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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같지 않은 ‘한옥 2.0’

파주 K주택

by 펭소아

● 장소 경기 파주시 동패동

● 준공 2019년 6월

● 설계 구가도시건축 조정구 소장

● 수상 2020년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우수상(대한건축사협회장상)



사진2-1_뒤편 정원쪽에서 바라본 파주K주택의 야경. 사진5_자체 온실을 갖춰 독립적 공간일 때 아늑하고 개방된 공간일 때 널직한 부엌 ⓒ박영채.jpg 파주 K주택을 정원쪽에서 바라 본 모습. 기본적으로 목조주택이지만 석재외장재로 돌집의 느낌을 부여했다. ⓒ박영채



한국 건축계에서 한옥은 ‘계륵’과 같다. 한국적 주거형태의 원형으로서 한옥에 대한 찬가를 부르는 이는 많다. 그러나 건축가 중에서 한옥을 선호하는 이는 드물다. 현대인이 살기에 불편하다는 것 때문만이 아니다. 지붕의 무게로 벽을 눌러 짓기 때문에 구조적 안정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건축적 변형을 가하기도 어렵다.


결정적으로 조선시대 건축양식의 답습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창의성 발현에 제한이 있다. 그런 점에서 한옥은 이 시대 건축가들이 극복해야 할 라이벌이다. 과장해 말한다면 이 땅의 건축가들에게 ‘살부(殺父)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라고나 할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없는 ‘마당 깊은 집’



사진1_메인 후보 파주K주택의 거실과 정원. 대들보와 서까래는 없지만 경사진 목조지붕을 받치는 각(角)서까래 구조로 한옥의 대청과 안마당 느낌을 살려냈다.. ⓒ박영채.jpg 파주 K주택의 거실과 정원. 대들보와 서까래는 없지만 경사진 목조지붕을 받치는 각(角)서까래 구조로 한옥의 대청과 안마당 느낌을 살려냈다.. ⓒ박영채


조정구 구가도시건축 소장은 이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없어 보였다. 한옥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건 같았지만 기본적으로 한옥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어려서 마당이 있는 집에서 자랐고 지금도 서대문 한옥에 살아서 그런지 그의 한옥 사랑에는 구김살이 없었다. 그의 목표는 아비를 죽이지 않으면서 그 좋은 DNA만을 물려받는 것이 아닐까. 경기 파주 교하지구 단독주택단지에 지어진 ‘K주택’을 둘러보고 난 뒤 든 생각이었다.


파주 K주택의 외관만 본 사람은 어리둥절할 것이다. 유럽식 벽돌집 같은데 한옥이라니. 이런 선입견은 집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확 바뀐다. 현관으로 들어서면 널찍한 마루가 보이고 바로 정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청마루 너머로 마당이 펼쳐진 ‘마당 깊은 집’의 전형이다.


정원이 한눈에 들어오게 시원한 시스템 창호를 설치하되 목조 구조 뒤로 숨겨서 나무기둥이 늘어선 대청마루에 같은 효과를 냈다. 그 창을 열고 정원으로 나서면 목조 처마와 그 아래 섬돌 역할을 하는 1.5m 폭의 돌단을 만나게 된다. 한편으론 햇살과 빗방울을 차단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그 풍광을 집안으로 끌고 오는 ‘처마의 미학’을 살린 것이다.


사진7_대청마루 하면 떠오르는 처마와 섬돌을 현대적으로 구현했다. ⓒ포스트픽.jpg 대청마루 하면 떠오르는 처마와 섬돌을 현대적으로 구현했다. ⓒ포스트픽



처마와 차경의 미학을 살린 집


사진6_안마당 겸 정원에서 바라다 본 파주K주택 ⓒ포스트픽.jpg 안마당 겸 정원에서 바라다 본 파주 K주택 ⓒ포스트픽


또 정원 바로 앞에 집이 있긴 하지만 다양한 꽃나무가 심어진 정원의 풍경이 고스란히 1층 거실과 안방, 부엌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주변 경치를 집 내부로 끌고 오는 차경(借景)의 원리는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한옥 하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대들보와 서까래는 없다. 대신 경사진 목조 지붕을 받치는 각(角) 서까래 구조로 비슷한 느낌을 부여했다. 또 일렬로 배치된 거실과 부엌 사이 목조 벽문(壁門)을 설치해 대청마루의 개방감과 부엌의 안온함을 선택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했다. 한옥의 다목적 공간 활용의 묘미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예다.


‘신의 한 수’는 2층과 연결되는 목조계단이다. 하얀색 석고 외장재를 바탕으로 목조기둥 하나와 그와 연결된 최소한의 난간만 남겨놓아 제법 큰 한옥에서 발견되는 석조 계단의 여유와 운치를 실내로 끌고 왔다. 계단 폭을 4계단마다 변화를 준 점 역시 송대관의 노래 ‘네 박자 인생’ 같은 한국적 삶의 리듬감을 부여했다. 육순이 넘은 건축주 부부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할 때 쉬엄쉬엄 하라는 배려의 산물이었는데 득의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그로 인해 계단은 확장된 거실의 의자도 되고, 휴식의 공간도 됐다.



사진4_메인 후보 거실에서 바라본 부엌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박영채.jpg 거실에서 바라본 부엌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박영채


사진4-1_부엌 목조벽문을 닫았을 때. ⓒ포스트픽.jpg 부엌 목조벽문을 닫았을 때. ⓒ포스트픽



‘한옥 2.0’의 완성



사진10-_통유리가 설치된 2층 서재에서 바라다보이는 풍경. 멀리 보이는 산이 심학산이다. ⓒ포스트픽.jpg 통유리가 설치된 2층 서재에서 바라다본 풍경. 멀리 보이는 야트막한 산이 심학산이다. ⓒ포스트픽


장성한 아들이 쓰는 2층은 1층의 절반밖에 안 되는 공간이지만 심학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통유리가 설치된 서재와 독립적인 침실을 갖췄다. 2층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경치와 실용적 공간 구성이 전통한옥에서라면 구현하기 힘들었지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도 한옥의 요소가 숨어있었으니 서재 위로 설치된 작은 다락방이다. 옛날 한옥의 다락방은 아이들이 숨어서 몰래 책을 읽거나 비밀 이야기를 속삭일 수 있는 은밀한 공간이었다. 서재 위 다락방 역시 천정이 앉아 서있을 순 없어도 앉아서 책을 읽거나 자기들만의 비밀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은 돼 보였다.


K주택에서 가장 전통 한옥에 어울리는 공간은 1층에 위치한 사랑방(손님방)이다. 별도의 뜨락을 거느린 이 사랑방은 온돌과 창호지 문은 물론 외부로 조명이 은은히 새어 나오는 불발기창까지 설치돼 있다. 그 안에 앉아있노라면 아늑한 한옥 사랑방에 앉아있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건축주인 김동겸(64) 씨는 “어린 시절 살았던 시골 한옥집 같은 집을 짓자고 아내와 의기투합해 8년간 전국을 돌며 500여 채 집을 둘러보고 나서 조정구 소장을 택했다”며 “이사하던 날 계단참에 앉았는데 외할아버댁 대청마루에 앉아있는 것 같아서 눈물이 다 나더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집을 ‘한옥 같지 않은 한옥’, ‘현대적 한옥’이라고 불렀다. 앞서 소개한 ‘세 그루 집’이 전통적 ‘한옥 1.0’의 극단적 하이브리드(혼종)라면 ‘파주 K주택’은 한옥의 DNA를 계승하면서 외형을 확 바꾼 ‘한옥 2.0’의 서러브레드(순종)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진9_환한 빛이 들어오는 2층 거실. ⓒ포스트픽.jpg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2층 거실. ⓒ포스트픽



사진8_독립된 뜨락을 거느리고 온들을 깐 1층 사랑방. 전통 한옥에 가장 어울리는 공간이다. ⓒ포스트픽.jpg 독립된 뜨락을 거느리고 유일하게 온들을 깐 1층 사랑방. 전통 한옥에 가장 어울리는 공간이다. ⓒ포스트픽



사진3_현관문을 열었을 때 거실과 안마당이 한 눈에 들어온다. ⓒ포스트픽.jpg 현관문을 열었을 때 거실과 안마당이 한 눈에 들어온다. ⓒ포스트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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