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혜은 Feb 28. 2024

'한 때'의 보물과 '지금'도 보물

반가워. 신학기야!


개학이 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두 달간의 겨울방학이 끝이 보이는 요즘, 설렘과 걱정이 삐죽삐죽 돋아납니다. 신학기의 설렘과 걱정은 아이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엄마인 내게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새로운 학년, 새로운 친구들과 잘 지낼지 걱정이 먼저 올라오고 뒤이어 가슴속에 꾹꾹 눌러뒀던 '빨리 개학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기대는 더 크게 솟아납니다. 두 달은 길어도 너무 길었거든요!


그 걱정과 기대의 마중물로 이맘때면 늘 하는 일이 있습니다. 서랍정리. 

옷 서랍을 정리하고, 아이들 책상 서랍을 정리하고.


아이들 옷장 정리는 그리 어려울 게 없습니다. 분류기준이 간단하거든요. 작아진 옷과 입을 수 있는 옷. 

기준이 간단하니 정리도 금방 됩니다. 서랍에서 빠져나와 휙휙 던져진 옷들이 방학 동안 쑥 자란 아이들을 증명하듯이 바닥 가득 널브러집니다. 그 뒤에 아이들을 부르면 되죠.

"여기 작아진 옷들인데, 혹시 버리면 안 되는 옷이 있는지 확인해 보자."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이 쫓아옵니다. 엄마 눈엔 그저 작아진 옷이지만 본인들에겐 버릴 수 없는 보물이 혹시나 나와있나 확인하기 위해서죠.

뒤적뒤적 확인하던 둘째가 쪼그라든 천 뭉치를 들고는 말합니다.

"엄마 이 스파이더맨 장갑은 버리면 안 돼요. 스파이더맨 슈트 입을 때 필요해요." 

5살 때 샀던, 이제는 작아서 손도 잘 들어가지 않는 그 장갑이 이번에도 살아남았습니다. 그 외에 나머지는 통과.


옷장을 정리하고 아이들 서랍을 함께 정리합니다.

다 푼 문제집, 종합장, 쓰다 남은 노트, 어디서 가져왔는지 알 수 없는 딱지와 스티커들, 쪽지와 편지. 물감, 빠레트, 붓, 색연필, 사인펜, 색종이, 오카리나, 줄넘기........ 그리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만들었던 작품집.

일단 다시 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류합니다. 학교에서 필요한 준비물들은 거의 다 살아남고 아이가 보물이라고 생각해서 버리지 못하고 모아뒀던 알 수 없는 것들이 서랍 밖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이것들(보물) 중에 혹시 아. 직. 도. 보물인 것이 있을까?"

내 말에 아이 눈초리가 날카로워집니다. 한때의 보물들 속에서 '지금도 보물'인 진짜배기를 찾아야 하니까요.

아이 손에서 구해진 건, 친구들에게 받은 롤링페이퍼, 참 잘했어요 도장 세트, 아이언맨 카드와 달력을 여러 겹 겹쳐서 만든 왕딱지. 

"다른 건 버려도 될 것 같아요."

한때의 보물이 아이의 관심사가 변하고 눈높이가 달라지면서 이제 안녕을 고합니다.


아이들이 쑥쑥 크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옷장에서 쏟아진 옷들과 아이의 관심사와 세계가 넓어진 걸 알려주는 '한때의 보물들'을 아이들과 함께 정리합니다. 버리는 물건마다 종알종알 에피소드가 따라붙으며 아이 스스로 성장했음을 확인합니다.

오늘 비워낸 이 공간은 신학기를 보내는 아이들의 시간과 노력, 관심사로 금세 채워질 겁니다. 

어떤 일 년이 될지 모르겠지만 내년 이맘때의 보물 찾기가 미리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옷장과 책상서랍을 정리하며 아이들은 신학기를 준비합니다. 

공간을 비우고 마음을 채우며 곧 다가올 '새로운 시작'을 기다립니다.

그 옆에서 나도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신학기에 대한 걱정은 좀 다독여 놓고 새로운 기대로 마음을 부풀려 봅니다. 


'이제 정말, 겨울 방학 끝!!'


고마웠어, 겨울방학! 반가워, 신학기야!

작가의 이전글 우리 집 불로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