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적당한 무게감으로 눌러주는 보송한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다 덮고선 이불속에서 발을 동당거린다.
주말아침에도 어김없이 돌아오는 '아침밥하기'도 패스하고,
가족들 모두 일어나 활동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나는 미동도 없이 세상 편한 자세로 누워있다.
음, 천국이 따로 있나. 이게 천국이지!
'안 일어나면 아침밥이 늦는데.'
'아이들 과제 다 했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평소 같으면 (평소에도 주말 아침은 게으름 피우느라 늦는다!) 똑같이 몸은 누워있어도 온갖 할 일들이 나를 콕콕 찔러와 누워있는 게 마냥 편하지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스스로에게 상을 주는 중이기 때문이다.
크게 다를 것 없는 매일의 일상들.
똑같이 반복되고 굳어져 어느새 두터운 무채색 벽이 되었다. 변함없이 굴러가지만 새로울 건 없는.
일상의 반짝이는 순간들이 분명 존재할 텐데 요즘은 그 순간들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내 시선도 벽에 갇힌 기분이다. 그래서 일상을 비틀어 틈을 만들기로 했다.
특별한 건 없다.
그저 평소에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나, 둘 시도한다.
늘 가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돌아가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자동차로 다니던 곳을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고,
관심 있지만 적극적으로 도전할 의지가 없었던 시험에 도전해 보고.
무채색 일상에 연한 파스텔색이나 쨍한 원색의 물감들을 한 방울, 두 방울 떨어뜨린다.
그러면 물감이 번질 때마다 그 자극의 경계로 무심히 지나쳤던 순간들이 고개를 내민다.
시험을 끝낸 주말인 오늘은 새빨간 물감 한 방울 떨어뜨린 듯 일상이 반짝거린다.
노력한 스스로에게 주는, 조급함이나 해야 할 일에 대한 부담감 따위 납작하게 눌러버린 보송보송한 여유의 시간.
보나 마나 합격이라는 근거 있는 자신감에 자존감 +1.
아이들 마음속에 긍정적인 엄마 이미지 +1.
이렇게 따라오는 부속효과까지 확실하다니! 어느새 또 다음 도전 목표를 찾아 두리번거리게 된다.
무채색 일상이, 몽글몽글 부풀어 오른 알록달록 솜사탕 같은 순간들을 뱉어내게 하는 힘.
이것이 일상 속 틈 비틀기의 힘이고, 시험의 쓸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