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지 고기동의 복합공간 위브릭버드
● 장소 경기 용인 수지구 고기동 호수로 52번 길 25-17
● 준공 2019년 7월
● 설계 한은주·(주)소프트아키텍처랩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어.’
남진의 히트곡 ‘님과 함께’(1972) 서두를 여는 이 가사는 한국 실버세대의 원초적 꿈이 담겼다. ‘아파트 공화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대부분의 아랫세대와 달리 그들은 대부분 전원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러니 은퇴하면 고향마을로 낙향하거나 하다못해 교외 주택에서 정원이나 텃밭을 가꾸며 살기를 꿈꾼다. 여우도 죽기 전 제 살던 곳을 그리워한다는 고사성어 수구초심(首丘初心)과 일맥상통한 꿈이다.
1990년대 이후 서울 인근 농가주택과 전원주택이 인기를 끈 이유도 거기 있다. 하지만 실제로 교외 주택에서 살아본 사람들 중 상당수는 예상치 못한 불편에 직면했다. 여름이면 쑥쑥 자라는 것이 눈에 띈다는 잔디 관리의 어려움, 텃밭에 심은 농작물 가꾸다가 하루해가 저물더라는 노동의 피로, 몸이 아프면 찾아갈 병원의 부재, 다양한 문화공간의 부재, 퇴직금과 연금 외엔 돈벌이가 힘들다는 점 등등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내듯 단박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도전이 있으면 응전도 있는 법. 고급 주택가가 형성된 경기 용인 수지구 고기동의 ‘위브릭버드’에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복합적 해법이 담겼다. 2세대의 독립된 생활공간을 제공하는 전원주택뿐 아니라, 문화공간인 갤러리와 임대수입을 보장하는 카페 또는 레스토랑 공간이 함께 둥지를 튼 복합공간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용인서울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가량 내려가다 보면 오른편에 낙생 저수지가 나타난다. 이 저수지에서 광교산 산자락을 따라 30여 채의 전원주택이 옹기종기 들어선 ‘해뜰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위브릭버드는 이 마을의 가장 높은 언덕배기에 있다. 집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좀 더 고도가 높은 집터가 있지만 마을 전체를 내려다보는 지점에 위치했기 때문에 웅장한 성채 같은 느낌을 준다. 얼핏 서울 예술의전당 미니어처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하지만 전체 부지는 828㎡(약 251평)밖에 안 된다. 주택부지로만 보면 넓지만 갤러리와 카페까지 들어서기엔 좁다. 해법은 시루떡처럼 공간을 쌓아 올리는 것이었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 절반을 갤러리 공간, 정원과 연결되는 지상 1층의 절반을 카페 공간, 2층을 신혼부부의 공간, 3층을 50대 부부(건축주)의 공간 그리고 패러핏(옥상 난간)을 쳐서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옥상 공간으로 구성됐다.
연면적(건축동 바닥 면적의 합)이 892㎡(약 270평)나 되다 보니 자칫하면 공간 구성이 빽빽하게 보일 수 있다. 전망이 확 트인 동쪽 면에 정원을 위치시키고 등고선이 급경사를 이루는 서쪽 면에 건축동을 올린 것이 이런 느낌을 중화시켜준다. 이는 교외 건축의 프라이버시 문제도 해결해준다. 2층에서 옥상에 이르는 건축동을 검은색 전벽돌로 감싸 묵직한 무게감을 부여한 동시에, 그 형태를 새나 나비의 날갯짓을 연상케 수 있도록 형상화했다는 점이다. 위브릭버드라는 이름의 ‘위’는 서울 청담동에 본점을 둔 ‘갤러리 위’에서 따온 것이고, ‘브릭버드’는 ‘검은색 전벽돌로 빚은 새’를 뜻한다.
그렇게 건축의 동서축은 서고동저의 주변 지형과 풍광에 조응한다. 실제 주거공간의 동쪽으로 길게 난 창으로 광교산의 숲과 낙생 저수지의 물이 하나로 어우러진 시원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 반면 절개지를 면한 서쪽으론 거의 창이 없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맞는 것은 북쪽 파사드다. 언덕길 도로를 따라 올라오면서 마주하는 면이기 때문이다. 이쪽 파사드에서 브릭버드의 날개가 꺾이기에 입체적 느낌이 강한 데다 갤러리가 있는 지하 1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수직적 상승감도 강렬하다. 옥상 공간까지 치면 5층 높이의 건축을 마주한 기분이다.
그런 수직적 압도감을 느끼며 안으로 들어서면 신성함까지 느껴진다. 정면으론 온통 새하얀 갤러리 공간을 마주하고 왼편으로 햇빛이 부서지는 기다란 석조 계단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갤러리 공간에선 지하 1층과 지상 1층을 관통하는 전시용 수직 벽은 외부에서 느꼈던 수직적 상승감을 내부에서도 부여한다. 또 빛이 쏟아지는 계단을 올라 사방이 야트막한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으로 올라서면 하늘빛이 고스란히 쏟아지는 높은 성루 위에 서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든다. 동시에 바깥세상으로부터 보호받는 안온함도 부여받는데, 그런 느낌이 가장 강하게 드는 가장 깊숙한 곳에 카페 공간이 위치한다.
정원에 서서 건축동의 동족 파사드를 바라보노라면 군함의 갑판 위에 서서 함교를 우러러보는 느낌을 준다. 이때 횡축으로 3면을 둘러싼 유리창이 빛을 붙잡는 그물이라면 종축을 받치는 필로티 기둥은 바람을 풀어놓는 통로다. 그리고 콘크리트 벽 박스로 이뤄진 사령탑 맨 윗 공간(옥상)은 사시사철 변화무쌍한 하늘빛을 가둬놓는 우리다.
이렇게 위브릭버드는 전원이란 공간의 특성을 최대한 만끽할 수 있는 건축적 장치를 곳곳에 배치하면서도 서로 다른 건축적 리듬을 하나로 묶어내는 퓨전 연주를 들려준다. 예술공간, 상업공간, 주거공간의 리듬은 저마다 다르다. 예술공간으로서 갤러리에 필요한 여백의 미, 상업공간으로서 카페에 필요한 개방성과 사교성, 거주공간으로서의 내밀성과 효율성 같은 것이다.
이런 리듬 변화는 위브릭버드를 직사각형 형태로 감싸고 있는 외벽의 라인에서도 감지된다. 갤러리 공간은 벽면 뒤에 감춰져 있다. 카페 공간이 위치한 북쪽 면에선 그 외곽라인이 완만한 경사를 이룬다. 하지만 주거공간과 이웃한 주택을 면한 서쪽 면에선 그 경사각이 급경사를 이룬다. 생활공간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해주기 위해서다. 건축가 한은주 소프트아키텍처랩 소장은 “과거의 전원주택이 주거공간에 머물렀다면 요즘은 삶터와 일터의 기능을 함께 요구한다”면서 “서로 다른 건축 리듬을 하나로 집약하는 멀티유스(mutiuse)의 공간을 창출하면서 그 불연속적 건축 리듬을 하나로 매끄럽게 연결하는 작업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