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갬성장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도 Jan 07. 2023

비극에 대하여

어린 , 비극이라고 하면 어느  갑자기 닥친 불행, 예상치 못하게 벌어진 슬픈 일을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없는 의사의 불치병 선고 같은 것들.  아무리 부유한 인간이더라도,  아무리 고결한 인간이더라도 죽음은 모두에게 찾아온다. 권선징악과도 무관하다.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고 늦게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조주빈이라고 일찍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안와르 콩고에게 일찍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이태석 신부에게 늦게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지점에서 항상 공포를 느꼈다. 랜덤, 무작위성이 벌어지는 것이야 말로 비극이다. '어느  갑자기' 나에게 비극은 대표되었다. '살인의 추억' 나오는 살인마는 나무 위에 앉아서  갈래길로 멀어지는  여자  어떤 여자를 살해할지 고른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사이코패스, 안톤 쉬거도 동전을 던져 사람을 죽일지 말지 결정한다. 거기에 이유나 서사 같은 이 자리할 곳은 없다. 순수한 악은 항상 자연재해와 같은 무작위성을 은유한다.


예상할 수 있는 것, 알고 있는 것은 놀랍지도,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다. 저녁에 해둔 카레를 다음 날 아침에 또 먹는 것은 감흥이 없지만 오랜만에 친구와 갑자기 만나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면 기쁘다. 그리하여 친구와 고심해서 식사 메뉴를 골랐는데 맛없으면 돈 아깝고 짜증 난다. 전 날 해둔 카레를 오늘 저녁에도 데워 먹으면 그럴 일이 없었겠지만 말이다. 또 카레를 먹으면 지겹지 않냐고? 지겨운 감정도 언젠가는 카레가 아닌 다른 걸 먹어야 하기 때문에 지겨운 것이다. 인간이 삼시세끼 카레를 먹는 동물이라면 지겹지도 않다. 우리가 화장실에 가는 게 지겹지 않은 것처럼. 예상치 못한 기쁜 일의 대명사로는 로또가 있는데 제 아무리 로또라도 35살에 로또가 당첨되기로 약속되어 있다면 35살에 로또에 당첨이 되어도 기쁠 것 같지 않다. '원래 그런 것' 따위는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노력해도 무용해지는 것들이 많아지며 비극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시나브로 망가지고 뒤틀려져서 어디부터 바로잡아야 할지도 모르는 비극도 있는 것이다. 누구의 잘못이라 꼭 집어 얘기할 수 없이 함께 있을수록 지리멸렬 해지는 관계들, 허망하게 날려버린 시간들, 할 수 있었으나 용기 내지 못했던 기회 같은 것들. 비극 중 가장 유명한 셰익스피어 비극의 각 등장인물들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사건에 얽히고 심연에 빠져든다. 각각의 인물들은 본인의 방식대로 노력하지만 그 방향은 애초에 어긋나서 오히려 그 노력이 비극을 가속화시킨다. 내가 지난날 동안 무서워했던 것은 '어느 날 갑자기'였는데 진정한 비극은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에 비하면 '어느 날 갑자기'는 납작한 고통이다. 바로잡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나, 벌어지고 있는데 알아채지 못한 나를 탓하는 것. 영영 지난한 비극에 빠지는 길이다.


나는 '어느 날 갑자기'만 두려워하다가 문득, 내 20대가 후자의 비극이 되어버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결단력도 없고, 노력도 없고, 행운도 없어서 나도 모르게 망가진 나의 인생. 뭘 하고 싶은지 몰라서 핑계만 대는 젊음.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과대평가하느라 벌어져버린 현실과의 괴리. 학점도 안 좋았고, 인간관계는 더 엉망이었고, 재밌는 것도 없었고, 이것저것 기웃거리다가 대충 포기해버리는 식으로 시간을 죽였다.


그래서 시간을 한 방에 만회한답시고 호기롭게 자격증 시험에 덤빈 건데 살던 대로 살던 나는 당연하게도 연이어 낙방했다. 여러 해에 걸친 좌식생활은 육체와 정신을 양 쪽으로 슬금슬금 좀먹다가, 결국 추간판 탈출증, 일명 허리 디스크 증세를 일으켰다. 다리를 질질 끌고 동네 독서실에서 귀가한 뒤 나는 한 달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병원도 사설 구급차와 들것에 실려서 갔다.


자리보전하며 밥도 누워서 먹고, 화장실도 기어서 가는 생활이 지속되자 더 이상 앉아서 하는 건 공부든, 일이든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썩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평생에 걸쳐서 해온 건 공부뿐인데. 갑작스레 나에게서 떨어져 나간 건강과 묵시적 근미래에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할지도 결정을 못해서 갈팡질팡했다. 지지부진하게 살아온 대로 느끼는 감정도 선연하지 못했다. 어느새 비극에 침잠해버린 나의 시간만 돌아보며 서글퍼할 줄만 알았다.


얼레벌레 겨우 시작한 첫 장사에서도 1년도 안되어 건물주와 소송을 하게 되면서 내 인생 너무 기구한 거 아닌가, 내 팔자 너무 사나운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확신이 들었다. 법원을 나설 때면 지난 시간들에 짓눌려 발걸음이 느려지곤 했다. 나는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구나. 인생을 바로 잡을 수 있었던 지점들을 되새김질하면서 걸었다. 더 슬픈 건 이 마음가짐으로 다시 돌아가서 살게 되어도 나라는 인간은 또 똑같이 살 것이다. 절치부심 같은 건 내 사전에 없었다.


돌아갈 곳이 없어 새롭게 젤라토 장사를 준비하면서도 평생을 쫓아다닌 '안될 거 같다.'는 느낌이 진덕 지게 들러붙었다. 주변 사람들의 의문에는 동화되었다. '왜 이렇게 구석진 곳에?' '아이스크림이 잘 되겠어?' 걱정하느라고 하는 말들이었지만 당시의 나는 너무나 위태로워서 가식적인 믿음이라도 간절했던 것 같다. 나에게 필요한 건 진심이 담긴 의문보다도 영혼 없는 응원이었다.




가게를 3개나 운영하고, 인터뷰를 하고, 강의를 하고 그러다가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면 언제 내 인생이 손바닥 뒤집 듯이 뒤집어졌는지 모르겠다. 가랑비에 옷 젖는 듯 찾아온 비극이 흔적도 없이 말라버렸다. 첫 가게가 망하고 두 번째 가게를 준비할 때만 해도 인생이 또 망했다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나는 재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믿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이 나서서 '너는 참 인복이 좋구나.', '너는 정말 운이 좋구나.'라고 해준다. 나는 정말로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인데. 하다못해 팀플을 해도 망하고, 아르바이트를 해도 진창이었는데. 내가 복이 많은 사람인가? "파리바게트를 그때 그만두다니 요즘 불매 운동이 한창인데 넌 참 운이 좋구나!" 소송으로 고통받고 폐업할 때는 세상에서 제일 불운한 사람이 나인 것 같았는데, 이젠 비극도 비극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나의 젊음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간다.


장사를 하면서 점점 더 인생은 미스터리에 휩쓸려 갔지만, 확실해진 것은 내가 내린 비극의 정의가 계속 모습을 바꾼 것처럼 영원한 비극도, 영원한 희극도 없다는 것, 앞으로도 계속 인생이 미지의 영역에서 버티고 있을 것이란 것이다. 이제는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좋다, 나쁘다고 명확하게 얘기할 수도 없게 되었다.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베의 왕이 된 것이 좋은 일이었던가. 우리는 모두 그 일이 종국에는 비극이라는 걸 알고 있다. 도도를 운영하면서는 좋은 일들이 많았으니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일들이 일어날까.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럼 좋은 일이 지나가고 나쁜 일이 일어날 차례일까. 그것 역시 알 수 없다. 또다시 나도 모르게 비극이 성큼 다가와 있을지도 모르고, 이대로 평화롭게 나이 들어갈지도 모르고, 갑작스레 횡재할지도 모르고. 다만, '절대'라는 것은 없다는 것만 확신할 수 있다.


세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일이 일어나기 위해 존재한다. 기록적인 폭우, 세계 신기록 같은 것들. 너무 조악한 비유이지만 어린 시절 나는 H.O.T 콘서트 때문에 전국이 휴교하고 학생들이 실신하는 뉴스를 보면서 H.O.T 보다 더 인기 많은 아이돌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동방신기가 나왔다. 일본에서 가장 큰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는 동방신기를 보면서 동방신기야 말로 아이돌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동방신기가 무색하게도 방탄소년단이 나왔다. 방탄소년단보다 더 인기 많은 아이돌이 나올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반드시 나온다거나, 절대 안 나온다는 것만 불가능하다. 내가 학창 시절에 좋아하던 아이돌들이 스러져도 건재한, 오히려 최고가를 경신하는 sm 엔터테인먼트의 주가를 보면서 생각했다.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없구나. 세상만사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건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언젠가는 일어날지도 모르도록 되어있다.


그래서 이제는 비극을 구분하는 버릇은 포기했다. '예상한 것', '예상치 못한 것', '어느 날 갑자기', '나도 모르게 어느새'가 얽히고설켜서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구나, 하기 때문이다. 언제고 근래의 평화로운 일상이 내 뒤통수를 칠지도 모르겠다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럼 변방의 노인처럼 놀랄 일도 없겠지. 비극을 감정해낼 통찰력은 없으니 통찰도 그만두고, 시야를 확 좁혀 지금만 살기로 한다. 지금 신나는 일, 지금 만나고 싶은 사람, 지금 먹고 싶은 음식. 그런 것들. 그런 것들을 찾아 지금을 덜 비장하게 살자는 게 나의 지상 최대 목표이다. 나는 매일 성경이나 신화 따위에 내 인생을 빗대고 재어보며 너무 비장하게 살았다. 사소한 실패에도 내 인생이 정상궤도에서 이탈할까 너무 벌벌 떨었다. 새해가 되어 또 한 살 먹고 돌아보면 내 사춘기의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이제야 마무리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나란 사람은 역시 남들보다 똑똑한 척은 다하면서 늦되다. 신예하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인생은 인간이 스스로의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외에는 의미가 없다고들 한다. 의미가 없다면 기실 어떻게 되어버려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이젠 그걸 알았으니 내 인생이 세상의 서사인 것처럼 여기면서 비극으로 몰아넣는 일도 그만하자. 그리고 산뜻하고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새해를 맞이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ADHD를 앓고 있는 사장들을 위한 지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