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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은 Feb 21. 2024

우리 집 불로초

우울증과 갱년기

요즘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일들이 연속해서 생기고 마음이 수런거리는 날들이 쭉 이어졌습니다.

스스로 '이러다가 방전되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 즈음, 몸이 방전된 건 아닌데 마음이 삐그덕거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별것 아닌 일들에 감정이 울컥해서 눈물이 나고, 평소라면 아무 문제 되지 않았을 아이들 행동이 눈에 거슬려 잔소리가 10배쯤 많아졌지요.

'뭐가 문제일까?' 생각하다가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습니다. 우울증.

요즘 힘든 일들이 연이어 있으면서 영향을 끼쳤을 거라는 말과 함께 갱년기 호르몬 변화와도 관련이 있어 보이니 적절한 치료를 받으라는 말이었습니다.


우울증과 갱년기라니!

생각지도 못한 말에 놀라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내 상태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에서 말을 듣고 나니, 우선 내 말이나 행동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아이들에게 엄마의 상태에 대해서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가 요즘 몸도 힘들고 감정 조절이 잘 안 돼서 병원에 갔더니 갱년기랑 우울증이 겹쳤대. 우리 우주는 사춘기고 엄마는 갱년기가 시작되고. 말로만 들었던 그 무서운 시기가 시작 됐나 봐."


내 설명에 아이들이 잠시 깔깔 웃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요즘 평소보다 감정이 좀 더 울컥한 거래. 그런데 갑자기 버럭 하면 서로가 불편하고 당황스럽잖아. 갑자기 왜?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럴 때는 엄마가 미리 신호를 줄게. '혼자!' 이게 신호야. 이건 '엄마 지금 기분이 좀 안 좋아. 혼자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으니까 잠깐만 엄마를 놔둬 줘.' 하는 뜻이야.  엄마에게 시간을 줘.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면 평소의 엄마가 될 수 있을 거야."


내 말에 둘째가 나를 꼭 안더니, "엄마가 신호주는 일이 없으면 좋겠어요." 합니다.



그러면 참 좋았겠지만, 그날 저녁 별 이유도 없이 감정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길래 아이들에게 신호를 줬습니다.

"혼자!"

생각보다 목소리가 더 낮고 음산하게 나왔지요. 그러니 아이들이 조용해지더군요.

조용해진 아이들을 살필 여유도 없이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정신없이 움직여봅니다. 미뤄뒀던 일들을 일부러 찾아내어 몸을 바쁘게 했지요.

쓸고, 닦고, 정리하고.

정신없이 움직이는 와중에 둘째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엄지와 검지를 교차해 손하트를 만들어 보입니다.

처음 한 번은 그냥 미소 짓고 말았는데 고개 돌리는 내내, 곳곳에서 아이의 손하트가 따라다닙니다. 엄마의 동선을 내내 주시하고 있었던 것처럼 눈돌릴 때마다 아이랑 눈이 마주쳤고 그때마다 아이는 손하트를 날려주었습니다. 결국 그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가 끝에는 코끝이 찡해집니다.

너무 예뻐서. 고마워서. 미안해서. 


힘내세요! 괜찮아요! 사랑해요!

손으로 전하는 수많은 말들이 마음까지 와 켜켜이 쌓입니다.

받은 마음들을 차곡차곡 쌓으며 설거지하는 뒤에서 안아오는 아직은 작고 말랑한 몸이 느껴집니다. 힘주어 안고는 "엄마가 너무 좋아요." 하는 아이 말에 균열이 가던 마음이 촘촘해집니다.

결국 고무장갑 벗고 같이 마주 보고 꼭 안아주었습니다.


'우울증? 갱년기! 모두 날릴 약이 여기 있었네.'

'진시황제가 찾아다녔다는 불로초가 별거냐. 내 몸과 마음이 병드는 걸 막아주는 불로초가 여기도 있네.'


어려움을 터놓고 얘기했을 때 아이들도 부모를 배려할 수 있습니다. 

빵 한쪽을 나누고, 서로의 시간을 나누며, 감정을 공유하고, 마음이 담긴 대화 속에서 배려를 배워갑니다.

그렇게 배려와 사랑으로 키워낸 불로초가  우리 집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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