다. 제가 아까 포장에 주력했다고 했잖아요. 그 이유는 여기에도 있습니다. 배달어플이 있다면 한겨울에 집에서 젤라토를 먹을 수 있지요. 겨울에는 매장 방문객이 많이 줄어드는 게 사실이지만 배달 덕분에 계절성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작년 동안 배달 최고 매출을 찍은 날은 여름이 아닌 12월 31일, 2020년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성탄절에 케이크를 실컷 드시고 곧 이은 31일에는 시원하게 젤라토를 드신 게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장사를 하시기 전엔 본인의 아이템의 계절성을 꼭 파악하시고, 비수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놓으셔야 합니다.
계절성과 관련하여 기술적인 조언 하나 더. 새 가게를 개업할 시기로는 비수기 끝물, 혹은 성수기 직전을 추천드립니다. 우선, 비수기 도중에 오픈하면 일명, 오픈 빨을 못 받습니다. 행인들이 새로 생긴 가게가 궁금해서 찾고, 지인들이 축하하러 찾아서 가게 개업 초반에 매출이 높은 것을 오픈빨이라고 하는데, 오픈 빨을 못 받으면 사람들한테 장사 안 되는 가게로 낙인이 찍힙니다. 사람들의 인식을 뒤집고 장사 잘되는 가게로 거듭나는 게 웬만한 노력으로는 쉽지 않아요. 오픈 빨을 이용 하세요. 장사가 안되면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초심도 희미해지고 가게의 매출은 악화일로를 걷게 돼요. 성수기를 맞아 의지를 불태워야 할 시기에 불태울 의지가 없는 상황이 됩니다. 오픈하느라 예산을 다 써서 비수기를 버틸 자금이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고요. 오픈 시기를 잘 조정하면 보다 쉽게 매출이 오를 수 있습니다. 성수기가 아닌 성수기 전을 추천하는 이유는 오픈 직후 어수선한 시기에 손님을 많이 받아 실망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보다는 천천히 능력치를 키워가며 성수기를 길게 끌고 가 사람들에게 ‘저긴 장사가 잘되는 가게’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저는 제 젤라토 가게의 송파점을 2월 말, 청담점을 4월 초에 오픈했습니다. 가게를 오픈하기 전에는 한 시가 급하게 느껴집니다. 오픈만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을 것 같아서 지금 못 벌고 있는 듯한 돈이 아깝고, 오픈 준비하느라 현재의 소득이 없어서 마음이 급해지곤 합니다. 저도 다 겪어본 상황이라 이러한 마음이 드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상황을 길게 보세요. 잠깐의 인내로 성공 확률이 높은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길게 봐서 오픈 시기를 쫓기듯이 결정하지 말고 전략적으로 결정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본 글은 서울신용보증재단에서 예비창업자를 대상으로 한 강의에 기초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