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살에 ADHD 진단을 받았다. 앞서 나의 두 여동생들이 ADHD 진단을 받고 난 후의 일이었다. 내가 조금 부족한 구석이 많긴 하지만 ADHD는 아닌데. 동생이 나에게 처음 검사를 권유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더구나 서울 유수의 대학 및 대학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둘째가 ADHD라는 데에 의구심을 갖고 있던 터였다. 네가 ADHD면 세상 사람들이 다 ADHD겠다! 그러나 나는 지난한 검사 끝에 결국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ADHD가 맞다는 말을 듣고야 말았다.
돌아보면 처음 젤라토를 배우게 된 순간부터 상당히 ADHD 스럽다. 자주 가던 단골 젤라토 집 사장님께서 어느 날, 다음 달에 폐업할 예정이니 그전까지 자주 오라고 하시는 거다.
“어머, 왜 그만두세요?”
“만드는 건 적성에 맞는데 파는 건 적성에 안 맞아요.”
“너무 맛있는데. 파는 건 제가 팔면 좋겠네요.”
라고 내 입에서 나오는 순간, 겉잡을 수 없이 내가 배워야만 한다는 일념에 휩싸였고, 당시 운영하던 가게는 평생 할 일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기에 이건 신이 주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장한 젤라토를 들고 차에 타면서부터 젤라토에 대한 생각만 했다. 집에 와서도 자기 전까지 계속 가족들에게 젤라토에 대한 얘기만 했다. 다음 날 그 젤라토 가게가 오픈하자마자 달려갔다.
“사장님, 저 젤라토 만드는 것 좀 가르쳐주세요.”
얼마 전 안 사실인데 당시 9년을 교제한 남자 친구이자 현재 남편은 9년을 봐도 이 인간은 정말 이상한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단다. 나는 남편의 말을 듣기 전까지 이 사건이 특이하다거나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남편은 주변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에피소드라는 듯이 이 일을 얘기했고 주변 사람들은 굉장히 재미있어했지만 난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나에게는 그저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자듯 당연한 흐름이었다.
ADHD는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 장애를 의미한다. 내가 겪어본 바로는 주의력이 결핍되었다기보다는 주의력을 컨트롤할 수가 없다. 중요하고 해야만 하는 일임에도 집중을 못하고, 한 번 꽂히는 게 생기면 지나치게 몰입한다. 내가 가족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도 “그 얘기 그만해.”이다. 나는 한 가지 생각에 몰입하면 그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덕분에 ADHD인 사람은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한하여 추진력이 매우 매우 좋다. 또한 과몰입이 심하기 때문에 꽂히면 끝장을 보고, 계속 한 가지 생각만 하다 보니 창의적인 해결법을 낼 때도 많다. 하지만 이런 장점만 있다면 병증이 아닐 것이다. ADHD는 일상생활을 구조화시키지 못해서 고통을 받는 병이다. 때문에 나는 내가 못하는 건 타인의 도움을 받고, 장점을 발화시키는 방식으로 극복한다.
우선, ADHD 사장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유능하고 조직적인 직원들이다. 나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잘 잊고 잘 실수하는 사람이라서 mbti로 말하면 끝이 j, 그것도 대문자 J로 끝나는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들은 내가 평생에 걸쳐 갈망해온 ‘일상생활 구조화’가 숨 쉬듯 자연스러운 사람들이다. 직원들과 함께 정리 정돈하고 루틴을 만들고 메모를 하다 보면 시작조차 못하겠던 일이 그런대로 할만해진다. 심지어 나중에는 직원들이 적응한다. 예를 들면 “어, 내 핸드폰 또 어디 갔지?”하면 “사장님 핸드폰 포스기 옆에 있어요.” 이런 식이다. 혹은 “나 청담 갔다 올게요.”하면 “샤인 머스캣 챙겼어?” 이런 식.
또한 유료 서비스를 돈 아끼지 말고 이용해줘야 한다. 주기적으로 유리창 청소를 대행해주는 업체, 세무사, 노무사, 경비보안업체, 방역업체, 전기 검진 업체, 심지어 유통기한이나 직원들의 보건증을 체크하는 식품위생안전서비스까지 월 계약을 맺고 이용하고 있다. 고정비는 크지만 내가 못하는 걸 내가 하려고 하다가 더 큰일이 벌어지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사실 노무사의 인력관리 서비스는 최근 들어 받기 시작했는데 직원들 4대 보험이나 급여를 신고한 내용이 꼬이면서 일주일에 하루 쉬는 월요일마다 건강보험공단이니, 근로복지공단이니, 세무서니, 구청이니 하는 곳을 돌아가면서 방문해도 일이 해결이 안 됐다. 고민 끝에 가까운 노무사 사무실에 연락을 드렸더니 일주일 만에 모든 것이 정리가 되었고, 안락해졌다. 남들이 손쉽게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나는 못하는 걸 인정해야 편해진다.
다음으로는 ADHD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자. 정신과 전문의, 심리상담사, 약사, 운동전문가가 당신을 도와줄 수 있다. 물론 끈기라고는 없어서 지속되지는 않더라도 계속 병원을 찾고 약을 먹으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당신이 얼마나 약 먹기를 못하는 인간인지 잘 안다. 나는 아파서 병원을 찾았다가 큰 병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으면 어차피 끝까지 안 먹을 걸 알기 때문에 병원에서 처방전만 받고 약국에 들리지도 않는 사람이다. ADHD 약이라고 꾸준히 먹을까. 그러나 의사 선생님께 매번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냐고 혼이 나더라도 약을 먹으면 문제가 상당 부분 개선되고 기분이 나아지므로 꾸준히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보자.
마지막으로는 과몰입을 할 때 강하게 추진하고, 지겹지 않도록 새로운 걸 계속 시도하기를 추천한다. 도도를 개업하고 첫 1년은 ‘요주의 젤라토’라는 작업을 했는데 매주 새로운 메뉴를 만들고 소개하는 일이었다. 일 년 동안 계절마다 나는 작물을 한 번씩 다뤄보면 실력이 많이 늘 것이라는 취지에서 한 것이었지만 ADHD 환자들은 좋아하는 것 혹은 데드라인에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라 여러모로 매우 효과적이었다. 메뉴를 완성하고 소개한 당일만 신날 뿐, 일주일 내내 메뉴 고민과 레시피에 스트레스가 심하긴 했다. 그래도 매주 새로운 걸 한다는 재미가 더 컸다. 계절과 시점에 맞는 재료에 대한 기대감과, 원하는 맛이 나올 때까지의 긴장감이란! 참고로 ADHD는 계속해서 새로운 자극을 찾아다니는 습성이 있다. 다른 사람이나 브랜드랑 같이 일하려고 하고, 강의하고 글 쓰는 것도 새로운 일에서 에너지를 얻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자꾸 시도하는 것이다.
못하겠으면 잘하는 거 하자! 어린 시절 친구들의 꿈은 상당수가 선생님과 경찰관이었고,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꿈은 꿔보지 않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퇴근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일은 이미 못할 걸 잘 알았다. 크면서도 친구들은 계속해서 안정적인 공무원, 군인, 은행원과 같은 꿈을 꿨지만 나는 같은 이유로 꿈꿔본 적이 없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루틴이다. 나는 잠들고, 기상하고, 씻고, 정리하고 그런 일조차 한참을 결심하고 괴로워해야 이룰 수 있는 인간이다. 심지어는 먹는 것도 귀찮아서 대개 몰아서 먹는다. 그런 내가 그나마 사회생활이라는 걸 할 수 있다면 자영업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 행동에 내가 책임을 지면 된다. 일과 일상의 경계가 모호하지만 내가 결정할 수 있다. 어떤 날은 출근을 안 하고, 어떤 날은 새벽 4시 넘어서까지 가게 일을 해도 누가 뭐라고 할까.
그리고 위대한 ADHD도 많다. 위인이나 역사에 남을 기업가들이 ADHD로 추측된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가 ADHD 검사를 받았다는 근거는 없지만 나는 그들이 진정 나와 같은 질병을 앓았을 것으로 확신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만 있다면 ADHD인들은 일과 본인을 일체화시키고 성공을 구체적으로 망상하며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가진 유무형의 자산까지 투자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향해 분투하다 보면 사실은 내가 유능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희망에 찬다.
나는 ADHD에 대해 희망적인 얘기만 하고 싶다. 이미 지나온 길은 스스로를 너무나 미워했고 다시 태어나고 싶어 했고 인생은 버티는 것이라 생각하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나의 고통에 이름이 붙는 순간 나는 이것을 조절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주의력이 좀 부족하고 충동성이 있는 게 뭐 그리 힘드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매일 남들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에도 집중을 해야 할 수 있고, 사회적인 약속을 어겨 신용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수면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을 책임지느라 허덕이고, 자잘하지만 끊임없이 실수를 저지른다면 그 누구라도 자기혐오와 우울증을 겪을 것이다. 공항에 여권을 두고 온다던가, 급하게 꼭 토익점수가 필요한데 토익시험 접수를 하는 걸 까먹었다던가, 중요한 시험에 늦잠 자서 응시를 못한다던가, 매일 타는 지하철을 잘못 타서 20분 만에 갈 거리를 두 시간 만에 간다던가, 친구와 약속에 이미 늦었는데 너무도 네일아트가 받고 싶어서(나도 그러면 안 되는 거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튀어나간다.) 받으러 간다던가 하는 일들이 하루 걸러 일어난다고 생각해보자. 끈기, 꾸준함, 집중, 차분함, 계획, 신용, 약속, 일상…이런 단어들과 거리가 먼 사람은 이번 생은 망했다고 여기며 꾸역꾸역 인생 버티기에 이른다. 삶을 즐겁고 주체적인 것이라 느껴본 적이 드물다. 인생은 고통이고, 살아내는 것이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5년 전에 써놓은 영화 감상문에도 비슷한 말이 써져 있어 깜짝 놀랐다.
‘인간은 마음만 먹으면 인생을 전가의 보도처럼 마구 휘두를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할 때도 있지만, 역시 인생은 마치 집채 같은 쓰나미에 몸을 맡기고 감내하는 과정인 것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인생을 '살아낸다'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영화에서는 죽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표현했다. 그렇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인생을 살아낸다. 혹은 죽어가는 과정에 있다. 그뿐이다.’
지금도 여전히 매일 생활하는 게 질기고, 겨우겨우 넘어가는 하루하루지만 크게 보면 우상향 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믿고 싶다. 나는 나에게 가장 궁금한 특징이 그거였다. 왜 열정은 많은데 에너지가 없는 건지. 내 열정은 가짜 열정인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 있었다. 그러나 열정은 충동성의 또 다른 이름이었고, 에너지 부족은 주의력 결핍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고 하면 이해가 된다.
나와 둘째는 한국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나이가 서른 먹은 성인이 될 때까지 그 누구도 우리의 병증을 의심하지 못했다. 어딘가 남들보다 부족하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만 알았다. 정리를 못하고, 부산스럽고, 수업에 집중을 못하고, 시간 약속이나 과제를 챙기지 못하고 등. 내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수업 시간에 졸음을 참지 못해서 하교 직전까지 자다가 겨우 하교하거나, 수행평가 과제물을 분명 집에서 챙겼는데 가방을 열면 없어서 엄마한테 전화하거나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과장이 아니라 내 학교 생활은 둘 중 하나였다. 자거나 잊거나. 어린 시절부터 지속되어 온 무력감에 잠식되어 우울이 당연한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젤라토를 만들면서는 자꾸 내가 유능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 자꾸 내가 유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인생의 어느 순간보다도 뿌듯하고 즐겁다. 때문에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누군가도 빨리 에너지를 분출하고 마음껏 행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