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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Mar 15. 2024

의사 파업에 대한 다른 생각

2024년 3월 14일(맑음)

‘논어’에 등장하는 소인은 누구인가. 송대 성리학자들(송유)이 말하는 소인배가 아니다. 오늘날 그 책을 읽는 대다수의 보통사람이란 것이 우민의 생각이다. 

    

소인은 사전적 반대말은 대인이다. 곧 공경대부를 뜻하니 공은 제후, 경은 재상급인 상경, 대부는 장차관에 해당한다. 오늘날의 대통령, 국회의원, 장차관급에 해당하는 고위공직자가 대인인 셈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그에 해당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다 소인인 것이다.   

  

그럼 공자가 강조하는 군자는 어떤 사람일까? 어진 정치를 펴는 참된 대인과 그런 대인이 되고자 통치학을 배우고 리더십을 키우는 사람을 말한다. 다시 말해 대인이라고 다 군자가 아닌 것이다. 소인의 그릇밖에 안되면서 아버지 잘 만나 고위직에 오른 사람과 입신출세에 눈이 멀어 군자지도를 팽개친 출세지향의 속물은 설사 대인의 지위에 있더라도 군자가 아닌 것이다.  

   

그런 군자의 최고 덕목 중 하나가 소인, 곧 보통사람의 욕망과 두려움에 대한 두터운 공감능력이다. 그런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은 대인의 자리에 있다 해도 결코 군자로 불릴 수 없다.   

  

의대 정원을 한해 2000명 씩 확대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에 맞서 파업을 벌이는 의사들에 대해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자신들 밥벌이를 위해 생명이 위중한 환자들의 건강을 내팽개친 소인배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많다. 의사는 고등교육을 받았으니 사회 엘리트이고 엘리트면 당연히 군자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소인의 길을 걷고 있다는 논리가 작동하는 건 아닐까?

     

우민이 볼 때 그런 관점은 송유 군자관에 가깝다. 소득이 많다지만 의사를 공동체 운영의 막중한 책임을 짊어진 대인이나 그를 지향하는 군자로 볼 수 없다. 그들은  그냥 자신들의 이기적 욕망에 충실한 소인일 뿐이다. 보통사람은 자신들이 받던 처우와 대우가 악화되면 그에 반발하기 마련이다. 그게 바로 기득권이란 것이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야말로 소인의 진면목이라 할 것이다. 군자를 지향하지 않는 대부분의 소인은 다 그렇게 산다.  

    

우민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파업을 존중해야 하기에 의사의 파업도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상대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이 센 정부이기에 더욱 그렇다.   

   

우민도 국민의 의료서비스 개선을 위해 의대 정원 확대를 지지한다. 그렇다고 매년 2000명씩 확충하겠다는 우격다짐 정책 밀어붙이기에는 동의할 순 없다. 현재 의대 정원이 3000명인데 그 숫자를 5000명까지 갑자기 늘이겠다는 소리인데 부작용이 동반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대통령의 주먹구구식 발언을 어떻게든 관철시키려고 개혁이란 명분 아래 의사들을 겁박하기 급급한 정부의 행태를 보면서 의사들의 울분에 더 공감하게 됐다. 정부를 상대로 어떤 집단이든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민은 이번 기회에 사회적 약자의 파업과 태업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인식이 바뀌기를 바란다. 그것이 의사든, 청소부든, 장애인이든 힘이 약한 측이 더 힘센 측에 맞서 싸우기 위한 자위권 차원이라면 그걸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직업이 의사든 변호사든 우리 대다수는 그저 소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 소인의 욕망과 두려움을 헤아리는 것이 정치를 책임진 군자의 덕목이 돼야 한다. 하지만 우민이 보기에 대통령과 정부여당 그리고 관련 부처 공무원들의 행태에서 그런 덕목이 실종됐다. 정작 군자지도를 실천해야할 사람들이 그러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찌 소인들에게 왜 군자답게 처신하지 못하느냐고 비난하는 게 형평성이 맞을까? 

    

현재 파업 중인 의사들도 이번을 계기로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약자의 단체행동을 바라보는 시각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고 우민은 생각한다. 사회적 지위나 수입이 의사들보다 못한 노동자, 비정규직. 장애인이 파업이나 태업을 벌이는 것에 대해 혹시라도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고 생각했다면 그들의 단체행동이 더 절박함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동병상련의 마음가짐을 가져줘야 하지 않을까? 군자의 자세를 갖춰야 할 사람은 정부와 정치권에 몸담은 사람이고 우리 대다수는 소인에 불과할 뿐이니까.



  #우민은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인 동시에 '또 하나의 백성(又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붙인 별호입니다. 우민일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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