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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은 Mar 12. 2024

내가 '처음으로 만난' 세상에게.

같이 걸어보자.

내가 '처음으로 만난' 세상에게 보내는 편지.

마주 앉아있는 너와 몇 번째 눈이 마주쳤을까.

그때마다 온 얼굴 근육을 써가며 눈이 안 보이게 웃어 보이는 너를 보며 내가 마주 웃어준 게 몇 번일까.

우주야!  

오늘도 네 웃음이 눈부셔서 엄마는 또 코끝이 시큰거린단다.


학교밖청소년이 되기로 결정하기까지 너의 눈물과 좌절, 노력을 함께 지켜보며 겁쟁이가 되어버린 엄마가 요즘 네게 늘 하는 말이 있지.


"내가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 되지 않는다."


어느 음악경연프로그램에서 손가락 마디 하나가 없다며 담담히 고백하는 참가자가 있었지. 기타 치기 힘들었겠다는 심사위원의 말에 그 참가자가 했던 말이야. 알지?

참가자의 노래보다 단단한 마음이 인상 깊어 내내 맴돌던 말인데 요즘 엄마가 우리 우주에게 자주 하는 말이 되었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너는 그 말에 묻어나는 엄마의 불안도 알고 있었나 봐.


"엄마, 나 이제 괜찮아요. 그러니까 엄마도 괜찮을 거예요."


네 말 한마디에 엄마는 속을 들킨 아이처럼 얼굴이 발개졌단다.

굳건하게 서지 못한 채 흔들리는 나를 온통 알아챘구나.

가족 중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려는 너를 보며 "괜찮다" 말하면서도 겁먹고 걱정하는 엄마, 아빠를 알아봤구나.

어느새 내 마음까지 더듬어줄 만큼 너는 마음이 단단히 섰구나.

결국 문제삼고 있었던 건 '나'구나.

'슬퍼요', '눈물이 나요', '안아주세요'

불편함을 말로 잘 표현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안아줄 때도 잘 숨겼다고 생각한 내 마음을, 너는 다 알고 있었던 거구나. 미안하게도. 고맙게도.


또 네 말 한마디에 엄마는 정신이 번쩍 들었단다.

세상 모든 풍파를 막아줄 만큼 크고 단단한 품이 되려고 허덕거리지 말고 네 옆에서 묵묵히 함께 걸어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종일 머릿속을 맴도는 말을 되뇌며 집으로 돌아오다가 삐뚤빼뚤 맞물린 보도블록을 보고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단다. 민들레 지천에 만발했던 어느 봄, 보도블록 틈에서 꽃을 피운 민들레를 보며 신기하다며 소리치던 너를 다시 만났거든.

"엄마, 엄마. 이 민들레는 어떻게 이렇게 좁은 틈에서 꽃을 피웠을까요?"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민들레 앞에 쪼그려 앉은 너를 보며 내가 말했지.

"그러게. 의지가 굳센 민들레네. 아주 칭찬해."

내 말에 너는 까르르 웃으며, "칭찬해!"를 따라 했었지. 그 뒤로 너는 민들레 홀씨를 만날 때마다 바람 부는 방향을 잘 살피며 뿌리내리기 좋은 땅을 향해 힘껏 입바람을 불어줬어.

그 홀씨들은 모두 기름지고 안전한 땅에 도착했을까?


우주야!

우리 가족 모두 거센 바람 앞에 흔들렸지만 바람이 거셀수록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다는 것도 알지. 이게 어떤 바람이고 어디에 내릴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도착한 곳이 어디든 보도블록 틈의 '의지가 굳센' 민들레를 잊지 않기를.

그리고 민들레에게 전했던 칭찬을 스스로에게 건네는 단단한 사람이 되기를.


또다시 돌아온 이 봄.

엄마는 새로운 길을 시작하는 너를 마음 깊이 응원한단다.

타박타박 걷든, 겅중겅중 걷든.

어떤 걸음이든 엄마가 함께 할게.

같이 걸어보자.



2024년 3월 12일.

내가 '처음으로 만난' 세상, 우주에게.

마음을 담아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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