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흥부와 놀부
좁은 초가지붕 위를 가득 채운 커다란 박들을 바라보는 흥부.
'아이코, 웬 박들이 이렇게 크지?'
'잘 영글었으니 이젠 박을 갈라봐야겠네.'
마당 가득 박을 내려놓고 큰 아이와 마주 앉아 톱질을 시작한다.
슬근슬근. 서걱서걱.
박 타는 소리 따라 심장 박동 높아진다. 두근두근.
'대체 뭐가 들어 있을까?'
커다란 기와지붕에 공간이 부족할 만큼 박이 가득 영근 놀부네.
'아이코, 이게 다 돈이란 말이지!'
'신난다, 신나. 흥부네보다 훨씬 많은 박이 열렸으니 나는 더 부자가 될 거야.'
마당 가득 박을 내려놓고 톱질을 시작한다.
설컹설컹. 스륵스륵.
박 타는 소리 따라 심장 박동 높아진다. 두큰두큰.
'돈 나와라. 쌀 나와라. 많이 많이 나와라!'
박 안에 뭐가 들어있을지 모르지만 높아지는 심장박동 소리는 호기심과 약간의 긴장감, 그리고 커다란 기대를 담고 뛰고 있다.
'베푼 대로 거둔다'는 매서운 교훈을 몸소 깨우치게 될 놀부가 연상돼 우스워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끔은 짠하기도 하다. 흥부와 놀부의 양면을 모두 가지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종종 비쳐 보이기 때문이다.
한 해의 끝이 보이는 오늘 같은 크리스마스이브엔 더 그렇다.
그저 이름만으로도 살짝 들뜨게 되는 날. 평소보다 좀 더 들뜬 아이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지난 일 년의 평균을 내고 있다. 뒤섞인 흥부의 얼굴과 놀부의 얼굴 속에서 흥부 쪽에 좀 더 가까운 일 년이 보인다.
음, 무난하다. 다행인 건가?
큰 소리로 일 년 잘 지냈다고 격려해 주고 칭찬해 줄 수 있으니 '다행' 맞다.
아이들의 평균을 내고 나서 나 스스로의 평균도 슬그머니 내본다.
몇 번의 강렬했던 '놀부 얼굴'이 전면에 등장한 적이 있지만 그래도 일 년 참 잘 살았다.
큰 사건이 이렇게나 많은 한 해였는데 놀부가 겨우 몇 번만 등장했으니 나는 '부처님 발톱의 때' 정도는 되는 일 년을 보낸 게 확실하다.
부처님 반토막 같은 남편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스스로 칭찬해 줄 수 있으니 '다행'이다.
가족 모두 일 년의 평균값이 칭찬받아 마땅하니 오늘은 조촐하게 파티를 해야겠다.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한 가족 모두가 주인공인 날.
서로에게 감사하고 격려와 칭찬, 바람을 건네는 시간.
진부한 것 같지만 꼭 필요한, 종교가 없는 우리 가족이 활용하는 크리스마스의 쓸모이다.
내년에도 흥부와 놀부의 얼굴이 적절히 잘 섞인 우리가 되길!