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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하기보단 스며들다

서울 상도동의 ‘핸드픽트 호텔’

by 펭소아

● 장소 서울 동작구 상도로 120

● 개관 2016년 2월

● 설계 김동진·로 디자인 도시환경건축연구소 설계팀

● 문의 02-2229-5499



상도동 주택가 한복판에 세워진 핸드픽트 호텔. 로디자인 제공



2016년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1950년대 개발돼 ‘서울 신도시 1호’로 불리는 이곳의 오래된 주택가에 호텔이 처음 들어선 것. 그것도 무궁화 다섯 개짜리 1급 관광호텔인 ‘핸드픽트(HANDPICKED) 호텔’이다.


1급 호텔치곤 덩치는 그리 크지 않다. 지상 10층 지하 2층에 객실은 43개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변이 5층 안팎의 상가에 빌라 아니면 주택단지다 보니 멀리서 보면 우뚝 솟아 있다. 10km 이상 떨어진 곳에 최근 지어진 고층아파트가 방벽처럼 둘러쳐져 있긴 하다. 그래도 오래된 주택가인 상도동에선 랜드마크라 할 만큼 눈길을 끌었다.



상도동의 새로운 랜드마크


아주 소박한 핸드픽트 호텔 1층 출입구. ⓒ포스트픽



이런 경우 보통은 그 존재감을 각인시키려 하기 마련. 하지만 핸드픽트 호텔 경우엔 반대로 그 존재감을 희석시키는 것이 지상과제였다. 설계를 맡은 ‘로 디자인’의 김동진 대표(홍익대 교수)가 건축 프로젝트에 부여한 명칭은 ‘카무플라주(camouflage)’. ‘은폐’ ‘위장’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주변에 위압감과 위화감을 주지 않고 지역 공동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에 붙인 이름이었습니다. 주변에 붉은 벽돌 건물이 많아 같은 톤의 벽돌로 2층에서 7층까지 박스를 쳤습니다. 또 그 안은 검은 빛깔의 ‘구로철판’(구로공단에서 많이 쓰는 공장용 철판이라 하여 붙은 명칭)으로 외관을 지어 투박함과 날카로움으로 고급 호텔의 화려한 이미지를 대체했습니다. 유리창과 벽돌의 크기와 형태를 달리해 변화를 줬다. 호텔 뒤편 외벽과 내벽은 도색하지 않은 노출 콘크리트를 그대로 써서 고풍스러운 근대 건축의 이미지를 부여했습니다. 눈길을 끄는 요소는 9층과 10층을 반사 유리로 마감한 것 정도인데 동네 밖으로 나가서 볼 때만 효과를 발휘합니다.”


한마디로 튀지 않으면서 주변 공간과 자연스럽게 어울림을 추구했다는 소리다. 이는 건축주인 김성호 핸드픽트 호텔 대표의 철학과도 맞물려 있었다.


“호텔 로비가 왜 그렇게 웅장한지 아세요? 고객이 함부로 굴지 못하게 위압하기 위해서죠. 실제 로비가 화려하고 웅장할수록 고객의 컴플레인(불평불만) 접수가 줄어듭니다. 하지만 이건 옛날 방식이죠. 요즘은 호텔이 들어서는 곳 주변 공간과 조화 그리고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을 중시하죠. 저희 집안은 3대째 상도동에 사는 토박이입니다. 호텔이 들어선 곳은 저희 집안에서 운영하던 주유소가 있던 곳이에요. 그래서 동네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투숙객뿐 아니라 이웃 주민의 편익을 배려하는 ‘열린 호텔’을 구상했습니다.”


로비와 객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1층의 유일한 장식물. 원색의 플라스틱 의자 조각을 재활용해 멸종위기에 몰린 동물을 형상화해온 김우진 작가의 작품이다. ⓒ포스트픽



골목길이 최고의 경관이 되다



상도동 주택가 풍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9층 로비와 레스토랑. 로디자인 제공



실제 핸드픽트 호텔의 1층은 입구와 엘리베이터 그리고 담쟁이덩굴만 있다. 로비는 9층에 위치한다. 1층에 있을 경우 체크인/아웃 투숙객으로 붐벼, 해당 공간이 호텔임을 과시하는 효과를 차단하기 위해서 9층으로 로비를 옮겼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호텔을 처음 찾는 사람들에게 이 호텔에서 ‘가장 좋은 뷰(view)’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 뷰가 도대체 뭘까. 상도동 언덕배기 오래된 골목의 주택단지가 빚어내는 ‘사람냄새 나는 풍경’이다. 예전 같으면 익숙한 산동네 풍경이라고 무심코 지나쳤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와’ 하고 탄성을 터뜨릴 만큼 귀한 풍경이다. 서울시에서 무분별한 고층아파트 건립을 막고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도록 지정한 근린재생사업지 14곳 중 하나다.


“제가 15년간 호텔 컨설팅 사업을 하면서 제 고객이던 최고급 호텔이라면 절대 택하지 않을 것들을 실현해보자 생각했어요. 저만의 독특한 취향을 반영한 ‘유니크 호텔’이죠. 그중 하나가 1950년대 건축양식에서 2000년대 건축양식까지 한국의 시대별 건축양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광을 투숙객들에게 선사하는 거였습니다.”


실제 이 호텔을 찾은 서양 투숙객이 가장 만족감을 표하는 지점도 이 한국적 풍경이라고 한다. 서울대에서 열린 건축 세미나 참석차 이 호텔에서 묵은 일군의 독일 건축가들이 한 “한국에서 본 풍광 중 최고였다”는 칭찬이 보이지 않는 훈장처럼 김 대표 어깨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역시 상도동 주택가와 골목길을 풍경으로 삼은 객실 내부. 로 디자인 제공



동네 주민과 소통하는 호텔



‘파우 와우 코리아’의 그래피티 작품 영원한 사랑'을 만날 수 있는 옥상 야외공간. ⓒ포스트픽


동네 주민을 위한 서비스 공간은 지하 1층과 10층 꼭대기에 위치한다. 지하의 카페와 레스토랑, 꽃집, 갤러리가 동네 주민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게 개방형으로 지어졌다. 특히 유아들의 실내 놀이공간인 키즈룸을 무료로 개방해 엄마들의 환영을 받았다. 10층 꼭대기에 위치한 연회장은 동네 주민들 돌잔치 공간으로 인기다. 그 위 옥상은 야외 결혼식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런 독특한 시도로 주목받은 핸드픽트 호텔은 생각도 못한 값진 선물을 받았다. 2017년 9월 23~30일 8일간 서울 7곳에서 펼쳐진 길거리 예술축제 ‘파우 와우 코리아’에 참여한 세계적 그라피티 화가들이 그려준 3점의 벽화다. 호텔 뒤쪽 노출 콘크리트 외벽에 용 두 마리를 형상화한 ‘영원한 평화’, 옥상 공간에 서울의 노을을 담은 ‘영원한 사랑’, 지하 1층 계단 외벽에 한국 민화의 단골 주인공 까치호랑이가 피자를 먹는 ‘코리안 타이거 배드 보이’다. 김 대표는 “값을 매기기 어려운 예술작품을 선물 받았다”며 “작품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겠다”고 말했다.


1991년 프리츠커 수상자인 로버트 벤투리는 기능성을 앞세운 모더니즘 건축을 비판하며 역사성을 강조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이론적 기수였다. 20세기 최고의 건축가로 꼽히는 루이스 칸(프리츠커상이 제정되기 5년 전에 숨을 거둬 프리츠커상을 못 받은 비운의 건축가이기도 하다)의 제자였던 그는 공간에 축적된 시간을 건축적으로 풀어내는 칸의 역사주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라스베이거스의 상업적 건물에서도 기호와 상징을 읽어낸 벤투리는 아내인 데니스 스콧 브라운과 공동작업으로 건축비평과 설계를 수행했다. 그래서 ‘우리’라는 표현을 많이 썼는데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에게 건축은 무엇보다도 배경 속에서의 예술이다. 적어도 거기서는 건축이 힘을 발휘한다. 건축은 구태여 전면으로 밀고 나오려고 팔 필요가 없다.”


주민들을 위한 성큰 공간으로 지어진 지하 1층 계단. 파우 와우 코리아의 그래피티 작 품‘코리안 타이거 배드 보이’를 만날 수 있다. @포스트픽


상도동 주민들의ㅣ 사랑방 역할을 하도록 설계된 지하1층의 카페. @포스트픽



핸드픽트 호텔의 야경. 븕은색 벽돌로 둘러싸인 2~7층 객실이 검은색 벽돌과 유리창의 크기가 각각 다르다. 로디자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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