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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은 Mar 14. 2024

그래, 봄이네. 봄이야!

아파트 한 바퀴 2

서둘러 돌아온 아파트 공동현관 앞에서 숨을 크게 들이쉽니다. 잠시 숨을 고르며 고개를 돌리니 무채색 배경 속에 노란 점들이 눈에 콕콕 들어와 박힙니다.

'어?!'

공동현관 바로 옆까지 가지를 뻗치고 있는 산수유나무에 꽃이 피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못 본 것 같은데 그새 노랗게 속을 보이는 꽃망울이 예뻐서 사진을 한 장 찍다가 발걸음을 아예 돌려봅니다. 겨울의 무채색을 깨우는 첫 봄손님을 맞으러 가고 싶어 졌거든요.


아파트 오솔길을 따라 걸으니 가로등만큼 드문드문 서있는 산수유나무들이 보입니다. 

해가 잘 드는 양지쪽에 있는 산수유나무도, 건물 그늘에 서서 아직 추워 보이는 산수유나무도 모두 꽃망울을 터트렸습니다. 

'아유, 기특해.', '아유, 예뻐라.'

추운 겨울 잘 견디고 헐벗은 가지 위에 작은 꽃잎을 피워 올려, '나 돌아왔어요. 이제 봄이라고요!' 말하는 산수유나무가 반가워 인사를 건네봅니다.

'반가워, 산수유꽃아!'


드문드문 만나는 산수유나무마다 시선을 맞추고 꽃망울을 들여다보며 걸음을 옮깁니다.

저 앞엔 아직은 움츠러있지만 곧 노란 꽃들을 피워 올릴 개나리군락지가 있습니다. 얕은 구릉지에 빼곡히 들어서서 오솔길을 향해 가지를 뻗치며 머리 위로 터널을 만들어주는 개나리꽃터널.

그 터널을 지나며 작년에 몇 번의 감탄사를 내뱉었는지 모른답니다. 아직은 메마른 개나리터널을 지나며 인사를 건네봅니다.

'안녕. 곧 만나겠네. 너의 꽃터널은 또 봐도 감동일 거야.'


가지를 흔들어준 것 같은 개나리군락지와 인사하며 걸음을 옮겨봅니다.

산책로의 고만고만한 수목들 중에서 키가 큰 꽃나무 앞에 서서 위를 올려다봅니다. 가지 끝마다 겨울눈을 매달고 있는 목련입니다. 희고 큰 잎의 목련꽃이 가지를 가릴 만큼 흐드러지게 피는 나무지요.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바람에 점점이 떨어져 누렇게 변색되는 꽃잎이 아쉬웠던 작년을 기억하며 인사를 건네 봅니다.

'산수유꽃이 피었어. 너도 준비 중이지? 어서 만나고 싶다.'


목련을 뒤로하고 아파트를 가로지르는 중심길로 들어섭니다.

아, 이 길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벚꽃길입니다. 길 양쪽으로 가로수처럼 심어진 벚나무들이 줄 맞춰 서있는 곳이지요.

점점이 연분홍 작은 꽃잎을 피워내는 벚나무 하나. 그 옆에 꽃잎들이 뭉쳐 몽글몽글 피어나는 왕벚나무 하나.

벚나무 하나. 왕벚나무 하나. 벚나무 하나. 왕벚나무 하나.

사이좋게 서 있는 이 길은 벚꽃이 피는 시기엔 걷기만 해도 마음이 울렁거리는 예쁜 길이 됩니다.

빨간 머리 앤이 사랑했던 하얀 환희의 길(사과나무 가로수길)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예쁠 거라 장담하게 되는 길이지요. 벚꽃이 피면 멈춰 서서 사진을 찍게 할 만큼 소담스러운 꽃을 피워내는 왕벚나무 앞에 서서 말을 건네 봅니다.

'올해도 예쁘게 꽃 피울 거지? 또 사진 찍으러 올게.'


걷다가 멈추고. 걷다가 바라보고. 

걸으며 흥얼거리고.

개나리 동요도 흥얼거리고, 목련화 가곡도 흥얼거리고, 어린 시절 티브이로 만났던 빨간 머리 앤 주제가도 흥얼거리며 돌아오는 길.

아직은 찬바람에 조금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빵반죽 부풀어 오르듯 부풀어 오릅니다.

다시 도착한 공동현관 앞.

볼에 와닿는 바람이 좀 더 따뜻해졌습니다. 그 따뜻함을 안고 집으로 들어섭니다.


그래,  봄이네. 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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